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 유럽 다녀온 여권엔 도장이 없습니다 — 대신 90일을 기계가 셉니다 — Woody Magazine, 2026년 8월 31일
올여름 유럽 다녀온 여권엔 도장이 없습니다 — 대신 90일을 기계가 셉니다
도장 없는 첫 성수기가 오늘 끝납니다. 잉크가 90일을 세던 시절과 두 배로 길어진 줄, 그리고 엿새 뒤 사라지는 스위치 이야기입니다.
- 유럽 29개국이 지난 4월 10일부터 비EU 여행자의 여권 도장을 지문과 얼굴 기록으로 바꿨습니다. 올여름이 그 첫 성수기였습니다.
- 7월 프랑크푸르트 공항의 피크 대기시간이 지난해 60분에서 올해 120분으로 늘었습니다. 국경 요원에게는 혼잡할 때 지문 채취를 멈출 권한이 있었는데, 그 권한이 9월 6일 끝날 예정입니다.
- 많이들 헷갈리는 ETIAS(에티아스, 20유로 사전 여행 허가)는 아직 시작하지 않았고 공식 시작일도 없습니다. 지금 신청을 받는 사이트는 공식이 아닙니다.
올여름 로마나 파리 공항에 내린 분이라면 한 가지 다른 장면을 겪으셨을 겁니다. 여권을 펴서 내밀었는데 심사관이 도장을 집지 않습니다. 대신 손가락을 유리판에 올리라고 합니다. 작은 카메라가 얼굴도 찍습니다. 집에 돌아와 여권을 넘겨 보면 이번 여행은 빈 페이지입니다.
도장이 없어졌으니 국경이 헐거워진 것 아닌가, 싶으실 수 있습니다. 그럴 만합니다. 도장은 우리가 국경을 넘었다는 가장 눈에 보이는 증거였으니까요. 그런데 실제로 일어난 일은 정반대입니다. 유럽은 도장을 없앤 게 아니라, 도장이 제대로 하지 못하던 일을 기계에 넘겼습니다.
도장은 기념품이 아니라 계산기였습니다
솅겐 지역에 비자 없이 들어가는 여행자는 180일 중 90일까지 머물 수 있습니다. 이 규정은 오래됐습니다. 그런데 그 90일을 누가 세느냐에는 최근까지 답이 어설펐습니다. 세는 사람은 국경 심사관이고, 도구는 여권에 찍힌 잉크 날짜였습니다. 심사관은 여권을 앞뒤로 넘기며 들어온 날과 나간 날을 찾아 머릿속으로 더했습니다.
이 계산은 도장이 선명할 때만 성립합니다. 잉크가 번지거나, 엉뚱한 페이지에 찍히거나, 바쁜 날 심사관이 그냥 통과시키면 그 여행은 장부에서 사라집니다. 회사로 치면 벽에 걸린 출퇴근 카드를 각자 알아서 찍던 시절입니다. 카드는 빠뜨릴 수 있고, 남이 대신 찍어 줄 수 있고, 잉크는 지워집니다. 회사는 직원이 몇 시간 일했는지 정확히 모른 채 급여를 줍니다. 유럽도 그랬습니다. 누가 90일을 넘겼는지 알 방법이 사실상 그 잉크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유럽연합은 출입국 시스템(EES)이라는 이름의 지문 인식기를 달기로 했습니다. 2025년 10월 12일부터 국경마다 하나씩 붙였습니다. 그리고 2026년 4월 10일, 29개국 모든 외부 국경에서 한꺼번에 켰습니다. 비EU 여행자는 첫 입국 때 지문과 얼굴을 등록하고, 이후 3년 동안은 여권을 대면 기록이 따라옵니다. 들어온 날, 나간 날, 어느 국경이었는지가 잉크가 아니라 데이터베이스에 남습니다. 90일 계산을 사람이 아니라 기계가 합니다.
숫자가 바로 달라졌습니다. 집행위원회가 5월에 낸 솅겐 현황 보고서를 봅니다. 지난해 10월 도입부터 올해 4월 20일까지 출입국 6,600만 건이 등록됐고, 3만 2천 명이 입국을 거부당했습니다. 그중 7,000명은 이전에 체류 기간을 넘긴 사실이 잡힌 경우였습니다. 도장으로는 셀 수 없던 숫자입니다. 잉크 시절의 문제는 초과 체류자가 몇 명이냐가 아니라, 몇 명인지 모른다는 것이었습니다.
인식기를 단 첫 주 아침에 벌어지는 일
그런데 출퇴근 카드를 지문 인식기로 바꾼 회사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우리는 압니다. 현관에 줄이 섭니다. 첫 등록은 오래 걸리고, 인식기는 가끔 멈추고, 다들 같은 시간에 출근합니다.
유럽 공항에서 이번 여름에 벌어진 일이 그것입니다. 파이낸셜타임스가 대기시간을 분석하는 회사 큐센서(Qsensor)의 자료로 올해 7월과 지난해 7월을 견줬습니다. 프랑크푸르트 공항의 피크 대기시간이 60분에서 120분으로 늘었습니다. 뮌헨은 31분에서 60분, 암스테르담 스히폴은 최대 80분에서 120분이었습니다. 셋 다 두 배 안팎입니다. 이유는 첫 등록입니다. 등록을 한 번 마친 여행자는 그다음부터 여권과 얼굴만 대조하면 됩니다. 그런데 올여름 유럽에 온 비EU 여행자 대부분이 아직 첫 등록이었습니다.
다만 두 배가 된 것은 피크 시간대의 최대치입니다. 같은 데이터에서 스히폴 이용객 68%는 15분 안에 통과했고, 7월 평균은 12분이었습니다. 새벽 항공편 몇 대가 한꺼번에 내리는 시간에 도착한 사람과 한가한 오후에 도착한 사람은 서로 다른 여름을 겪었습니다.
국경 요원 손에 들려 있던 스위치
그런데 줄이 두 배가 됐는데도 어떻게 성수기를 넘겼을까. 여기에 대부분의 여행자가 모르는 장치가 하나 있습니다. 집행위원회 대변인 마르쿠스 라메르트가 지난 1월 30일 브리핑에서 밝힌 내용입니다. 전면 가동 뒤에도 회원국은 90일 동안, 필요하면 60일을 더해 EES 검사를 부분적으로 멈출 수 있습니다. 여름 성수기를 넘기라고 법에 미리 넣어 둔 조항입니다. 회사로 치면 현관 줄이 너무 길면 관리자가 인식기를 잠시 끄고 수기로 받을 수 있게 해 둔 셈입니다.
실제로 껐습니다. 이 스위치는 단계 도입 기간에도 있었습니다. 유럽공항협의회(ACI Europe)가 3월 말에 회원 공항을 조사했습니다. 프랑스와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 그리스, 스위스, 벨기에, 독일의 공항이 혼잡할 때 EES를 멈추고 있었습니다. 부분 중단도 있었고 전면 중단도 있었습니다. 집행위원회는 5월 보고서에서 이 권한이 "제한된 횟수"만 쓰였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같은 달 라이언에어는 29개국 정부에 편지를 보내 9월까지 아예 멈추라고 요구했습니다. 이탈리아 정부는 멈추지 않겠다고 못을 박았습니다. 나라마다, 공항마다, 시간마다 스위치 상태가 달랐습니다. 그래서 어떤 여행자는 지문을 찍었고, 어떤 여행자는 여권만 스캔하고 지나갔습니다.
다만 스위치가 끄는 게 무엇인지는 따로 봐야 합니다. 끄는 것은 지문과 얼굴 채취뿐입니다. 들어온 날과 나간 날의 등록은 스위치와 상관없이 계속됩니다. 그러니 스위치를 껐다고 계산이 멈춘 게 아닙니다. 줄을 줄이려고 가장 느린 단계 하나를 뺐을 뿐, 90일은 계속 셌습니다.
9월 6일
그 스위치는 9월 6일에 사라질 예정입니다. 4월 10일을 첫날로 놓고 150일을 세면 그날입니다. 9개국이 7월 7일 공동 서한을 보냈습니다. 벨기에와 프랑스, 독일, 그리스, 이탈리아, 몰타, 네덜란드, 포르투갈, 스위스입니다. 받는 사람은 마그누스 브루너 내무 담당 집행위원이었고, 내용은 이 조항을 그 뒤로도 남겨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첫 몇 달에 가볍게 볼 수 없는 어려움이 드러났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집행위원회는 회원국의 의지를 환영한다고만 답했고, 날짜를 옮기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8월 중순 영국 더타임스는 교통·관광 담당 집행위원이 업계에 유연성을 이어갈 뜻을 비쳤다고 보도했습니다. 그래도 공식 결정은 아직 없습니다. 그대로라면 오늘부터 엿새 뒤 국경 요원의 손에서 스위치가 빠집니다.
"그럼 EES가 사실상 연기된 것 아니냐"는 말이 올봄 헤드라인으로 여러 번 돌았습니다. 집행위원회는 그때마다 같은 답을 했습니다. 4월 10일은 그대로이고, 유예는 처음부터 법에 있던 조항이지 연기가 아니라고요. 맞는 말입니다. 회사가 인식기를 켠 날짜와, 관리자가 가끔 끌 수 있던 기간은 다른 이야기입니다. 인식기는 4월부터 켜져 있었습니다.
20유로 이야기는 다른 제도입니다
한 가지 더 정리해 둘 게 있습니다. 올여름 SNS에서 "유럽 입국에 20유로를 내야 한다"는 글이 많이 돌았습니다. 그 20유로는 EES가 아니라 ETIAS(에티아스)라는 별개 제도의 수수료입니다. 무비자 여행자가 출발 전에 온라인으로 받는 여행 허가인데, 아직 시작하지 않았습니다. 집행위원회는 4월에 "정확한 시작일은 올해 안에 알리겠다"고 했지만 아직 없습니다. 7월에는 파이낸셜타임스가 이 시스템을 만드는 EU 기관 유리사(eu-LISA)의 판단을 전했습니다. 올해 안 시작은 어렵다는 것이었습니다. 새 일정은 9월 이사회 뒤에 나올 전망입니다. 그러니 지금 ETIAS 신청을 받는 사이트는 전부 공식이 아닙니다. 그리고 EES에는 수수료가 없습니다.
우리가 이번 여름에 본 것은 도장이 사라지는 장면이 아닙니다. 도장이 원래 하기로 돼 있던 계산을 처음으로 제대로 하는 장면이었습니다. 그 계산에는 값이 붙습니다. 첫 등록의 몇 분, 새벽 항공편 뒤의 두 시간, 그리고 9개국 장관이 서명한 편지 한 통입니다. 유럽은 첫 여름을 스위치를 쥔 채 넘겼습니다. 다음 여름을 어떻게 넘길지는 엿새 안에 정해집니다.
여권 도장은 90일을 세는 척만 했습니다. 이제 기계가 진짜로 셉니다. 그 값을 여행자는 줄로 치르고, 정부는 스위치를 남겨 달라는 편지로 치릅니다. 유럽은 첫 여름을 스위치를 쥐고 버텼습니다. 다음 여름엔 그 손이 빌지도 모릅니다.
- 출처 ↗ European Commission, Migration and Home Affairs — "Entry/Exit System (EES) is fully operational" (2026.4.10)
- 출처 ↗ European Commission — "The Entry/Exit System will become fully operational on 10 April 2026" (2026.3.30)
- 출처 ↗ European Commission — "Main differences between the EES and ETIAS" (2026.4.28)
- 출처 ↗ The Local — "EU says countries can halt EES checks over summer to avoid travel chaos" (2026.1.31, 라메르트 대변인 발언)
- 출처 ↗ The Local — "European airports record longer waits at borders as EES deadline looms" (2026.3.30, ACI Europe 조사)
- 출처 ↗ The Local — "EES: 7,000 overstayers snared since launch of EU's new Schengen border checks" (2026.5.20, 솅겐 현황 보고서)
- 출처 ↗ The Local Italy — "FACT CHECK: Is Italy planning to pause EES over the summer?" (2026.6.9)
- 출처 ↗ Euronews — "Nine European countries urge EU to ease EES border checks" (2026.7.10)
- 출처 ↗ Travel Tomorrow — "Nine European countries urge EU to extend flexibility on new border checks" (2026.7.13)
- 출처 ↗ Travel Tomorrow — "EU could extend flexibility on EES border checks" (2026.8, 더타임스 보도 인용)
- 출처 ↗ Euronews — "Europe's new border system is causing huge airport queues as EES wait times double" (2026.8.12, FT·Qsensor 분석)
- 출처 ↗ The Local Germany — "EES delays cause wait times to double at major German airports" (2026.8.13)
- 출처 ↗ DutchReview — "Schiphol passport queues take up to two hours this summer" (2026.8.12, Qsensor 스히폴 데이터)
- 출처 ↗ AFAR — "Europe Delays ETIAS Travel Authorization Until 2027" (2026.7.13, FT 보도 인용)
- 출처 ↗ Forbes — "Traveling To Europe? ETIAS Is Delayed As EES Queues Bite" (2026.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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