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6년 전 오늘 나온 미국 특허 1호는 잿물 만드는 법이었습니다 — 미국을 발명의 나라로 만든 건 천재가 아니라 4달러였습니다 — Woody Magazine, 2026년 7월 31일
Woody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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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7월 31일 (금)
236년 전 오늘 나온 미국 특허 1호는 잿물 만드는 법이었습니다 — 미국을 발명의 나라로 만든 건 천재가 아니라 4달러였습니다
같은 시기 영국에서 특허 한 장을 받으려면 대장장이 1년치 임금이 들었습니다. 그 값에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특허라고 하면 발명가를 지켜주는 장치라고 생각합니다. 그럴 만합니다. 미국 헌법에 그렇게 적혀 있고,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내용도 다르지 않습니다. 그런데 236년 전 오늘 미국이 1호 특허를 내줬을 때, 판을 실제로 움직인 건 보호가 아니었습니다.
그 1호 특허는 잿물 만드는 법이었습니다.
재를 팔아 먹고살던 나라
1790년 7월 31일, 새뮤얼 홉킨스라는 사람이 미국 최초의 특허를 받았습니다. 등록된 내용은 “새로운 장치와 공정으로 포타시와 펄애시를 만드는 법”이었습니다. 포타시는 나무 태운 재를 물에 녹인 다음 무쇠솥에 끓여서 얻는 알칼리 덩어리입니다. 이름부터 솥(pot)의 재(ash)입니다.
시시해 보입니다. 그런데 당시 사람들은 이걸 검은 금이라고 불렀습니다. 유리를 녹이고 비누를 만들고 화약을 배합하고 모직물을 표백하는 데 전부 포타시가 들어갔으니까요. 합성화학이 나오기 전이라 알칼리를 얻는 길이 사실상 그것뿐이었습니다. 게다가 갓 독립한 미국에는 숲이 끝없이 널려 있었고, 농지를 만드느라 태운 나무의 재가 그대로 쌓였습니다. 미국은 그 재를 팔아 먹고살았습니다. 1호 특허가 잿물이었던 건 그 나라 경제의 자화상입니다.
심사는 누가 했을까요. 특허청이 없었습니다. 1790년 특허법은 국무장관과 전쟁장관, 법무장관 세 사람에게 심사를 맡겼습니다. 홉킨스의 문서에는 조지 워싱턴 대통령과 법무장관 에드먼드 랜돌프가 서명했고, 국무장관 토머스 제퍼슨이 발급했습니다. 제퍼슨 본인이 소문난 발명광이라 신청서를 직접 들여다봤습니다. 그해 미국이 내준 특허는 전부 세 건이었습니다. 나머지 둘은 양초 만드는 법과 올리버 에번스의 제분 기계였습니다.
정작 1호를 받은 홉킨스가 누구인지는 아직 다 풀리지 않았습니다. 미국 정부 기록은 버몬트 사람으로 적어뒀지만, 1990년대에 역사가 데이비드 맥시가 자료를 뒤진 끝에 필라델피아의 퀘이커교도를 지목했습니다.
진짜 발명품은 가격표였습니다
여기까지는 소박한 출발 이야기입니다. 미국 혁신 신화의 첫 장면으로 쓰기 딱 좋고, 실제로 대부분 그렇게 씁니다. 그런데 1790년 특허법에서 정말로 새로웠던 건 심사 절차도 아니고 14년이라는 독점 기간도 아니었습니다. 값이었습니다.
홉킨스가 낸 돈은 선불 50센트에, 특허 문서를 옮겨 적는 단어당 요금, 그리고 몇 가지 잔돈을 합쳐 4~5달러 수준이었습니다. 1793년에 법을 고치면서 30달러 단일 요금으로 올렸는데, 1836년에 정식 특허청을 세우고 전업 심사관을 두면서도 30달러를 그대로 뒀습니다.
이 숫자가 얼마나 이상한지는 바다 건너를 봐야 압니다.
96파운드 7실링 8펜스
1850년에 찰스 디킨스가 짧은 글을 하나 씁니다. 「가난한 사람의 특허 이야기」. 화자는 존이라는 버밍엄 대장장이입니다. 쉰여섯 살이고, 하루 열두어 시간씩 일하고, 20년에 걸쳐 뭔가를 만들어 크리스마스이브 밤 열 시에 완성합니다. 아내를 불러 세워놓고 둘이 모형 앞에서 눈물을 흘렸다고 적혀 있습니다.
존에게는 목돈이 하나 있었습니다. 죽은 처남이 아내에게 남긴 128파운드 10실링. 늙어서 일 못 하게 될 때 쓰려고 손대지 않고 묻어둔 돈이었습니다. 부부는 그 돈에 구멍을 내기로 합니다.
존은 런던으로 올라가 여왕에게 올리는 청원서부터 씁니다. 형평법원 관리 앞에서 선서하는 데 1실링 6펜스, 내무부에 2파운드 2실링 6펜스, 법무장관실에 4파운드 4실링. 여기까지가 시작이었습니다. 여왕이 서명해 돌려보내면 내무장관이 또 서명하고, 그 영장 사본 한 장에 7파운드 13실링 6펜스가 나갔습니다. 그리고 뒤에 가서 같은 절차를 한 번 더 밟습니다.
존은 6주 넘게 런던에 머물렀습니다. 거쳐 간 관문이 서른다섯 단계였고, 왕좌의 여왕에서 시작해 부밀랍봉인관보(Deputy Chaff-wax)라는 자리에서 끝났습니다. 존은 마지막에 이렇게 적습니다. 그 부밀랍봉인관보라는 걸 한번 보고 싶다, 사람인가, 아니면 뭔가.
전 재산의 4분의 3입니다. 임금으로 따지면 감이 더 옵니다. 1860년대 중반 런던에서 대장장이와 목수, 벽돌공의 일당이 6실링 6펜스였습니다. 주 6일을 꼬박 채워도 1년에 100파운드 남짓입니다. 존이 살던 1850년의 임금은 그보다 낮았습니다. 특허 한 장이 같은 직종 1년치 임금을 통째로 가져갔습니다. 오늘 물가로 옮기면 3천만 원대, 당시 사람들의 소득 수준에 견주면 3억 원대가 됩니다. 어느 쪽으로 계산해도 대장장이가 낼 돈은 아닙니다.
영국은 발명을 심사하지 않았습니다
이걸 관료들이 자리마다 돈을 뜯어간 이야기로 읽으면 깔끔합니다. 디킨스도 그렇게 썼고, 맞는 말입니다. 존이 나열한 직함만 봐도 그렇습니다. 특허청, 등본 서기, 대법관, 옥새관, 대법관 지갑지기, 하나퍼 서기와 그 대리, 부인장관, 부밀랍봉인관보. 고무줄 하나를 특허 내려 해도 이 사람들 전부에게 돈을 쥐여줘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 값에는 기능이 하나 더 있었습니다. 영국은 발명을 심사하지 않았습니다. 새로운지 아닌지를 관청이 따져보지 않았고, 대신 값으로 걸렀습니다. 100파운드를 감당할 수 있는 사람만 문 안으로 들이면 어설픈 신청은 알아서 사라집니다. 심사관을 두는 대신 입장료를 받은 겁니다.
미국은 정반대로 갔습니다. 입장료를 거의 없애고, 대신 입구에서 물건을 봤습니다. 장관 셋이 앉아 충분히 유용하고 중요한 발명인지를 따졌고, 1836년부터는 전업 심사관이 그 일을 넘겨받았습니다.
그래서 누가 발명가가 됐나
문턱을 낮추면 무슨 일이 생기는지는 숫자로 남았습니다.
경제사학자 조리나 칸은 1790년부터 1920년까지 미국과 영국, 프랑스의 특허 제도를 비교했습니다. 이 기간 대부분의 해에 미국은 인구당 특허 건수에서 두 나라를 앞섰습니다. 1790년대에 인구 100만 명당 연 10건이던 특허가 1910년대에는 400건을 넘었습니다.
더 흥미로운 건 그 특허를 누가 냈느냐입니다. 미국 특허권자 가운데 평생 10건 이상을 받은 사람은 5%가 안 됐고, 절반 넘는 사람이 평생 딱 한 건을 받고 끝났습니다. 19세기 전반을 지나며 상인과 전문직이 낸 특허의 비중은 줄었고, 장인과 제조업자가 낸 비중은 늘었습니다.
우리는 발명의 역사를 위대한 개인의 목록으로 배웁니다. 그런데 미국 특허를 지배한 건 그 목록에 오를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평생 한 번 특허를 내고 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사람들이 문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던 이유는 재능이 갑자기 늘어서가 아닙니다. 입장료가 4달러였기 때문입니다.
60년 뒤, 영국이 따라 내렸습니다
1851년 런던 만국박람회에서 영국은 자기 물건과 미국 물건을 나란히 놓고 보게 됩니다. 그리고 이듬해, 두 세기 만에 처음으로 특허법을 고칩니다.
1852년 3월 상원에서 법안을 설명한 대목이 의사록에 남아 있습니다. 종전에는 특허를 신청하면 100파운드가 들었는데 앞으로 첫 3년간은 수수료 20파운드에 인지세 5파운드면 된다는 내용입니다. 대신 3년째에 50파운드, 7년째에 100파운드를 더 내야 특허를 살려둘 수 있게 했습니다. 입구를 낮추는 대신 유지비를 붙였습니다.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아일랜드로 갈라져 있던 제도도 하나로 합치고 영국 특허청을 세웁니다.
효과는 이듬해에 바로 표가 났습니다. 개혁 직전 마지막 해인 1851년 잉글랜드에서 나온 특허가 455건이었는데, 1853년에는 영국 전체에서 2,187건이 나왔습니다.
다만 영국이 미국에서 베낀 건 값까지였습니다. 미국식 심사제를 들여오자는 조항은 하원을 지나며 빠졌습니다. 문은 열었는데 입구에 사람을 세우지는 않았습니다. 영국이 특허청에 심사 기능을 붙인 건 1883년에 가서였고, 그마저도 출원인이 적어낸 기술 내용이 맞는지 확인하는 수준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236년이 지난 지금도 값이 이야기의 한가운데 있습니다.
미국 특허청은 지난 4월, 아직 심사를 시작하지 못한 출원이 776,995건이라고 밝혔습니다. 2025년 1월 최고치 837,928건에서 내려온 숫자이고, 거의 10년 만에 처음으로 한 회계연도 안에 처리한 건수가 새로 들어온 건수를 앞섰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줄에는 옆길이 있습니다. 트랙 원이라는 제도인데, 추가 수수료를 내면 열두 달 안에 결론을 내주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2026년 6월 개정 수수료표 기준으로 대기업 4,515달러, 소기업 1,806달러, 마이크로기업 903달러입니다.
웃돈을 받는 게 나쁘다고만 하기는 어렵습니다. 제품 출시나 투자 일정 때문에 결론이 빨리 나와야 하는 발명이 실제로 있으니까요. 그런데 같은 문제를 다르게 푼 나라들이 있습니다.
일본에도 조기심사가 있는데 추가 수수료를 받지 않습니다. 2023회계연도 기준으로 일반 출원은 심사를 청구하고 첫 통지를 받기까지 9.4개월이 걸렸고, 조기심사는 2.1개월이 걸렸습니다. 영국의 그린 채널도 수수료가 없습니다. 한국은 20만 원을 받습니다.
액수보다 눈에 띄는 건 조건입니다. 일본은 자격 요건을 따지고, 영국은 발명이 환경에 이롭다는 설명을 요구하고, 한국은 우선심사 대상이 아니라고 판정하면 낸 돈의 대부분을 돌려줍니다. 세 나라 모두 왜 급한지를 먼저 묻습니다. 미국의 트랙 원은 묻지 않습니다. 청구항 수만 맞추고 돈을 내면 됩니다.
영국은 올해 4월에 특허 수수료를 올렸습니다. 2018년 이후 첫 인상이었고, 출원 75파운드에 검색 200파운드, 심사 130파운드를 더해 기본 405파운드가 됐습니다. 디킨스의 존이 낸 96파운드는 오늘 물가로 그 40배쯤 됩니다. 영국은 결국 문을 아주 넓게 열었습니다.
한국은 어떨까요. 전자출원 출원료가 46,000원, 심사청구료가 143,000원입니다. 청구항마다 44,000원이 붙지만 기본은 19만 원 안팎이고, 개인과 중소기업은 최대 70%까지 감면받습니다. 들어오는 값이 19만 원인데 순서를 당기는 값이 20만 원입니다.
그리고 지난해 10월, 특허청이라는 이름이 없어졌습니다. 정부조직법 개정으로 국무총리 소속 지식재산처가 됐고, 조직도 57개 과 1,785명에서 62개 과 1,800명으로 커졌습니다. 236년 전 미국에는 특허청이 아예 없어서 장관 셋이 심사했는데, 한국은 반대편 끝까지 갔습니다.
결과는 숫자로 나와 있습니다. 세계지식재산기구가 지난해 낸 지표를 보면 인구 100만 명당 내국인 특허 출원에서 한국이 3,783건으로 세계 1위입니다. 2위 일본이 1,913건, 3위 스위스가 1,235건입니다. 우리는 2위의 두 배를 냅니다.
그러면 2위는 얼마를 받을까요. 일본은 출원료가 14,000엔이고, 심사를 청구할 때 138,000엔에 청구항마다 4,000엔이 더 붙습니다. 기본만 합쳐도 15만 엔이 넘습니다. 원화로 130만 원대이고, 한국의 일곱 배입니다.
물론 값이 전부를 설명한다고 말하면 지나칩니다. 한국은 대기업 몇 곳이 출원을 대량으로 쏟아내는 구조이고, 일본도 중소기업과 개인에게는 심사료를 절반이나 3분의 1로 깎아줍니다. 다만 싼 쪽이 더 많이 낸다는 관계만큼은 236년째 방향이 바뀌지 않았습니다.
미국 헌법은 발명을 장려하겠다고 적었습니다. 그런데 발명가에게 독점을 주는 법이라면 영국이 훨씬 먼저 갖고 있었습니다. 두 나라를 갈라놓은 건 법조문이 아니라 창구에 붙은 숫자였습니다.
미국은 그 숫자를 내렸고, 영국은 60년을 버티다 따라 내렸습니다. 값을 매기는 순간 제도는 이미 자기편을 골랐습니다.
- 출처 ↗ 미국 정부간행물국(GPO), 「Anniversary of the First Patent Issued in the United States」
- 출처 ↗ 스미스소니언 레멜슨 발명혁신연구센터, 「Licensing the First US Patent」
- 출처 ↗ Houston Law Review, 「Beyond the Progress of the Useful Arts」 (1790·1793년 수수료)
- 출처 ↗ 찰스 디킨스, 「A Poor Man’s Tale of a Patent」 (1850) 원문
- 출처 ↗ The Victorian Web(브라운대), 「Wages and Cost of Living in the Victorian Era」
- 출처 ↗ B. Zorina Khan, 『The Democratization of Invention』 (NBER·케임브리지대 출판부)
- 출처 ↗ Journal of American History, 위 저서 서평(피터 테민)
- 출처 ↗ 영국 의회 의사록(Hansard), 상원 특허법 개정안 심의 (1852년 3월 19일)
- 출처 ↗ 미국 특허상표청(USPTO) 보도자료 (2026년 4월 10일)
- 출처 ↗ 미국 특허상표청 수수료표(현행)
- 출처 ↗ 영국 정부(GOV.UK), 「New fees from 1 April 2026」
- 출처 ↗ 특허로, 수수료 정보 안내
- 출처 ↗ 지식재산처, 특허 우선심사제도 안내
- 출처 ↗ 정부24, 특허료·등록료 및 수수료의 감면
- 출처 ↗ 지식재산처 보도자료, 「국가 지식재산 정책 컨트롤타워, ‘지식재산처’ 출범」
- 출처 ↗ 세계지식재산기구(WIPO), 『World Intellectual Property Indicators 2025』
- 출처 ↗ 일본 특허청(JPO), 출원 및 심사청구 수수료 안내
- 출처 ↗ 일본변리사회, 출원에 필요한 비용 안내
- 출처 ↗ 세계지식재산기구(WIPO), 「Expedited Examination Programs of IP Offices: Japan」
- 출처 ↗ 영국 정부(GOV.UK), 「Patents: accelerated processing」
- 출처 ↗ MeasuringWorth, 「Five Ways to Compute the Relative Value of a UK Pound」 (소득 기준 환산)
- 물가 기준 환산은 영국 통계청(ONS) 합성물가지수를 따랐습니다. 파운드·원 환산에는 1파운드 2,000원, 엔·원 환산에는 100엔 880원을 적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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