50년 전 화성에 내려선 바이킹의 답은 ‘없다’가 아니라 ‘아직 모른다’였다
50년 전 화성에 내려선 바이킹의 답은 ‘없다’가 아니라 ‘아직 모른다’였다
세 실험 중 하나는 양성이었다. 그 신호를 두고 50년째 답이 갈린다.
지난 월요일, 화성에 인류의 착륙선이 처음으로 온전히 안착한 지 딱 50년이 됐습니다. 1976년 7월 20일, 세 다리를 접은 채 붉은 평원 크리세 플라니티아에 내려앉은 NASA의 바이킹 1호는 화성 표면에서 지구로 사진을 보내온 최초의 기계였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이 임무를 이렇게 기억합니다. 화성에서 생명을 찾아 나섰다가, 아무것도 없다는 답을 안고 돌아온 탐사선.
그런데 바이킹은 “생명이 없다”는 답을 가져온 적이 없습니다. 50주년을 맞아 그 오해를 풀어 볼 때가 됐습니다.
손바닥만 한 실험실 세 개
바이킹은 하나가 아니라 쌍둥이였습니다. 1호가 7월에 크리세 평원에, 2호가 그해 9월 3일에 4,000마일(약 6,500km) 떨어진 유토피아 평원에 각각 자리를 잡았습니다. 두 착륙선의 임무는 분명했습니다. 화성 흙 속에 살아 있는 것이 있는지 직접 확인하는 것. 어떤 미생물이 있을지 아무도 몰랐기에, NASA는 서로 다른 가정에 기댄 세 가지 실험을 나란히 실었습니다.
세 실험을 일상의 말로 옮기면 이렇습니다. 기체교환 실험은 흙에 물과 영양액을 부어 주고 위로 올라오는 기체를 지켜봅니다. 살아 있는 것이 먹고 숨 쉬면 기체 조성이 바뀔 테니까요. 열분해방출 실험은 빛 아래에서 흙이 공기 중 탄소를 붙잡아 제 몸으로 만드는지 봅니다. 지구의 식물이 광합성을 하듯 말입니다. 그리고 표지방출 실험은, 방사성 탄소로 표시한 영양액을 흙에 떨어뜨린 뒤 되돌아 나오는 기체에서 그 표시를 찾습니다. 먹이에 형광 물감을 섞어 두고, 흙이 내쉬는 숨결에서 그 물감을 되찾는 셈입니다.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또렷하게 반응한 건 세 번째, 표지방출 실험이었습니다. 착륙 열흘 뒤인 1976년 7월 30일, 화성에서 첫 데이터가 도착했습니다. 양성이었습니다. 흙에 영양액을 떨어뜨리자 방사성 기체가 뚜렷하게 뿜어져 나왔습니다. 결정적인 건 대조군이었습니다. 똑같은 흙을 미리 가열해 살균한 뒤 같은 실험을 하자, 반응이 사라졌습니다. 살아 있던 무언가가 열에 죽었을 때 나타날 법한, 바로 그 모습이었습니다. 두 착륙선이 멀리 떨어진 두 지점에서 같은 신호를 보냈습니다. 실험자들의 집계로는 양성 반응이 모두 네 차례, 이를 받쳐 준 대조 실험이 다섯 차례였습니다.
다른 두 실험은 더 애매했습니다. 기체교환에서는 흙에 물만 살짝 대도 산소가 왈칵 솟아, 생명보다는 화학 반응 쪽으로 기울었습니다. 열분해방출은 약한 신호에 그쳤습니다. 그래도 표지방출 하나만큼은, 지구 실험실에서라면 “생명”이라 불렀을 성적표를 들고 왔습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답은 정해진 듯합니다. 하지만 화성은 그렇게 순순히 답하지 않았습니다.
‘0’이라는 반증
바이킹에는 생명 실험 세 개 말고, 흙 속 분자를 하나하나 뜯어보는 기계가 하나 더 있었습니다. 기체크로마토그래프–질량분석기, 줄여서 GC-MS입니다. 임무는 간단했습니다. 화성 흙에 유기물 분자가 남아 있는지 알아내는 것. 생명이 있든 없든, 수십억 년간 운석이 실어 나른 유기물만이라도 흙에 쌓여 있어야 정상이었습니다.
유기물이 없다면 생명도 없다. 이 단순한 논리가 표지방출의 양성 신호를 압도했습니다. 살아 있는 것은 유기물로 이뤄지는데 그 흔적조차 없다면, 그 양성 신호는 생명이 아니라 화학 반응일 수밖에 없다. 과학계 다수는 그렇게 판단했습니다.
당사자들도 ‘없다’고 쓰지 않았다
그러나 판단과 결론은 다릅니다. 바이킹 생물학 실험팀이 1976년 《사이언스》에 실은 첫 보고서의 끝 문장은 지금 읽어도 조심스럽습니다.
실험을 설계하고 수행한 당사자들조차 “없다”가 아니라 “판단할 수 없다”고 적었습니다. 대중이 기억하는 “화성엔 생명이 없다”는 그 뒤에 붙은 요약입니다. 원본에는 없던 문장입니다.
그 요약을 끝까지 거부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표지방출 실험을 이끈 길버트 레빈과 공동연구자 퍼트리샤 스트라트입니다. 레빈은 1997년 “바이킹은 화성에서 살아 있는 미생물을 발견했다”고 공식 결론을 발표했고, 두 사람은 2016년까지도 “화성에 현존 생명이 있다”는 논문을 함께 냈습니다. 레빈은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 주장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공교롭게도 그는 이번 주 일요일, 정확히 5년 전인 2021년 7월 26일에 97세로 눈을 감았습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그는 1976년의 데이터를 다시 들여다보고 있었습니다.
두 사람의 고집으로 넘길 수도 있었습니다. 문제는, 30년 뒤 그 고집에 힘을 실어 준 것이 다른 누구도 아닌 화성 자신이었다는 데 있습니다.
2008년, ‘0’이 흔들리다
2008년, NASA의 피닉스 착륙선이 화성 북극 근처 흙에서 과염소산염을 발견했습니다. 지구에서는 로켓 연료와 표백제에 쓰이는, 반응성이 강한 소금입니다. 이 발견은 두 방향으로 파장을 냈습니다.
한쪽으로는 회의론자들의 손을 들어 줬습니다. 과염소산염 같은 반응성 물질이라면, 살아 있는 것 없이도 표지방출이 잡은 기체를 만들어 낼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같은 발견이 정반대의 의심도 불러왔습니다. GC-MS는 흙을 뜨겁게 가열해 분자를 분석합니다. 과염소산염은 가열되면 격렬하게 분해되며 곁에 있던 유기물을 태워 없앱니다. 그렇다면 GC-MS가 보고한 “유기물 없음”은, 애초에 유기물이 없어서가 아니라 분석하는 그 순간 자기 손으로 태워 버린 결과일 수 있습니다. ‘0’을 만든 기계가, 사실은 증거를 태우고 있었을지 모릅니다.
훗날 큐리오시티 로버가 화성의 오래된 퇴적층에서 유기물 분자를 실제로 검출하면서, 이 의심은 한층 무거워졌습니다. 표지방출의 양성 신호를 눌렀던 “0”이라는 반증 자체가, 반증으로서의 힘을 잃기 시작한 겁니다.
여기에 레빈은 큐리오시티가 잡은 계절성 메탄 변동까지 근거로 보탰습니다. 지구 대기의 메탄은 대부분 생물이 만들지만, 화성에서는 지질 활동만으로도 생길 수 있어 그 자체로 결론은 아닙니다. 다만 그가 보기에는, 화성이 계속 무언가를 내보내는데 아무도 되돌아가 확인하지 않는 정황이었습니다.
‘못 찾았다’와 ‘없다’ 사이
50년이 지난 지금도 이 논쟁은 닫히지 않았습니다. 2025년 《이카루스》에 실린 재검토 논문조차, 과염소산염으로 바이킹의 결과 대부분을 설명할 수 있다면서도 이렇게 못 박습니다. 그렇다고 화성에 생명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여기서 우리가 챙길 것은 화성의 생사 여부가 아닙니다. 바이킹이 가르쳐 준 건, 두 문장이 얼마나 다른가입니다. “우리는 찾지 못했다”와 “거기엔 없다”. 밖에서 보면 둘은 똑같아 보입니다. 아무것도 안 나온 결과와, 읽어 낼 수 없었던 결과는 겉모습이 같습니다. 바이킹은 화성이 죽었다는 걸 증명한 게 아니라, 1976년의 우리가 산 것과 죽은 것을 아직 가려내지 못했다는 걸 증명했습니다. 기계는 예와 아니오로 묻는데, 행성은 우리가 다 알아듣지 못하는 언어로 답한 것입니다.
화성이 생명을 숨긴 게 아니다. 1976년의 기계에는 ‘살아 있다’와 ‘판별할 수 없다’가 똑같은 신호로 도착했을 뿐이다.
그 뒤로 50년, 우리는 그 신호를 화학으로 설명했다가 다시 의심하기를 되풀이했다.
화성은 한 번도 침묵하지 않았다. 우리가 그 말을 아직 못 알아들었을 뿐이다.
- 출처 ↗ NASA Science — Viking 1 (첫 성공 착륙 개요)
- 출처 ↗ NASA — First Photograph Taken on Mars Surface (1976)
- 출처 ↗ Klein 외, “The Viking biological investigation: preliminary results,” Science (1976)
- 출처 ↗ Levin·Straat, “The Case for Extant Life on Mars…,” Astrobiology (2016)
- 출처 ↗ “The Viking biology experiments on Mars revisited,” Icarus (2025)
- 출처 ↗ Johns Hopkins — In Memoriam, Dr. Gil Levin (2021)
- 출처 ↗ Smithsonian National Air and Space Museum — Viking GC-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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