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이면 런던이 불탄 지 360년 — 로마는 길을 새로 냈고, 런던은 옛 골목을 되살렸습니다 — Woody Magazine, 2026년 9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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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9월 1일 (화)
인문학

내일이면 런던이 불탄 지 360년 — 로마는 길을 새로 냈고, 런던은 옛 골목을 되살렸습니다

새 도시 설계도는 엿새 만에 나왔습니다. 다섯 장 모두 버려졌습니다.

편집장 Woody
세 줄 요약
  1. 1666년 9월 2일 새벽 푸딩레인의 빵집에서 불이 났습니다. 나흘 뒤 런던 성벽 안쪽의 85%가 사라졌습니다.
  2. 불이 꺼지고 엿새 만에 크리스토퍼 렌이 새 도시 설계도를 왕 앞에 펼쳤습니다. 이블린과 후크와 뉴코트가 뒤를 이었습니다. 한 장도 쓰이지 않았습니다.
  3. 막은 것은 옹졸한 상인들이 아니라 땅값이었습니다. 런던은 석탄에 세금을 물려 보상 재원을 만들었지만, 그 돈으로 살 수 있었던 것은 거리 열 몇 곳이었습니다.

내일이면 360년입니다. 1666년 9월 2일 일요일 새벽, 런던 푸딩레인의 빵집에서 불이 났습니다. 불은 나흘을 탔습니다.

지금 런던 금융가를 걸어 보면 이상한 데가 있습니다. 세계 돈이 모이는 곳인데 길이 반듯하지 않습니다. 좁은 골목이 구부러진 채로 얽혀 있습니다. 불이 시작된 푸딩레인도 아직 그 이름으로 남아 있습니다.

나흘

성벽 안쪽 373에이커가 탔고, 성벽 밖으로도 63에이커가 더 탔습니다.

85%
나흘 만에 타 버린 런던 성벽 안쪽의 비율

집 1만 3,200채가 없어졌고 교구 교회 86곳이 무너지거나 크게 상했습니다. 런던시 청사인 길드홀, 상인들이 모이던 왕립거래소, 세관도 성한 데가 없었습니다. 살 곳을 잃은 사람이 7만에서 8만 명이었습니다.

손실은 800만에서 1,000만 파운드로 추산됩니다. 그중 집값만 320만 파운드였습니다. 그런데 이 돈을 누가 내느냐가 남습니다.

이상하게도 공식 사망자는 한 자릿수입니다. 기록되지 않은 죽음이 얼마나 되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엿새 만에 올라온 새 지도

불이 꺼진 날이 9월 5일입니다. 엿새 뒤인 9월 11일, 옥스퍼드에서 천문학을 가르치다 건축으로 옮겨 가던 크리스토퍼 렌이 찰스 2세 앞에 도면 한 장을 펼쳤습니다. 런던을 통째로 다시 그린 그림이었습니다.

넓고 곧은 길이 방사형으로 뻗고, 광장이 놓이고, 템스강변에 부두가 반듯하게 서 있었습니다. 파리와 로마를 염두에 둔 도시였습니다.

이틀 뒤에는 런던의 좁고 더러운 거리를 오래 성토해 온 존 이블린이 왕과 왕비 앞에서 자기 안을 펼쳤습니다. 로버트 후크와 리처드 뉴코트가 뒤따랐습니다. 왕이 도면을 청한 사람은 렌과 이블린 둘뿐이었습니다. 나머지 셋은 부르지도 않았는데 냈습니다.

발렌타인 나이트라는 대위는 도시를 두르는 통행료 운하를 제안했습니다. 왕실이 그 통행료로 돈을 벌 수 있다는 계산이 붙어 있었습니다. 찰스 2세는 국민의 재난에서 이득을 취하라는 말이냐며 그를 잠시 가뒀습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이야기가 깔끔합니다. 도시가 백지가 됐고, 마침 유럽에서 손꼽히는 두뇌들이 새 그림을 들고 왔고, 왕은 렌의 안을 마음에 들어 했습니다. 그다음은 정해진 것 같습니다.

누가 막았나

의회에서 걸렸습니다.

렌의 아들은 훗날 옹졸한 상인들이 아버지의 그림을 망쳤다고 적었습니다. 그 이야기가 오래 살아남았습니다. 그럴 만합니다. 천재의 그림과 속물의 계산이라는 구도는 읽기가 편하니까요.

그런데 옥스퍼드대 사학부의 이언 아처는 다르게 봅니다. 그 계획을 실행하려면 땅 주인들에게 보상할 돈이 있어야 했는데, 그 규모의 재원은 없었다는 것입니다.

길을 옮기려면 남의 땅을 지나가야 합니다. 렌의 대로 한 줄을 그으려면 그 아래 필지가 전부 정리돼야 합니다. 필지마다 주인이 있고, 주인마다 값을 받아야 합니다.

불은 집을 태웠습니다. 그런데 그 집이 누구 것인지 적어 둔 종이는 타지 않았습니다.

우리도 아는 일입니다. 아파트 한 동이 통째로 내려앉아도 몇 동 몇 호가 누구 것인지는 그대로 남습니다. 다시 지을 때 배치를 마음대로 못 바꾸는 것은 설계자에게 상상력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조합원 한 사람 한 사람의 지분을 다시 맞춰야 하기 때문입니다.

1666년의 런던도 같았습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지분을 맞춰 줄 돈이 한참 모자랐다는 것뿐입니다.

의회에는 걱정이 하나 더 있었습니다. 재건이 늦어지면 상인들이 다른 도시로 떠난다는 것이었습니다. 런던의 상업은 국가 세입의 큰 몫이었습니다. 빨리 짓는 일이 잘 짓는 일보다 급했습니다.

법이 대신 한 일

1667년 2월 8일, 재건법이 왕의 재가를 받았습니다. 법률가 매슈 헤일이 초안을 썼습니다.

외벽은 벽돌이나 돌로. 집은 네 등급으로 나누고 층수는 4층까지. 시에는 길을 넓힐 권한. 그리고 조항이 하나 더 있었습니다. 어떤 집도 옛 기초 밖으로 나올 수 없다.

'옛 기초'는 제가 고른 말이 아니라 법에 적힌 말입니다. ancient foundation. 튀어나온 구조물도, 집 자체도, 불타기 전 기초선을 넘어 길 쪽으로 나올 수 없다고 못 박았습니다. 그 선을 정한 건 불이 아니라 불나기 전의 런던이었습니다.

3년 조항도 있었습니다. 불탄 땅을 3년 안에 다시 짓지 않으면 시가 공고를 내고 아홉 달을 더 줍니다. 그래도 비어 있으면 배심원이 땅값을 매기고, 시가 그 땅을 팔아 대금을 주인에게 건넵니다. 빨리 지으라는 압박이었지 다르게 지어도 된다는 허가가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보상할 돈이 아예 없었던 건 아닙니다. 같은 법 뒷부분에 돈 나올 데가 적혀 있습니다. 1667년 6월부터 10년 동안, 런던으로 들어오는 석탄 한 톤마다 12펜스씩 세금을 더 물리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걷은 돈은 길을 넓히느라 땅을 잃은 사람에게 가장 먼저 준다고 법에 적었습니다. 그다음이 부두 자리를 내준 사람, 그다음이 감옥 짓는 데였습니다.

절차도 만들었습니다. 땅을 잃은 사람이 얼마를 받을지는 배심원이 정했고, 길이 넓어져 집값이 오른 쪽에서는 돈을 걷어 잃은 쪽에 줬습니다.

법은 넓힐 거리를 이름까지 하나하나 적었습니다. 플리트 스트리트, 템스 스트리트, 옛 피시 스트리트. 이름을 적은 것만 열 몇 곳이었습니다. 그리고 새로 내라고 한 길은 하나였습니다. 길드홀에서 치프사이드로 가는 길입니다.

석탄 한 톤에 12펜스로 살 수 있는 도시가 딱 그만큼이었습니다.

세입자 문제도 남아 있었습니다. 당시 런던 사람 대부분은 남의 집을 빌려 살았고, 불탄 집을 다시 짓는 부담은 빌린 쪽에 있었습니다. 3년 뒤 나온 추가법은 임차인이 안 지어서 지주가 대신 지은 경우를 따로 다뤄야 했습니다. 집이 사라져도 계약은 살아 있었습니다.

이 계약을 그대로 두면 이재민 수만 명이 전부 빚쟁이가 됩니다. 그래서 의회는 화재법원을 따로 세웠습니다. 1667년 2월 27일부터 1668년 말까지, 클리퍼드 법학원이라는 법률가 양성소 건물에서 이 분쟁만 다뤘습니다. 항소는 같은 법원의 더 큰 재판부로만 갈 수 있었습니다. 분쟁을 이 법원 안에 가둔 것입니다.

정치경제학자 윌리엄 페티는 이 법원을 매듭을 전부 끊어 내는 권한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화재법원이 끊은 것은 비용의 매듭이었습니다. 소유의 매듭은 손대지 않았습니다. 누구 땅인지를 다시 정하는 일은 이 법원의 일이 아니었습니다.

벽돌은 불이 가져온 게 아닙니다

우리는 대화재가 런던을 나무 도시에서 벽돌 도시로 바꿨다고 배웁니다. 런던박물관은 이 통념을 정면으로 부인합니다.

초가지붕은 1189년부터 금지였습니다. 1212년에 3천 명이 죽는 불이 나자 시는 규칙을 더 조였습니다. 제임스 1세는 1605년에 새로 짓는 집은 벽돌이나 돌로 지으라고 명령했고, 1607년에 같은 말을 반복했습니다. 반복했다는 것은 안 지켜졌다는 뜻입니다.

불은 새 규칙을 만들지 않았습니다. 안 지켜지던 규칙을 밀어붙일 자리를 만들었을 뿐입니다.

물론 아무것도 안 바뀐 것은 아닙니다. 런던시의 의결 기구인 참사회는 1667년 4월 말에 길 일부를 넓히고 다시 맞추는 안을 승인했습니다. 법이 이름을 적어 둔 거리 가운데 일부는 실제로 넓어졌고, 길드홀에서 강으로 이어지는 킹 스트리트와 퀸 스트리트도 새로 났습니다. 강변 부두를 반듯하게 만드는 계획도 섰지만 끝까지 가지는 못했습니다.

집을 다시 짓는 데는 벽돌이 4억 장 가까이 들었습니다. 런던 주변에 벽돌 공장이 우르르 생겼습니다. 1668년에 1,450채가 올라갔고, 1670년 말까지 6,000채가 들어섰습니다. 1672년 3월이 되자 도시가 잿더미에서 상당히 돌아왔다고들 했습니다.

그래도 지도는 그대로였습니다.

로마는 어떻게 했나

로마는 1,600년 앞서 같은 일을 겪었습니다. 64년에 도시가 탔고, 네로는 도시를 다시 그렸습니다.

로마 역사가 타키투스가 『연대기』에 적어 둔 대로입니다. 측량한 선을 따라 길을 내고, 길을 넓히고, 건물 높이를 제한하고, 빈터를 두고, 공동주택 앞에 주랑을 세웠습니다. 건물끼리 벽을 공유하는 것도 금지했습니다.

순서가 다릅니다. 네로는 재건 비용을 위에서 떠안았습니다. 주랑은 자기 돈으로 세우겠다고 했고, 잔해를 치운 부지를 주인에게 돌려줬고, 기한 안에 집을 다 지은 사람에게는 신분과 재산에 따라 포상금을 줬습니다. 그러고 나서 새 길을 그었습니다. 다시 짓는 값을 시민에게 떠넘기지 않은 겁니다.

로마라고 순조롭지는 않았습니다. 재건은 더뎠고, 화재 다섯 해 뒤 황제가 된 베스파시아누스는 주인이 안 짓는 땅은 남이 지어도 된다고 풀어 줘야 했습니다. 다만 로마에는 그 비용을 떠안을 금고가 있었습니다. 런던에는 석탄세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재난이 백지를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도시가 다 타 버리면 이제 뭐든 그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다 타 버린 자리에도 주인은 남아 있습니다. 런던이 옛 골목을 되살린 것은 상상력이 부족해서가 아니었습니다. 골목 하나하나에 값을 치러야 할 사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로마는 그 값을 위에서 냈습니다. 런던은 낼 수 있는 만큼만 냈습니다.

불은 도시를 지웁니다. 누구 땅인지는 지우지 못합니다.

출처·참고
Woody Magazine은 편집장 Woody가 기획·편집·발행합니다. 기사 제작 과정에 Claude AI를 도구로 활용하며, 편집 판단과 최종 책임은 편집부에 있습니다. 독자의 교차 검증을 권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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