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 유럽 카페는 얼음을 먼저 주지 않습니다 — 그런데 1899년 영국은 세계에서 얼음을 가장 많이 사들인 나라였습니다 — Woody Magazine, 2026년 8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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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8월 3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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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여름 유럽 카페는 얼음을 먼저 주지 않습니다 — 그런데 1899년 영국은 세계에서 얼음을 가장 많이 사들인 나라였습니다

잔까지 오는 마지막 한 구간이 뚫렸느냐, 안 뚫렸느냐의 문제입니다.

파리든 로마든 아테네든, 올여름 유럽 도시의 카페에 앉아 찬 음료를 시켜 본 사람은 같은 장면을 겪습니다. 잔이 미지근하게 나옵니다. 얼음을 달라고 하면 두 조각이 옵니다. 첫 모금을 넘기기도 전에 녹습니다.

미국에서 온 여행자들이 이 장면을 몇 해째 소셜미디어에 올리고 있습니다. 뉴욕에 사는 이저벨 탄이 CNN에 전한 경험도 그렇습니다. 얼음을 더 달라고 해도 두 조각이 더 나왔습니다. 그래서 반쯤 농담으로 양동이째 달라고 했더니, 이탈리아의 그 식당은 정말 작은 양동이를 내줬습니다.

여기까지 보면 답은 간단합니다. 유럽 사람들은 원래 얼음을 안 쓴다, 취향이 다르다, 냉장고가 작다. 맞는 말입니다. 실제로 영국 가정의 냉장고는 미국 것의 절반쯤이고 제빙기가 달린 모델은 좀처럼 없습니다. 그런데 이 설명에는 걸리는 데가 하나 있습니다. 시점이 안 맞습니다.

냉장고가 나오기 전부터 그랬습니다

조너선 리스는 『Refrigeration Nation』을 쓴 냉장 기술사 연구자입니다. 그는 미국인이 여행지에서 얼음을 못 구해 당황하는 일이 100년도 더 된 문제라고 말합니다. 19세기 후반, 이미 얼음에 길든 사람들은 유럽인에게 얼음을 달라고 했다가 받을 수 없다는 데 어리둥절해했습니다.

가정용 냉장고가 보급되기 한참 전입니다. 냉장고 크기로는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면 그때 유럽에는 얼음이 없었을까요.

영국은 세계에서 얼음을 가장 많이 사들였습니다

런던정경대 경제사학과가 펴낸 세계경제사 네트워크 워킹페이퍼에 보딜 비에르크비크 블레인의 연구가 있습니다. 노르웨이 크라게뢰 박물관 문서고와 영국 국립문서보관소의 관세 원장, 당대 업계지 『콜드 스토리지』를 훑은 논문입니다. 거기 각주 하나에 이런 숫자가 적혀 있습니다.

504,627톤 1899년 한 해 노르웨이가 영국에 판 얼음의 양입니다. 같은 해 영국이 노르웨이 아닌 나머지 전 세계에서 들여온 얼음은 515톤이었습니다.

세기가 바뀔 무렵 노르웨이의 연간 얼음 수출은 100만 톤을 넘었고, 그중 절반 이상이 영국으로 갔습니다. 영국이 수입한 천연얼음의 99% 이상을 노르웨이 한 나라가 댔습니다. 우리가 아는 그림과 정반대입니다. 얼음이 없어서 못 넣은 게 아니었습니다.

얼음이 노르웨이에서 온 이유는 거리입니다. 노르웨이 크라게뢰에서 런던까지는 590해리, 뉴욕에서 런던까지는 3,199해리입니다. 대서양을 건너는 동안 얼음은 녹고, 녹은 만큼이 그대로 원가에 붙습니다. 미국산이 비쌌던 겁니다.

노르웨이 얼음이 얼마나 잘 팔렸는지 보여주는 일화가 있습니다. 1864년 12월, 한 외국 사업가가 오슬로 근교의 오페고르 호수를 사들여 이름을 '웬햄 호수'로 바꿔버렸습니다. 웬햄은 매사추세츠의 호수 이름이자, 당시 영국에서 최고급 얼음의 대명사였습니다. 그 뒤로 오페고르에서 잘라낸 얼음은 영국에서 미국 얼음 행세를 하며 팔렸습니다. 1868년 『더 타임스』는 생선가게 좌판과 웬햄 호수 얼음 회사 진열창에 놓인 그 투명한 덩어리들이 실은 전부 노르웨이산이라고 보도했습니다. 가짜 미국 얼음이었습니다.

그 얼음은 부엌까지 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그 많은 얼음은 다 어디로 갔을까요. 1901년 런던 한 곳이 받은 노르웨이 얼음만 206,978톤입니다.

블레인이 꼽는 최대 구매자는 어업입니다. 1858년 그림스비의 어선들이 바다에서 얼음을 쓰기 시작하면서 조업 거리가 늘고 어획량이 커졌습니다. 정육점과 양조장, 제과업, 아이스크림 노점이 저마다 얼음을 끌어다 썼고, 철도는 화물칸에 얼음을 실었습니다. 도시가 커지고 임금이 오르는 동안 영국의 식품 산업은 얼음 위에서 굴러갔습니다.

그런데 논문에서 이 무역의 성격을 한 문장으로 요약한 대목은 따로 있습니다.

미국과 영국 무역의 뚜렷한 차이는, 영국에는 가정으로 얼음을 배달하는 일이 없었다는 점이다.

영국 사람이 집에서 쓸 얼음을 구하려면 생선가게나 정육점, 약국에 가야 했습니다. 얼음을 파는 상인은 대개 얼음만 팔지 않았고, 얼음은 다른 장사에 딸린 물건이었습니다. 배달은 없었습니다.

택배로 바꿔 놓으면 이해가 빠릅니다. 물건이 항구에 내려 창고까지 들어옵니다. 도매상까지도 옵니다. 그런데 거기서 집 문 앞으로 가는 마지막 한 구간이 없습니다. 19세기 영국의 얼음이 딱 그 상태였습니다. 나라 안에는 얼음이 넘쳤는데, 그 얼음이 부엌으로 들어오는 길만 뚫리지 않았습니다.

미국은 그 구간을 뚫었습니다

그 길을 뚫은 사람은 보스턴 상인 프레더릭 튜더입니다. 1806년 매사추세츠 연못의 얼음을 배에 실어 카리브해 마르티니크로 보낸 것이 시작이었습니다. 현지에 얼음 창고가 없어 첫 항해는 손해로 끝났습니다. 그래도 그는 인도와 카리브해, 미국 남부까지 항로를 넓혔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얼음왕'이라 불렀습니다.

정작 습관을 만든 것은 팔고 남은 얼음이었습니다. 리스의 설명은 이렇습니다. 아무도 그 얼음을 어떻게 처리할지 몰랐고, 그래서 튜더는 미국 술집에 얼음을 공짜로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손님들이 찬 술에 길들자 나중에는 돈을 내고 사러 왔습니다. 그는 시장을 판 게 아니라 만들었습니다.

그다음이 결정적입니다. 아이스박스가 집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Ice』를 쓴 에이미 브래디는 당시 광고가 얼음을 자동차나 텔레비전처럼 다뤘다고 말합니다. 아이스박스를 들여놓는다는 건 이웃에게 나도 중산층이 됐다고 알리는 신호였습니다. 집집마다 상자가 놓이자 얼음 배달부가 다녔고, 배달부가 다니자 상자를 사는 집이 또 늘었습니다.

영국에서는 이 순환이 돌지 않았습니다. 블레인은 잉글랜드 가정에 얼음이 더디게 퍼진 이유로 아이스박스를 갖춘 집이 드물었다는 점을 듭니다. 보관 도구가 없으니 사 온 얼음은 그냥 녹아 없어졌습니다. 녹아 없어지니 살 이유가 줄고, 살 사람이 적으니 배달 노선이 생기지 않았습니다. 노선이 없으니 상자를 들일 이유도 없었습니다. 같은 고리가 미국에서는 감기고 영국에서는 풀렸습니다.

그 격차는 당대에도 눈에 띄었습니다. 브래디는 미국을 찾은 찰스 디킨스가 잔에 넘치도록 쌓인 얼음 더미를 보고 역겨워한 편지와 글을 찾아냈습니다. 우리는 얼음에 대한 집착 때문에 남들에게 구경거리였다고 그는 말합니다.

산업은 사라졌고, 길은 남았습니다

천연얼음 무역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블레인이 인용한 1911년 『더 타임스』 보도를 보면 하루 얼음 소비는 2,000톤이었습니다. 인공얼음 공장이 만들 수 있는 양은 500톤에 그쳤습니다. 모자란 만큼은 계속 배로 왔고, 런던 항에는 날마다 스무 척이 들어왔습니다.

끝을 낸 것은 기술이 아니라 전쟁이었습니다. 1차 세계대전으로 북해가 막히자 노르웨이 얼음은 끊겼습니다. 1920년 노르웨이의 얼음 수출은 1910년의 5% 수준으로 주저앉았습니다.

그런데 산업이 사라져도 그 산업이 깔아둔 길은 남습니다. 미국에서는 얼음 배달부가 다니던 자리에 가정용 냉장고와 제빙기가 그대로 들어섰습니다. 호텔 복도의 제빙기도, 마트에 쌓인 대용량 얼음 봉지도 그 길 위에 있습니다. 미국 사람들은 손님을 부르면서 누가 얼음을 사 올지부터 정합니다. 영국에서는 애초에 그 자리가 비어 있었습니다.

지금 카페에서 벌어지는 일

그래서 유럽 카페에 얼음이 없는 게 아닙니다. CNN이 짚었듯 유럽에 얼음이 모자란 게 아니라 기본값이 아닐 뿐입니다. 그 가게에는 제빙기가 있고 냉동고가 있습니다. 다만 손님 잔에 얼음을 붓는 것이 기본 동작이 아닙니다. 달라고 하면 나옵니다. 음료를 식힐 만큼만 나옵니다.

가게 안까지 들어온 얼음이 잔으로 가는 마지막 한 뼘에서 멈추는 셈입니다. 1899년에도 항구까지 50만 톤이 들어오고 부엌 문 앞에서 멈췄습니다. 백 년이 지나 같은 일이 카운터 위에서 벌어집니다.

그리고 우리가 여행지에서 겪는 불편의 상당수가 이런 모양입니다. 그 나라 사람들의 취향처럼 보이는 것들 가운데 적지 않은 수가, 오래전에 뚫렸거나 뚫리지 않은 길의 흔적입니다.

마지막 한마디

영국에는 얼음이 넘쳤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사들이고도 부엌까지는 나르지 않았습니다. 백 년이 지나 그 나라 카페는 얼음 두 조각을 내옵니다.

습관은 물건을 따라가지 않습니다. 길을 따라갑니다.

출처·참고

Woody Magazine은 편집장 Woody가 기획·편집·발행합니다. 기사 제작 과정에 Claude AI를 도구로 활용하며, 편집 판단과 최종 책임은 편집부에 있습니다. 독자의 교차 검증을 권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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