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전 오늘부터 34일 — 도버해협 기록은 그 앞 47년보다 더 많이 줄었습니다 — Woody Magazine, 2026년 8월 6일
100년 전 오늘부터 34일 — 도버해협 기록은 그 앞 47년보다 더 많이 줄었습니다
열아홉 살 미국인이 바꾼 것은 자기 기록이 아니라 해협을 건너는 방법이었습니다.
1926년 8월 6일부터 9월 9일까지 34일 동안, 도버해협을 헤엄쳐 건너는 최고 기록이 16시간 33분에서 11시간 5분으로 줄었습니다. 5시간 28분이 사라졌습니다.
그 앞 47년 동안 줄어든 폭은 5시간 12분입니다. 1875년에 영국 상선 선장 매슈 웹이 처음 건넌 뒤로, 선수들이 반세기 가까이 걸려 깎은 시간입니다. 1926년 여름에는 그만큼을 한 달 만에 깎았습니다. 그리고 9월 9일에 세워진 기록을 그 뒤 24년 동안 아무도 넘지 못했습니다.
한 달 사이에 유럽과 미국의 장거리 수영 선수들이 갑자기 세졌을 리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 34일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느냐. 답은 첫날에 있습니다. 100년 전 오늘, 한 사람이 프랑스 쪽 해안에서 물에 들어갔습니다.
그 앞 47년 동안 줄어든 것은 5시간 12분이었습니다.
47년 동안 성공한 사람은 다섯 명이었습니다
도버해협에서 가장 좁은 구간은 프랑스 그리네곶에서 잉글랜드 도버까지 34킬로미터입니다. 짧아 보입니다. 그런데 조류가 여섯 시간마다 방향을 바꿉니다. 헤엄치는 사람은 옆으로 밀려갔다 되밀려오기를 반복하며 지그재그로 갑니다. 그래서 실제로 헤엄치는 거리는 직선거리보다 훨씬 깁니다. 수온은 한여름에도 14도에서 18도 사이입니다.
웹이 처음 건널 때는 21시간 45분이 걸렸습니다. 그 뒤 47년 동안 성공한 사람은 넷이 더 나왔을 뿐입니다. 1926년까지 다섯 명. 이게 전부입니다.
이쯤 되면 우리도 같은 생각을 합니다. 해협은 빨리 가는 종목이 아니라 오래 버티는 종목이다. 맞는 말입니다. 찬물에 열네 시간을 담가두면 체온이 먼저 떨어지고, 체온이 떨어지면 근육이 말을 안 듣습니다. 힘을 아껴야 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평영으로 건넜습니다. 1875년의 웹이 그랬고, 1923년에 16시간 33분으로 최고 기록을 세운 엔리코 티라보스키도 그랬습니다. 같은 해 세 번째로 해협을 건넌 헨리 설리번은 '세계 평영 기록'이라고 새겨진 우승컵을 받았습니다. 평영을 쓴 이유는 분명합니다. 평영으로 가면 고개를 물 밖에 둘 수 있습니다. 앞을 보면서 방향을 잡고, 따라오는 배도 확인합니다. 팔다리를 크게 벌렸다 모으는 동작이라 한 번 젓고 미끄러지는 구간도 깁니다. 힘을 아끼기에 좋은 영법입니다.
해협에는 규정집이 없었습니다. 대신 성공기가 다섯 편 있었습니다. 그 다섯 사람이 어떻게 건넜는지, 아는 건 그게 전부였습니다. 다음 도전자는 그 다섯 중 한 사람에게 배웠습니다.
1925년, 에덜리는 평영으로 헤엄쳤습니다
거트루드 에덜리의 아버지는 맨해튼 암스테르담 애비뉴에서 정육점을 했습니다. 에덜리는 1905년 그 가게 위층에서 태어났고, 1924년 파리 올림픽에서 계영 금메달 하나와 개인 동메달 둘을 땄습니다. 1925년까지 여자 자유형에서 세계 기록 29개를 세웠습니다.
에덜리도 그 성공기 다섯 편을 그대로 배웠습니다.
1925년 8월 18일이 첫 도전이었습니다. 코치는 자베즈 울프였습니다. 스코틀랜드 글래스고 출신 장거리 수영 선수로, 1906년부터 해협에 22번 도전해 22번 다 실패한 사람입니다. 프랑스 해안을 몇백 미터 앞두고 밀려난 적도 있습니다. 실패를 그만큼 쌓은 사람이 당시로선 해협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울프는 주로 평영으로 헤엄쳤습니다. 에덜리에게 가르친 것도 평영이었습니다. 그날 에덜리는 평영으로 37킬로미터를 갔습니다. 8시간 50분이 지났을 때 울프가 위험하다고 판단하고, 다른 수영 선수를 시켜 에덜리를 물에서 끌어냈습니다. 누가 손을 대는 순간 그 도전은 무효가 됐습니다. 에덜리는 격분했습니다.
1926년 8월 6일, 14시간 39분
이듬해 에덜리는 코치를 바꿨습니다. 새 코치 빌 버지스는 1911년에 해협을 건넌 두 번째 사람이었습니다. 그도 열다섯 번 실패한 끝에 성공했고, 그 성공은 평영만 써서 얻은 것이었습니다.
두 코치 모두 평영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1926년 8월 6일 아침, 그리네곶에서 물에 들어간 에덜리는 크롤로 헤엄쳤습니다. 자유형 경기에서 선수들이 쓰는 영법입니다. 양팔을 번갈아 머리 위로 넘기고 다리를 위아래로 텁니다. 평영보다 훨씬 빠릅니다. 대신 미끄러지며 쉬는 구간이 없어 힘이 계속 나갑니다. 당시 상식으로는 단거리용이었습니다.
에덜리가 쓴 것은 그중에서도 8비트 크롤이었습니다. 크롤의 발차기는 양팔을 한 번씩 저을 때 다리를 몇 번 차느냐로 셉니다. 1920년대 코치들은 네 번이 한계라고 봤습니다. 여덟 번은 단거리 선수보다도 빠른 회전입니다. 국제수영명예의전당 기록에 따르면 당시 세계의 전문가들이 저 킥으로는 해협을 못 건넌다고 했습니다.
그 영법을 버지스가 가르친 게 아닙니다. 에덜리가 뉴욕에서 가져왔습니다. 에덜리가 선수로 훈련한 곳은 여성 스위밍 어소시에이션이었습니다. 1917년 샬럿 엡스타인이 만든 뉴욕의 여성 수영 클럽입니다. 엡스타인은 그보다 앞선 1914년에 미국 아마추어체육연맹(AAU)을 설득해 여성이 수영 종목 선수로 등록할 길부터 열었습니다. 여자에게 그 자격이 생긴 지 3년 만에 문을 연 클럽이었습니다. 코치는 루이스 드브레다 핸들리였습니다. 핸들리는 이 클럽 선수들에게 크롤을 가르쳤고, 발차기를 여섯 번, 여덟 번, 많게는 열 번까지 차게 했습니다.
그러니까 에덜리는 두 곳에서 배웠습니다. 해협의 성공기와 뉴욕 수영장의 훈련이었습니다. 1925년에는 앞엣것을 썼고, 1926년에는 뒤엣것을 썼습니다.
그날 에덜리는 14시간 39분 만에 잉글랜드 킹스다운에 올라섰습니다. 거친 바다에 밀려 실제로 헤엄친 거리는 56킬로미터였습니다. 직전 기록은 1923년 엔리코 티라보스키가 평영으로 세운 16시간 33분이었습니다. 1시간 54분이 줄었습니다. 널리 퍼진 숫자는 14시간 31분입니다. 그런데 횡단을 인증하는 채널 스위밍 어소시에이션도, 도버 박물관이 함께 꾸리는 채널 스위밍 도버 아카이브도 14시간 39분으로 적습니다. 그리고 이 아카이브는 크롤로 해협을 건넌 첫 사람이 에덜리라고 적어놓았습니다.
24일 뒤, 그리고 다시 열흘 뒤
에덜리의 기록은 24일을 버텼습니다. 8월 30일 독일의 에른스트 페어쾨터가 12시간 38분에 건넜습니다. 페어쾨터의 기록은 열흘 남짓 버텼습니다. 9월 9일 프랑스의 조르주 미셸이 11시간 5분에 건넜습니다.
34일 만에 3시간 34분이 더 사라졌습니다.
우리는 보통 이런 일을 한 사람이 벽을 깬 것으로 정리합니다. 그럴 만합니다. 실제로 한 사람이 먼저 갔으니까요. 그런데 34일은 그 설명으로 안 풀립니다. 바뀐 것은 사람이 아니라 방법입니다.
미셸의 11시간 5분은 그 뒤 24년을 버텼습니다. 1950년에야 이집트의 하산 압델 라힘이 10시간 50분으로 15분을 줄였습니다. 선수들은 새 영법에서 뽑아낼 수 있는 것을 그해 여름에 거의 다 뽑아냈습니다.
규정집에는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평영을 쓴 것이 규정 때문이었느냐. 아닙니다.
1926년에는 해협 횡단을 관장하는 단체 자체가 없었습니다. 채널 스위밍 어소시에이션은 이듬해인 1927년에 생겼고, 그 앞의 횡단들은 뒤늦게 목록에 올렸습니다. 웹이 처음 건넌 1875년 기록도 그렇게 들어갔습니다. 이 단체는 지금도 영법을 제한하지 않습니다. 기록을 자유형, 배영, 평영, 접영, 혼영으로 나눠 등록할 뿐입니다. 바다에서 열리는 오픈워터 경기 규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영법이든 쓸 수 있고, 섞어 써도 됩니다.
크롤을 못 쓰게 막는 규정은 처음부터 없었습니다. 크롤 없이 건넌 다섯 사람이 있었을 뿐입니다.
성공기에 적힌 것은 규칙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됐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런데 그런 이야기가 다섯 편쯤 쌓이면 우리는 그것을 규칙으로 읽습니다. 그렇게 읽는 편이 안전하기도 합니다. 문제는 우리가 성공기만 센다는 겁니다. 울프의 22번을 사람들은 그가 해협을 잘 안다는 증거로 봤습니다. 평영이 틀렸다는 증거로는 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8비트는 살아남지 못했습니다
에덜리가 옳았고 정통이 틀렸다는 식으로 정리하면 이야기의 절반을 놓칩니다.
오늘날 바다에서 장거리를 헤엄치는 선수들은 대부분 2비트를 씁니다. 양팔을 한 번씩 저을 때 다리를 두 번만 찹니다. 다리를 거의 쓰지 않고 상체로 갑니다. 체력을 아끼기 위해서입니다. 성인 아마추어 수영을 관장하는 미국 마스터스 수영협회는 1500미터 경기에서 거품 이는 6비트가 길고 매끄러운 2비트로 바뀐다고 적습니다. 오픈워터에서는 발차기가 아예 사라지다시피 한다고도 씁니다.
킥 횟수만 놓고 보면 100년 뒤의 답은 핸들리의 8비트가 아니라 1926년 회의론자들 쪽에 가깝습니다.
그러니 에덜리가 증명한 것은 8비트가 맞는다는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평영이 아니어도 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딱 그 하나였습니다. 그 하나로 34일 만에 5시간이 사라졌습니다.
에덜리를 막은 것은 규정이 아니었습니다. 앞사람의 성공기였습니다. 우리는 성공기를 세고 실패기는 세지 않습니다. 틀린 방법이 오래 사는 건 그 때문입니다.
- 출처 ↗ Channel Swimming Association, Gertrude Ederle 1926 공식 기록
- 출처 ↗ Channel Swimming Association, Enrico Tiraboschi 1923 공식 기록
- 출처 ↗ Channel Swimming Dover (Dover Museum), Gertrude Ederle, Channel Swimmer
- 출처 ↗ International Swimming Hall of Fame, Louis deBreda Handley
- 출처 ↗ World Open Water Swimming Association, World Record Progression of English Channel Crossings
- 출처 ↗ Swimming World Magazine, A Look at the English Channel Crossing Speed Progressions
- 출처 ↗ Openwaterpedia, Jabez Wolffe
- 출처 ↗ World Open Water Swimming Association, Racing Rules and Regulations
- 출처 ↗ Smithsonian American Women's History Museum, Gertrude Ederle
- 출처 ↗ Natural Earth, 지도 해안선 자료
- 출처 ↗ Jewish Women's Archive, Charlotte Epstein
- 출처 ↗ U.S. Masters Swimming, Freestyle Kick
- 출처 ↗ U.S. Masters Swimming, Why Don't Open Water Swimmers Kick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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