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후지산 게이트 앞엔 QR코드 줄이 늘어섭니다 — 300년 전에도 이 산은 표를 끊어야 올랐습니다 — Woody Magazine, 2026년 8월 9일
지금 후지산 게이트 앞엔 QR코드 줄이 늘어섭니다 — 300년 전에도 이 산은 표를 끊어야 올랐습니다
에도의 순례자는 122문을 내고 '등산 절수'를 받았습니다. 요금이 산을 관광지로 만든 게 아니라, 공짜였던 한 세기가 산을 가장 많이 상하게 했습니다.
지금 후지산 5합목에는 아침마다 줄이 섭니다. 스마트폰의 QR코드를 보여주고, 4,000엔을 냈다는 확인을 받고, 손목띠를 차야 게이트가 열립니다. 오후 2시가 되면 산장 예약자를 빼고는 다음 날 새벽 3시까지 문이 잠깁니다. 밤새 정상까지 내달리는 '탄환 등산'을 막으려는 조치입니다. 가장 붐비는 요시다 루트는 하루 4,000명이 차면 그날 입장을 접습니다. 나흘 뒤면 일본의 추석 격인 오봉 연휴가 시작되는데, 성수기 산장은 빠르게 차고 있습니다.
합목부터 풀어야겠습니다. 후지산 등산로는 기슭에서 정상까지를 열 구간으로 나눠 '몇 합목'이라 부릅니다. 버스가 닿는 중턱의 5합목이 사실상의 출발점이고, 게이트도 거기 서 있습니다.
이 풍경 앞에서 실망하는 마음은 자연스럽습니다. 영산(靈山)에 개찰구라니요. CNN 취재에 응한 현지 여성은 "디즈니랜드 같다"고 했습니다. 신앙의 산이 관광 상품으로 전락했다는 한탄인데, 맞는 말처럼 들립니다. 요금과 손목띠가 산의 신성함과 어울리는 물건은 아니니까요.
그런데 에도 시대 문서를 보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이 산에는 300년 전에도 개찰구가 있었습니다. 이름은 '아라타메쇼(改め所)'. 순례자는 거기서 돈을 내고 '등산 절수(切手)'라는 종이를 받아야 산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절수는 지금 말로 입장권입니다. QR코드가 종이였을 뿐, 하는 일은 오늘의 게이트와 같았습니다.
122문짜리 정산서
요금에는 이름도 있었습니다. 산역전(山役銭), 산이 하는 일에 대한 값이라는 뜻입니다. 처음부터 산을 관리하는 사람이 걷던 돈은 아닙니다. 전국시대에는 이 지역을 다스리던 다케다씨에게 상납했고, 에도 전기인 1680년대에 이르러 징수 권리가 오시에게 넘어왔습니다. 영주에게 가던 돈이 현장으로 내려온 겁니다. 요시다 루트 기준 1인당 122문이었습니다. 문(文)은 에도 시대의 동전 단위입니다. 122문은 대충 걷는 돈이 아니라 문 단위까지 쪼개진 정산서였습니다.
몸을 정갈히 하는 액막이 의식 값이 32문, 5합목 산장에서 쉬어가는 값이 32문, 정상의 불상에 올리는 새전이 20문. 여기에 개찰구 유지비 4문까지 따로 붙습니다. 산장 몫 얼마, 신사 몫 얼마, 순례자를 받아 준 '오시' 몫이 도합 78문. 몫이 미리 정해져 있으니 다툴 일이 없었고, 다툴 일이 없으니 이 체계는 수백 년을 버텼습니다.
기도까지 팔던 여행사
오시(御師)를 설명할 차례입니다. 오시는 후지산 기슭에 살면서 순례자를 통째로 맡던 직업입니다. 자기 집을 숙소로 내주고, 밥을 차리고, 산 위의 산장을 수배하고, 신직 자격이 있어 순례자 대신 기도까지 올렸습니다. 지금 말로 옮기면 여행사에 가장 가깝습니다. 숙박과 식사, 현지 일정, 게다가 기도 대행까지 묶은 패키지 상품이었으니까요.
이 여행사 거리가 실제로 있었습니다. 요시다 루트 초입의 가미요시다 마을에는 많을 때 90채 가까운 오시 집이 늘어서 있었습니다. 오늘날 옛 모습으로 남은 집은 열몇 채, 숙소로 문을 여는 곳은 손에 꼽습니다.
손님 쪽에도 조직이 있었습니다. 후지코(富士講)입니다. 에도 서민들이 후지산 신앙을 위해 만든 모임인데, 전성기 간토 지방에만 9,000개 가까이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방식이 낯익습니다. 회원들이 여비를 함께 적립하고, 해마다 선달(先達)이라 부르는 길잡이나 제비뽑기로 뽑힌 대표가 모두를 대신해 산에 오릅니다. 공덕은 돌아와서 나눕니다.
왜 이렇게까지 했느냐면, 돈 때문입니다. 막부 말 시세로 1냥이 7,000문쯤이었고, 1냥이면 성인 한 사람이 1년 먹을 쌀을 샀습니다. 등반 한 번에 드는 1,366문은 두 달치 밥값입니다. 서민 혼자 해마다 낼 수 있는 돈이 아니니, 여럿이 모아 대표를 보내는 쪽이 합리적이었습니다.
정산 방식도 손님 유형별로 달랐습니다. 후지코 단체 손님은 묵고 있는 오시 집에서 산역전을 일괄로 치렀고, 소속 없는 개인 등산자만 개찰구에서 122문을 내고 절수를 받았습니다. 단체는 숙소에서 몰아서 계산하고 개인은 창구에서 표를 끊었습니다. 지금의 여행업과 다르지 않습니다.
2합목에서 멈춰야 했던 사람들
여기까지 들으면 에도의 후지산이 지금보다 잘 굴러갔다는 이야기 같습니다. 절반만 그렇습니다. 이 산의 관리에는 통제가 함께 붙어 있었습니다. 여성이 오를 수 있는 선은 2합목이었습니다. 60년에 한 번 돌아오는 경신년에만 그 선이 4합5작, 산 중턱 조금 위까지 올라갔습니다. 금제가 풀리기 전에 산에 오른 여성도 있었습니다. 후지코 신자 다카야마 다쓰는 1832년 스물다섯 살에 남장을 하고 남성 다섯 명과 함께 요시다 루트로 올라 정상에 섰습니다. 인솔자였던 고야마 산시가 남긴 문서에 '동행 여섯 명, 그중 여자 다쓰, 스물다섯'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문헌으로 확인되는 가장 오래된 여성 등정 기록입니다. 정부가 공식으로 금제를 푼 건 1872년, 메이지 정부의 포고령에 이르러서입니다. 표를 팔던 산은 표를 팔지 않을 권리도 행사하던 산이었습니다.
표가 사라진 날
그 체계가 무너진 것도 메이지 때입니다. 새 정부가 신도(神道)와 불교를 분리하는 정책을 밀어붙이자 각지에서 불교 배척 운동, 폐불훼석(廃仏毀釈)이 뒤따랐습니다. 사람들이 정상의 불상을 끌어내렸습니다. 새전 20문을 비롯한 징수 명목이 하나둘 사라지면서 산역전을 걷는 일도 끊겼습니다. 요금 하나가 아니라 정산서 전체가 무효가 된 셈입니다. 후지코는 쇠퇴했고, 철도가 놓이면서 등산은 신앙에서 레저로 옮겨 갔습니다. 후지산은 그렇게, 역사상 처음으로 아무나 공짜로 오르는 산이 됐습니다.
누구에게나 열린 산. 듣기에는 이쪽이 훨씬 좋습니다. 우리도 대개 요금을 문턱으로, 무료를 개방으로 읽으니까요. 그런데 표가 사라질 때 함께 사라진 게 있습니다. 손님을 맡아 책임지던 사람입니다. 에도의 오시는 숙박비만 받은 게 아니라 9합목의 도리이(신사 문)와 계단 보수까지 맡았습니다. 122문 속 4문은 개찰구 수리비였습니다. 요금은 문턱이기 전에 관리비였고, 돈을 받는 사람이 있으면 길을 고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게이트가 돌아오기까지
그 뒤 한 세기의 결과를 우리는 압니다. 지금은 7월 초부터 9월 10일까지 두 달 남짓한 시즌에 20만 명 안팎이 이 산을 오릅니다. 일본은 1992년 세계유산협약에 가입한 직후부터 후지산을 자연유산으로 올리려 했는데, 2003년에 그 시도를 접었습니다. 등산객이 남긴 쓰레기와 분뇨를 감당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방향을 틀었습니다. 2013년 유네스코가 이 산을 등재한 건 자연유산이 아니라 문화유산으로였고, 이름은 '신앙의 대상과 예술의 원천'입니다. 경관으로는 안 되니 순례의 역사로 올린 셈입니다. 심사 자문기구인 이코모스(ICOMOS)는 등재와 함께 등산객 수를 관리하라고 일본에 요구했습니다.
일본이 처음 꺼낸 답은 자율이었습니다. 2013년 여름에 시험 삼아 걷어 보고 2014년 7월부터 본격 실시한 보전 협력금인데, 1인당 1,000엔을 원칙으로 하되 내는 것은 등산객 마음이었습니다. 결과는 예상대로였습니다. CNN 취재에 응한 현지 여성은 1,000엔을 안 내는 사람이 많다며 차라리 훨씬 비싼 의무 요금을 물리라고 말했습니다. 자율 요금은 요금이 아니라 모금이고, 모금으로는 개찰구를 세울 수 없습니다.
2024년 야마나시현이 요시다 루트에 게이트를 세웠습니다. 2,000엔 의무 요금, 하루 4,000명 상한, 사전 예약제. 이듬해에는 야마나시현이 요금을 4,000엔으로 올리고 시즈오카현의 세 루트까지 합류해 4개 노선 전부가 같은 금액이 됐습니다. 오후 2시 폐쇄도 이때부터 네 곳 모두에 걸렸습니다. 다만 인원 상한은 요시다 루트에만 있습니다. 시즈오카 쪽 세 루트에는 없습니다. 두 현은 자율 협력금을 없앴습니다. 올해도 네 노선 모두 같은 규칙으로 문을 열었습니다.
요금이 2,000엔에서 4,000엔으로 오른 데는 계산 근거가 있습니다. 야마나시현이 도입 첫해에 실제로 들어간 경비를 쌓아 계산해 보니 2,000엔으로는 안전 대책과 환경 유지를 감당할 수 없다는 산정이 나왔습니다. 세수 목표가 아니라 원가에서 나온 금액입니다. 징수한 돈은 규제를 운영하는 인건비와 등산로 안전 대책에 씁니다. 122문이 액막이와 산장과 개찰구 수리비로 쪼개져 있던 것과 같은 성격의 장부입니다. 첫해 성적표도 나왔습니다. 요시다 루트 이용자는 14만 9,700명이었고, 밤새 걸어 올라가던 사람은 전년의 10분의 1로 줄었습니다.
그리고 올봄, 산기슭에서 상징적인 개관식이 하나 있었습니다. 1768년에 지어진 오시 집 '규 도가와가(旧外川家) 주택'이 2년의 내진 공사를 마치고 4월에 다시 문을 열었습니다. 세계유산 후지산의 구성 자산, 그러니까 에도의 여행사 사옥이 산의 유산으로 관리되고 있습니다. 산 위에는 게이트가 돌아왔고, 산 아래에는 여행사 건물이 돌아왔습니다.
우리가 게이트 앞에서 느끼는 실망은 '산이 상품이 됐다'는 데서 옵니다. 그런데 이 산의 400년을 놓고 보면 순서가 반대입니다. 상품이었던 산이 잠시 공짜였고, 공짜였던 그 한 세기 동안 산이 가장 많이 상했습니다. 4,000엔짜리 QR코드는 산을 관광지로 만드는 낙인이 아니라, 산에 다시 주인을 붙이는 장치에 가깝습니다.
- 후지산은 에도 시대부터 요금을 걷던 산이었습니다. 요시다 루트 기준 122문, 액막이와 산장 휴식과 개찰구 수리비까지 항목이 나뉘어 있었습니다.
- 요금을 걷던 오시는 숙박만 맡은 게 아니라 9합목의 도리이와 계단 보수까지 담당했습니다.
- 무료였던 시기는 메이지부터 2010년대 초까지, 이 산의 400년 중 한 세기뿐입니다.
- 출처 ↗ 후지산NET(야마나시일일신문 계열) — 에도기 후지 등산 요금 징수는 무엇을 위해서였나
- 출처 ↗ 후지산NET — 후지 등산의 거점, 오시의 집
- 출처 ↗ 후지요시다시 공식 관광 가이드 — 오시 규 도가와가 주택
- 출처 ↗ 세계유산 후지산 공식 가이드 — 후지코
- 출처 ↗ 야마나시현 공식 관광정보 — 에도 사람들이 걸은 후지산 길
- 출처 ↗ japan-guide.com — Climbing Mount Fuji(2026 규정)
- 출처 ↗ 한국경제 — 관광객 몰린 日, 후지산도 입장료 받는다
- 출처 ↗ CNN Travel — Mount Fuji: How Japan's sacred symbol fell victim to overtourism
- 출처 ↗ 국립국회도서관 레퍼런스 협동 데이터베이스 — 다카야마 다쓰 등정 기록(후지코 문서 원문 인용)
- 출처 ↗ 야마나시현 — 후지산 보전 협력금 제도 상세
- 출처 ↗ nippon.com — 후지산을 지켜라(자연유산 등재 단념 경위)
- 출처 ↗ 시즈오카현 공식 홈페이지 — 3개 등산구 등산 규제 실시(2026)
- SBS뉴스 — 후지산 입산료 4,000엔 징수 조례 가결 및 2024년 징수 실적(링크 미확인)
- 니혼게이자이신문 — 시즈오카현, 후지산 입산료 4,000엔 축 방침(2024.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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