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막이 오르는 에든버러 프린지 — 누구나 무대에 설 수 있습니다. 무대를 내줄 극장을 구할 수 있다면요 — Woody Magazine, 2026년 8월 7일
오늘 막이 오르는 에든버러 프린지 — 누구나 무대에 설 수 있습니다. 무대를 내줄 극장을 구할 수 있다면요
오늘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서 세계에서 가장 큰 공연예술 축제가 막을 올립니다. 8월 31일까지 이어지는 에든버러 페스티벌 프린지입니다. 올해 공개된 공연만 4,000편이 넘고, 71개국이 작품을 들고 옵니다. 지난해에는 관객이 티켓 260만 장을 끊었습니다. 그런데 이 거대한 축제에는 프로그램을 짜는 사람이 없습니다. 심사위원도, 초청장도, 예선도 없습니다. 축제를 관장하는 프린지 협회가 공식 홈페이지에 밝혀 둔 참가 자격은 한 문장이 전부입니다.
앞 절반은 유명합니다. 이 축제가 79년 동안 지켜 온 원칙을 요약한 문장이고, 세계의 무명 예술가들이 에든버러행 짐을 싸게 만든 문장이니까요. 그런데 우리는 뒤 절반을 잘 읽지 않습니다. 오늘은 그 뒤 절반이 실제로 어떻게 굴러가는지 따라가 보겠습니다.
초청받지 못한 여덟 극단
시작은 1947년입니다. 전쟁이 끝나고 2년, 에든버러는 갈라진 유럽을 문화로 다시 잇겠다며 국제 페스티벌을 열었습니다. 글라인드본 오페라단, 할레 오케스트라 같은 이름난 단체들이 초청장을 받고 도시의 큰 무대를 채웠습니다. 그리고 초청장을 받지 못한 극단 여덟 곳이 그냥 왔습니다. 대부분 소규모 아마추어 극단이었고, 서로 연락하고 온 것 같지도 않습니다. 제각각 도착했습니다. 여덟 팀은 국제 페스티벌이 쓰지 않는 작은 극장 네 곳을 빌렸고, 한 팀은 강 건너 던펌린 수도원까지 나가 중세 도덕극 〈에브리맨〉을 올렸습니다. 초청장이 없으면 무대를 직접 구하면 된다 — 첫해부터 이 축제는 그렇게 굴러갔습니다.
이듬해 극작가 로버트 켐프가 지역 신문 에든버러 이브닝 뉴스에 이 광경을 이렇게 적었습니다. "공식 페스티벌 연극의 언저리(fringe)에서, 전보다 많은 자발적인 판이 벌어지고 있는 듯하다." 언저리라는 단어가 그대로 축제의 이름이 됐습니다. 켐프보다 앞선 용례도 몇 건 남아 있지만, 이름을 굳힌 공은 다들 켐프에게 돌립니다.
심사하지 않는다는 한 줄
무단 참가자는 해마다 늘었습니다. 안내 책자도, 공동 매표소도 없이 극단마다 제각각 표를 팔다 보니, 1954년에 처음으로 구심점이 필요하다는 논의가 나왔습니다. 1958년, 참가 극단들은 프린지 협회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규약에 한 줄을 박았습니다. 협회는 축제 프로그램 심사에 일절 관여하지 않는다. 1947년에 아무도 여덟 극단을 골라 주지 않았듯, 앞으로도 아무도 고르지 않겠다는 선언이었습니다.
그래서 협회가 하는 일은 고르는 일만 빼고 전부입니다. 프로그램 책자를 만들고, 공동 매표소를 돌리고, 참가자에게 정보를 줍니다. 등록비를 내면 협회는 어떤 공연이든 공식 책자에 올려 줍니다. 축제의 주요 공연장 운영사 중 하나인 길디드 벌룬은 참가자 안내문에서 협회를 이렇게 소개합니다. "프린지 협회는 행정 조직이다. 공연장을 운영하지 않고, 공연을 편성하지도 않는다."
여기까지 보면 이야기가 깔끔합니다. 고르는 사람이 없으니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가 걸립니다. 8월의 에든버러는 무한하지 않습니다. 4,000편이 넘는 공연이 들어갈 무대와 시간대는 유한합니다. 자리가 모자라면 누군가는 골라야 합니다. 협회가 고르지 않기로 했다고 해서 고르는 일이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일은 무대를 가진 쪽으로 넘어갑니다.
무대를 가진 쪽의 계약서
우리에게 익숙한 공간 중에 비슷하게 굴러가는 곳이 있습니다. 백화점입니다. 백화점은 아무 브랜드나 받지 않습니다. 입점 심사를 하고, 목 좋은 층과 구석 자리를 나눠 줍니다. 그런데 골라 놓고 끝이 아닙니다. 매장을 꾸미는 돈도, 판매 수수료도 입점한 브랜드가 냅니다. 물건이 안 팔리면 그 손해도 브랜드 몫입니다. 백화점은 고르고, 자리를 내주고, 돈을 받습니다. 장사의 위험은 들어온 쪽이 집니다.
에든버러의 8월이 이 구조로 돌아갑니다. 어셈블리, 플레전스, 언더벨리, 길디드 벌룬. 축제 한복판의 목 좋은 무대들을 쥔 4대 공연장 운영사입니다. 이들은 공연을 고릅니다. 플레전스는 공식 문답 페이지에 "지원작(submission)이 워낙 많이 들어와 개별 피드백은 드리지 못한다"고 적어 뒀습니다. 심사하지 않는 축제 안에서, 무대를 가진 쪽은 '지원'이라는 단어를 씁니다.
계약 조건을 읽으면 백화점이 더 선명해집니다. 플레전스의 표준 계약은 티켓 수입을 극단 60, 공연장 40으로 나눕니다. 여기까지는 공정해 보입니다. 그런데 공연장 몫에는 바닥이 깔려 있습니다. 최소 보증액입니다. 기준은 객석의 40%입니다. 관객이 객석을 40% 채웠을 때 공연장이 가져갈 금액 — 표가 그보다 덜 팔려도 공연장은 그만큼을 받습니다. 관객이 열에 하나만 와도 공연장 몫은 줄지 않고, 모자란 돈은 극단이 채웁니다. 이게 끝이 아닙니다. 공연장이 내준 자리를 수락하는 순간, 극단은 축제 등록비와 마케팅 분담금 630파운드, 예치금부터 냅니다. 막이 오르기도 전에 돈이 먼저 나갑니다.
실제로 얼마가 드는지, 지난해 한 극단이 명세를 공개했습니다. 런던의 극단 샤이트 프로덕션스는 뮤지컬 코미디 〈걸 팝!〉을 들고 오면서 일간지 스코츠맨에 예산을 밝혔습니다. 총 3만 5,000파운드. 그중 숙박과 이동에만 1만 파운드가 들어갑니다. 극단의 계산으로는 매회 객석을 절반씩 채워도 공연장 몫을 뗀 순수입이 2만 4,000파운드입니다. 그러니까 이 극단은 공연이 웬만큼 흥행해도 1만 파운드 넘게 잃는 계산을 하고 왔습니다.
(프린지 협회가 스코틀랜드 의회에 제출한 자료)
이 명세서의 몸통은 숙박입니다. 협회가 스코틀랜드 의회에 낸 자료를 보면, 공연팀이 8월 한 달 장기 숙소를 구하는 값이 6년 사이 최대 300% 올랐습니다. 4대 운영사 중 하나인 어셈블리의 예술감독은 팬데믹 이전과 견줘 숙박비가 300% 뛰는 동안 티켓 수입은 15% 느는 데 그쳤다고 말합니다. 나가는 돈과 들어오는 돈의 격차를 공연팀이 자기 지갑으로 메우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무대에 오르는 기준도 바뀌었습니다. 심사위원이 있었다면 "이 공연이 충분히 좋은가"를 물었겠지요. 지금 무대를 내주는 쪽이 묻는 것은 "이 손해를 감당할 수 있는가"입니다. 베테랑도 이 질문 앞에 섭니다. 프린지 단골이던 코미디언 리처드 헤링은 "이제 어느 정도 재산이 있는 사람만 올 수 있는 축제"라며 불참을 선언했습니다. 에든버러가 고향인 방송인 게일 포터는 데뷔 공연 31회를 전부 매진시키고도, 이듬해 숙소값 때문에 오지 못했습니다.
1,200편 중 하나, 난타
우리나라 공연도 이 문을 지나갔습니다. 1997년 서울에서 첫선을 보인 〈난타〉는 1999년 에든버러에서 서구 무대에 데뷔했습니다. 그해 프린지에 걸린 공연 1,200여 편 가운데 한국 작품은 난타 하나였습니다. 그리고 난타가 두드린 문도 협회의 문이 아니었습니다. 난타와 함께 처음 에든버러를 밟은 공연기획자 앤젤라 권은 1999년부터 공연장 파트너 어셈블리와 쌓아 온 관계를 성과의 배경으로 꼽습니다. 데뷔 무대는 흥행했고, 이듬해 앙코르 공연은 전 회 매진이었습니다. 그 뒤로 18개국 투어가 이어졌고, 뉴욕에서는 브로드웨이 밖 중소 극장 무대를 이르는 오프브로드웨이에도 올랐습니다.
돌아보면 난타는 이 축제의 수순을 그대로 밟았습니다. 축제는 난타를 골라 주지 않았습니다. 목 좋은 무대를 가진 쪽이 골랐고, 위험은 난타가 졌고, 흥행의 몫도 난타가 가져갔습니다. 백화점 1층에 입점해 대박을 낸 브랜드의 동선 그대로입니다.
그래도 문은 열려 있습니다
여기까지만 쓰면 프린지가 간판만 열어 둔 축제처럼 읽힙니다. 그건 공정하지 않습니다. 열려 있다는 말은 지금도 사실이니까요. 4대 운영사가 축제의 전부가 아닙니다. 펍과 바, 지하 창고와 길거리가 전부 무대가 됩니다. 공짜 공연장을 연결해 주고 공연이 끝나면 모자를 돌리는 '프리 프린지'도 굴러갑니다. 훗날 세계적인 히트작이 된 〈플리백〉도 2013년 이 축제 무대에서 출발했습니다. 작가이자 주연인 피비 월러브리지는 2021년 협회 회장(president)이 됐습니다. 프린지를 세계에서 가장 큰 공연 시장으로 만든 힘이 바로 이 개방성입니다.
문제는 그 개방성과 비용 청구서가 같은 조항에서 나온다는 데 있습니다. 협회도 이 균열을 압니다. 지난해 폐막 발표에서 대표 토니 랭케스터는 "참가 비용 문제에 쉬운 답은 없다"고 인정했습니다. 그러면서 에든버러시와 스코틀랜드·영국 정부에 함께 풀자고 요청했습니다. 그런데 협회가 꺼낼 수 있는 카드 목록에 심사 부활은 없습니다. 공연 수를 줄이면 자리 경쟁이 풀리고 값도 내려가겠지만, 그러려면 1958년 규약의 그 한 줄을 지워야 합니다. 그 한 줄이 이 축제의 정체성입니다. 프린지는 심사를 되살리는 순간 프린지가 아니게 됩니다.
프린지는 79년 동안 어떤 공연도 심사하지 않았습니다. 규약에 적은 약속을 한 번도 어기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고르는 일이 사라진 적은 없습니다. 협회가 내려놓은 그 일을 무대를 가진 쪽이 주워 갔습니다. 심사는 앞으로도 부활하지 않을 겁니다. 필요가 없으니까요. 이제 그 일은 값이 합니다.
- 출처 ↗ 에든버러 페스티벌 프린지 협회 — What is the Edinburgh Festival Fringe (2026년 일정·규모)
- 출처 ↗ 에든버러 페스티벌 프린지 협회 — History of the Fringe (1947년 기원·규약 원칙·참가 자격 문구)
- 출처 ↗ 에든버러 페스티벌 프린지 협회 — 2025년 폐막 발표 (티켓 260만 장·랭케스터 발언)
- 출처 ↗ 에든버러 페스티벌 프린지 협회 — 토니 랭케스터 대표 선임 발표
- 출처 ↗ 플레전스 시어터 트러스트 — 공식 FAQ (60:40 분배·최소 보증액·지원작 접수)
- 출처 ↗ 길디드 벌룬 — 참가자 안내문(2022) (협회의 역할 설명)
- 출처 ↗ The Scotsman — 프린지 참가 비용 실측 기획(2025, 〈걸 팝!〉 예산 명세)
- 출처 ↗ The Scotsman — 프린지 협회의 스코틀랜드 의회 제출 자료 보도(2024, 숙박비 최대 300%)
- 출처 ↗ The Scotsman — 어셈블리 예술감독 인터뷰(2024, 숙박비·티켓 수입 격차)
- 출처 ↗ The Scotsman — 앤젤라 권 인터뷰(2015, 난타의 1999년 데뷔와 이후 성과)
- 출처 ↗ 서울문화투데이 — 앤젤라 권 인터뷰(2024, 1999년 프린지 1,200여 편 중 유일한 한국 작품)
- 출처 ↗ BBC — 프린지 참가 비용과 공연자들의 불참(게일 포터·리처드 헤링)
- 출처 ↗ 글래스고대학교 특별컬렉션 — 에든버러 페스티벌 프린지 아카이브(로버트 켐프의 1948년 명명)
- 출처 ↗ The Scotsman — 1947년 '초청받지 못한 여덟 극단' 기록(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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