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열리는 베네치아 영화제 — 첫 회는 극장이 아니라 호텔 테라스에서 열렸습니다 — Woody Magazine, 2026년 9월 4일

Woody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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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9월 4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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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열리는 베네치아 영화제 — 첫 회는 극장이 아니라 호텔 테라스에서 열렸습니다

호텔 회사의 주인이 자기 호텔에서 영화제를 열었고, 정권은 성공을 본 뒤에 들어왔습니다. 그 뒤로 생긴 영화제들도 같은 자리에 섰습니다.

영화 · 2026년 9월 4일
세 줄 요약
  1. 1932년 8월 6일 밤, 세계 첫 국제 영화제는 베네치아 리도 섬 엑셀시오르 호텔 테라스에서 「지킬 박사와 하이드」를 틀며 시작했습니다.
  2. 영화제를 만든 비엔날레 회장 주세페 볼피는 그 호텔을 소유한 호텔 회사의 지배주주였습니다. 리도 해변 자체가 이 회사가 1906년부터 만든 상품이었습니다.
  3. 무솔리니가 선전용으로 만든 것이 아닙니다. 정권은 2회가 성공한 뒤에 들어왔고, 그 개입이 1938년 칸 영화제를 낳았습니다.

지금 베네치아 리도 섬에서 83회 영화제가 열리고 있습니다. 9월 2일 대니 보일의 「잉크」로 문을 열었고, 12일까지 경쟁작 20편이 황금사자상을 다툽니다. 오늘은 미국 콜로라도의 텔루라이드에서도 영화제가 시작합니다. 다음 주 목요일에는 토론토입니다. 사람들은 이 열흘을 가을 영화제 시즌이라 부릅니다.

우리는 이 풍경을 예술의 축제로 압니다. 레드카펫, 배우, 심사위원단, 트로피. 한 해의 좋은 영화를 가려내는 자리라고 보면 이야기가 깔끔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94년 전 첫 회의 장부를 열어 보면 이름이 하나 더 나옵니다. 영화사도 정부도 아닙니다. 호텔 회사입니다.

1932년 8월 6일 밤 9시 15분

리도 섬 엑셀시오르 호텔 테라스에 스크린이 걸렸습니다. 첫 영화는 루벤 마물리안의 「지킬 박사와 하이드」였고, 상영이 끝나자 호텔 홀에서 무도회가 이어졌습니다. 세계 첫 국제 영화제의 개막일 밤이 이랬습니다. 극장이 아니었습니다. 상영관도 없었습니다. 9개국에서 온 장편 25편이 8월 21일까지 이 테라스에서 돌아갔고, 관객 2만 5천 명이 다녀갔습니다. 상은 없었습니다. 순위는 관객 투표로 정했습니다.

왜 하필 호텔이었느냐는 질문의 답은 이 영화제를 만든 사람에게 있습니다.

비엔날레 회장의 다른 명함

주세페 볼피는 베네치아의 사업가였습니다. 전력회사를 세웠고 항구를 지었고, 무솔리니 정부에서 재무장관을 지냈습니다. 그리고 1929년 말 베네치아 비엔날레의 새 운영기구 회장이 됐습니다. 비엔날레는 1895년부터 이어진 미술 전시회입니다. 볼피는 여기에 음악·연극·영화를 붙였고, 그중 영화가 1932년의 첫 영화제입니다.

그런데 볼피에게는 직함이 하나 더 있었습니다. 1906년에 세워진 호텔 회사 CIGA(이탈리아 대호텔 회사)의 지배주주였습니다. 이 회사가 가진 호텔이 바로 리도의 엑셀시오르입니다. 그러니까 첫 영화제는 호텔 회사의 주인이 자기 호텔 테라스에서 연 행사였습니다. 행사 후원금도 볼피와 CIGA 동료들에게서 나왔습니다.

해변부터 이 회사가 만들었습니다

여기서 한 발 더 들어가야 합니다. 리도 해변 자체가 이 회사의 상품이었습니다. 20세기 초 리도는 베네치아 앞바다에 길게 누운 모래톱이었습니다. CIGA는 1906년 회사를 세우고 1908년 7월 엑셀시오르를 열었습니다. 무어 양식의 거대한 건물이었고, 개관 파티에 3천 명을 초대했습니다. 옆에는 1900년에 문을 연 데 뱅 호텔이 있었습니다. 토마스 만이 『베네치아에서의 죽음』을 쓴 무대가 이 호텔입니다. 두 호텔이 서면서 리도는 유럽 상류층의 여름 해변이 됐습니다.

볼피는 이 해변에 계속 무언가를 얹었습니다. 1930년에는 골프장을 지었습니다. 그리고 1932년에 영화제를 얹었습니다. 순서가 이렇습니다. 회사(1906), 호텔(1908), 골프장(1930), 영화제(1932). 이 줄에 놓고 보면 영화제는 예술 행사라기보다 호텔이 마지막으로 갖춘 편의시설에 가깝습니다.

큰 호텔은 로비에 피아니스트를 둡니다. 호텔이 음악을 파는 것은 아닙니다. 파는 것은 객실입니다. 피아노는 손님이 로비에 앉아 있게 하는 장치입니다. 볼피에게 영화는 그 피아노였습니다. 이탈리아 인명사전은 이 영화제가 큰 영화사들을 베네치아로 불러들였고, 관광 사업이 크게 자라는 데 견인차가 됐다고 적습니다.

볼피는 영화를 판 것이 아니라 객실을 팔았습니다. 영화는 로비의 피아노였습니다.

무솔리니가 만들었다는 설명

여기서 우리가 흔히 듣는 설명이 하나 있습니다. 무솔리니가 파시즘 선전용으로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볼피가 무솔리니의 장관이었고, 상 이름이 '무솔리니 컵'이었으니 그럴 만합니다. 그런데 기록은 다르게 말합니다. 영국 문예지 TLS에 실린 로더릭 콘웨이 모리스의 기고에 따르면, 볼피가 지지를 청했지만 무솔리니는 1932년 영화제에 관여하지도 참석하지도 않았습니다. 사진 속에 검은 셔츠도 없었습니다.

1934년 2회는 19개국, 기자 300명을 끌어모았습니다. 이때 처음 상이 생겼고 이름은 '무솔리니 컵'이었습니다. 그런데 심사위원단은 없었습니다. 수상작은 비엔날레 회장이 전문가와 관객의 의견을 듣고 정했습니다. 그 회장이 볼피입니다. 정권이 실제로 들어온 것은 그 뒤입니다. 그해 9월 영화를 통제하는 부서를 만들었고, 1935년부터 영화제를 매년 열게 했습니다.

다시 말해 호텔 회사가 먼저 만들었고, 정권은 성공을 보고 들어왔습니다.

1938년, 옆 동네 호텔이 자기 피아니스트를 들였습니다

정권이 개입하자 영화제는 둘로 갈라졌습니다. 1938년 무솔리니 컵은 히틀러의 베를린 올림픽 기록영화 「올림피아」와 이탈리아 공군 영화 「루치아노 세라, 조종사」에 돌아갔습니다. 칸 영화제 공식 연혁에 따르면 심사위원단이 만장일치로 고른 것은 미국 영화였습니다. 프랑스·영국·미국 심사위원이 짐을 쌌습니다. 이듬해 5월 31일 프랑스는 칸을 개최지로 정했고, 개막일을 9월 1일로 잡았습니다. 베네치아가 열리는 기간에 정면으로 맞춘 날짜였습니다. 그날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했고 칸은 열리지 못했습니다. 첫 칸 영화제는 1946년 9월 20일에야 열렸습니다.

그런데 칸이 어떤 동네인지 보면 이야기는 제자리로 돌아옵니다. 칸도 해변 리조트입니다. 첫 회장은 시립 카지노였습니다. 1946년 프랑스 정부가 재개를 승인한 이유도 리비에라 해변에 관광객을 다시 불러오기 위해서였습니다. 베네치아를 예술 때문에 떠난 사람들이 고른 자리도 극장이 아니라 카지노가 있는 해변이었습니다.

1946. 9. 20.
첫 칸 영화제 개막일. 개최 장소는 극장이 아니라 칸 시립 카지노였습니다.

지금 같은 열흘에 몰리는 이유

그 뒤로 영화제는 늘어났고 자리는 바뀌지 않았습니다. 베네치아는 여전히 8월 말에서 9월 초에 엽니다. 2023년 8월 30일, 2024년 8월 28일, 2025년 8월 27일, 올해 9월 2일. 텔루라이드는 콜로라도 스키 마을에서 노동절 연휴에 엽니다. 토론토는 그다음 주입니다. 우리가 이듬해 봄 시상식에서 다시 보는 영화가 대개 이 열흘에 처음 공개되면서, 세 도시는 같은 열흘을 나눠 갖게 됐습니다. 영화가 모이는 곳은 여전히 관광객이 묵는 동네입니다.

볼피는 1947년에 죽었습니다. 무솔리니 컵은 1942년을 끝으로 사라졌습니다. 그런데 남우주연상과 여우주연상 트로피는 지금도 '볼피 컵'입니다. 둘 중 어느 이름이 남았는가, 거기서 이 이야기는 끝납니다.

마지막 한마디

세계 첫 영화제를 만든 것은 영화를 아낀 정부가 아니라 호텔을 가진 사업가였습니다. 정권은 성공한 뒤에 왔고, 그 성공을 망치자 경쟁자가 생겼습니다. 경쟁자도 해변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영화제는 처음부터 침대를 파는 동네에 섰습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출처·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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