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진토닉이 당기는 요즘, 그 씁쓸함의 정체는 칵테일 재료가 아니었습니다
한여름 진토닉이 당기는 요즘, 그 씁쓸함의 정체는 칵테일 재료가 아니었습니다
토닉워터는 마시기 싫은 말라리아 약을 삼키려고 만든 물건입니다. 그런데 '저녁 진토닉이 대영제국 장교들을 말라리아에서 지켰다'는 낭만적인 이야기마저, 대부분은 뒤에 붙은 전설입니다.
블랙라이트를 켠 여름 바에서 진토닉을 시켜 보면 이상한 일이 벌어집니다. 잔 속 투명하던 액체가 갑자기 파랗게 빛납니다. 옆자리 콜라도, 맥주도, 그냥 소다수도 그러지 않습니다. 오직 토닉워터만 형광 파란빛을 냅니다. 색소를 탄 것도 아닙니다.
이 파란빛은 오래된 약 하나가 아직 잔 속에 남아 있다는 신호입니다. 한때 서양이 가진 유일한 말라리아 치료제였던 물질, 퀴닌입니다.
파란빛의 정체 — 잔 속에 남은 약
토닉워터가 빛나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그 안에 든 퀴닌이 자외선을 흡수했다가 파란빛으로 되뱉기 때문입니다. 블랙라이트는 눈에 보이지 않는 자외선을 쏩니다. 퀴닌 분자는 그 보이지 않는 빛을 받아 잠깐 들뜬 상태가 되고, 다시 가라앉으면서 우리 눈에 보이는 파란빛을 내놓습니다. 물감 한 방울 없이 스스로 빛을 냅니다. 형광펜이 햇빛 아래서 유난히 쨍해 보이는 것과 똑같습니다.
퀴닌은 이 성질이 워낙 또렷해서, 실험실에서 형광을 측정할 때 기준물질로 쓸 정도입니다. 자외선을 쏘면, 조건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흡수한 빛의 절반가량을 다시 파란빛으로 내보냅니다. 다른 성분—물, 설탕, 탄산, 구연산—은 아무 빛도 내지 않습니다. 잔을 빛나게 하는 건 오직 퀴닌 하나입니다. Scientific American이 이 물을 '어둠 속에서 빛나는 물(glow-in-the-dark water)'이라 부른 것도 그래서입니다.
그리고 이 퀴닌이야말로, 토닉워터를 씁쓸하게 만드는 바로 그 물질입니다. 우리가 '토닉 특유의 맛'이라 여기는 그 쌉싸름함은 사실 약맛입니다.
쓴맛은 원래 맛이 아니라 약이었다
퀴닌은 남아메리카 안데스 산비탈에서 자라는 기나나무(신코나) 껍질에서 나옵니다. 사람들이 '열병 나무'라 부르던 그 나무의 껍질을, 안데스의 퀘추아족은 오래전부터 열과 오한을 다스리는 데 썼습니다. 17세기 페루에 들어간 예수회 선교사들이 이 지식을 배워 유럽으로 들여왔고, 껍질은 '예수회 껍질', '페루 껍질'이라는 이름으로 팔려 나갔습니다. 영국 왕립식물원 큐(Kew)의 정리에 따르면, 이후 300년 가까이 이 껍질은 서양이 가진 유일하게 듣는 말라리아 약이었습니다.
이름에는 엉뚱한 사연이 붙어 있습니다. 식물학자 린네는 1742년 이 나무의 속명을 '신코나(Cinchona)'로 지었습니다. 페루 부왕의 아내였던 친촌(Chinchón) 백작부인이 이 껍질로 말라리아를 고쳤다는 이야기를 기려서였습니다. 그런데 린네는 철자에서 h를 빠뜨렸고, 정작 그 치유담은 20세기 들어 학계가 거의 사실이 아니라고 결론지었습니다. 케임브리지대 도서관의 신코나 자료도 이 전설을 근래 연구로 뒤집힌 이야기로 정리합니다.
세상에 첫 말라리아 약을 준 나무는, 정작 그 약으로 나은 적이 없어 보이는 귀족 부인의 이름을, 그것도 철자가 틀린 채 답니다.
정작 이름을 지어 준 사람들은 따로 있습니다. 1820년 두 프랑스 화학자 펠레티에와 카방투가 껍질에서 순수한 유효 성분을 처음 뽑아냈습니다. 두 사람은 이 물질을 퀘추아어로 껍질을 뜻하는 '키나(quina)'에서 따 '퀴닌(quinine)'이라 불렀습니다. 유럽이 백작부인을 기린 그 나무의 진짜 이름은, 원주민의 말 속에 처음부터 있었습니다.
진을 탄 건 취향이 아니라 궁리였다
문제는 이 약이 지독히 썼다는 데 있습니다. 19세기 영국은 인도를 비롯한 열대 식민지 곳곳에서 말라리아와 싸웠고, 그곳에 나간 군인과 관리에게 퀴닌을 매일 삼키게 했습니다. 하지만 맨입에 삼키기 어려울 만큼 쓴 가루였습니다. 그래서 소다수에 타고 설탕을 넣어 넘기기 좋게 만든 것이 토닉워터입니다. 1858년 이래즈머스 본드가 첫 상업 토닉워터의 특허를 냈고, 1870년에는 슈웹스가 인도 주재 영국인을 겨냥한 'Indian Quinine Tonic Water'를 내놓았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썼습니다. 이번엔 장교들이 자기 술을 보탰습니다. 마침 진은 그 무렵 영국 장교의 술로 자리를 잡아 가고 있었고, 주니퍼와 감귤 향이 퀴닌의 쓴맛을 가려 주었습니다. 여기에 라임까지 짜 넣자, 매일 억지로 삼키던 약이 해 질 녘의 한 잔으로 바뀌었습니다. '진 앤드 토닉'이라는 말이 알려진 한 가장 이르게 활자에 오른 것도 이 무렵, 1868년의 한 인도 잡지에서였습니다.
그 배후에는 제국의 물류가 있었습니다. 남아메리카 나라들은 신코나 씨앗의 반출을 금지하며 독점을 지켰고, 유럽 열강은 그 씨앗을 빼내려 경쟁했습니다. 영국은 1860년 클레먼츠 마컴을 앞세워 인도에 나무를 옮겨 심었지만 퀴닌 함량이 낮았고, 1865년 찰스 레저가 볼리비아 원주민 마누엘 인크라 마마니의 도움으로 빼낸 씨앗은 껍질에 퀴닌이 8~13퍼센트에 이르렀습니다. 영국이 사기를 주저하는 사이 네덜란드가 이 씨앗을 사들여 자바에 심었고, 1930년대에는 세계 퀴닌의 열에 아홉이 넘는 양이 그 섬 한 곳에서 나왔습니다. 남미의 나무 한 종이 제국을 지탱하는 도구가 된 것입니다.
쓴 약을 넘기려는 궁리에서 태어난 기호품은 진토닉만이 아닙니다. 비슷한 시기 프랑스도 북아프리카에 보낸 외인부대에 퀴닌을 먹이느라 애를 먹었고, 정부가 내건 현상 공모에서 1846년 파리의 조제프 뒤보네가 퀴닌을 단맛 나는 포도주에 녹여 답을 냈습니다. 오늘날 뒤보네·릴레·비르 같은 아페리티프가 묶이는 '키나(quinquina)' 계열은, 이름부터 신코나 껍질을 뜻하는 퀘추아어에서 왔습니다. 영국은 쓴 약을 진에 실어 넘겼고, 프랑스는 포도주에 실어 넘겼습니다. 그리고 약효가 뒤로 물러난 다음에도, 그 '삼키는 방식'만은 살아남아 취향으로 굳었습니다.
그런데 그 잔이 정말 사람을 지켰을까
여기까지 들으면 자연스레 이런 그림이 떠오릅니다. 대영제국이 저녁마다 진토닉을 홀짝이며 말라리아를 이겨 냈다는 그림 말입니다. 실제로 이 이야기는 그렇게 퍼져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큐 왕립식물원은 바로 이 대목을 의심합니다. 열대의 진토닉이 말라리아 예방약이었다는 통념 자체가 20세기 들어 생긴 전설로 보인다는 것입니다. 빅토리아 시대 사람들은 진토닉을 대체로 더위를 식히는 시원한 음료로 마셨습니다.
숫자를 대 보면 더 분명해집니다. 오늘의 토닉워터에도 진짜 퀴닌이 들어갑니다. 시판 제품에는 대개 1리터에 25에서 65밀리그램이 들어 있고, 한 잔에 든 양은 많아야 20밀리그램 안팎입니다. 미국 FDA는 상한을 1리터에 83밀리그램으로 묶고, 라벨에 'quinine'을 반드시 적게 합니다. 반면 말라리아를 치료하는 퀴닌은 하루 500에서 1,000밀리그램을 씁니다. 그 낮은 쪽 용량이라도 채우려면 토닉워터를 6리터 가까이, 큰 잔으로도 스무 잔이 넘게 들이켜야 합니다. 물질은 그대로지만, 오늘의 잔에 든 양은 약이 되기엔 한참 모자랍니다.
베란다에서 진토닉을 홀짝이던 장교를 실제로 지킨 건, 달콤한 그 잔이 아니었습니다. 낮에 따로 삼킨 훨씬 쓰고 진한 가루였습니다. 약과 잔은 어느 순간 갈라섰습니다. 약은 더 세고 정확한 형태로 병원으로 갔고, 잔은 맛과 습관만 챙겨 바에 남았습니다. 오늘 우리가 드는 잔은, 그 갈라선 자리의 이쪽 편입니다.
약이 떠난 자리에서 이 잔은 오히려 더 정교해졌습니다. 오늘 '제대로 만든 진토닉'이라 부르는 공식은 대체로 이렇게 굳었습니다. 큰 잔에 얼음을 가득 채우고, 진 50밀리리터에 차가운 토닉 100에서 150밀리리터를 붓되, 거품이 죽지 않게 토닉은 잔 벽을 타고 흘려 넣습니다. 진과 토닉의 비율은 1대 2에서 1대 3 사이, 여기에 라임 한 조각을 얹습니다. 2000년대 들어서는 스페인이 커다란 풍선 잔에 이 의식을 새로 차려 세계로 퍼뜨렸습니다. 약효를 잊은 지 한참 뒤에도, 습관은 이렇게 제 형식을 계속 다듬었습니다.
진토닉을 오늘까지 데려온 건 퀴닌의 약효가 아니라, 쓴맛을 넘기려던 궁리와 거기 얹힌 그럴듯한 이야기였다. 약효는 진작 더 센 알약으로 넘어갔고, 잔에는 습관만 남았다. 습관은 자기가 왜 시작됐는지 되묻지 않는다. 그냥 이어진다.
- 출처 ↗ Royal Botanic Gardens, Kew — Just the tonic: A natural history of tonic water
- 출처 ↗ Cambridge University Library — Products of the Empire: Cinchona, a short history
- 출처 ↗ McGill University, Office for Science and Society — Malaria: the reason behind gin and tonic
- 출처 ↗ Scientific American — Explore Glow-in-the-Dark Water
- 출처 ↗ Royal Society of Chemistry (RSC Education) — Jesuits’ powder and quinine
- 출처 ↗ Difford’s Guide — Kina & quinquina aromatised wines
- Harvard Health Publishing — 토닉워터·퀴닌 용량 (링크 미확인, 매체명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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