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빗』 89년 — 초판의 골룸은 반지를 선물로 주려 했습니다
Woody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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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9월 21일 (월)
『호빗』 89년 — 초판의 골룸은 반지를 선물로 주려 했습니다
1937년의 5장은 지금 책에 없습니다. 톨킨이 그 장을 빌보가 지어낸 이야기로 만들었습니다.
세 줄 요약
- 『호빗』은 89년 전 오늘 1,500부로 나왔습니다. 그런데 지금 서점에 있는 책의 5장은 그때의 5장이 아닙니다.
- 톨킨은 속편을 쓰다 이야기가 어긋나자 5장을 다시 썼고, 보여만 주려던 원고가 그대로 본문이 됐습니다.
- 초판이 사라졌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톨킨은 초판의 5장을 빌보가 지어낸 이야기로 만들어 두 판본을 다 남겼습니다.
오늘로 89년입니다. 1937년 9월 21일, 런던의 출판사 조지 앨런 앤드 언윈이 『호빗』 초판 1,500부를 내놓았습니다.
우리는 고전이란 처음 나온 그대로 남아 있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럴 만합니다. 판을 거듭해도 문장까지 바뀌는 일은 드무니까요. 그런데 지금 서점에 놓인 『호빗』의 5장은 1937년의 5장이 아닙니다. 골룸이 다른 말을 하고, 빌보가 다른 방식으로 반지를 손에 넣습니다.
이미 인쇄해서 돌린 회의록에서 틀린 대목을 발견했다고 해 봅시다. 방법은 둘입니다. 회의록을 다시 찍든가, 그때 적은 사람이 잘못 적었다고 적어 두든가. 톨킨은 뒤를 골랐습니다.
원고를 읽은 사람은 편집자가 아니었습니다
1936년 중반, 조지 앨런 앤드 언윈의 직원 수전 대그널이 옥스퍼드에서 타자 원고 한 뭉치를 빌려 왔습니다. 저자는 이 대학에서 고대영어를 가르치던 J.R.R. 톨킨이었습니다. 톨킨은 원고를 다시 다듬어 그해 10월에 출판사로 보냈습니다.
사장 스탠리 언윈은 아이 책의 심사는 아이가 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원고를 열 살짜리 아들 레이너에게 넘기고 심사료로 1실링을 줬습니다. 회사가 이 책에 처음 쓴 돈이 그 1실링입니다.
레이너의 보고서는 짧았습니다. 지도가 있으니 삽화는 없어도 되겠고, 다섯 살에서 아홉 살 아이라면 다 좋아할 거라고 적었습니다. 출간은 그 한 장으로 정해졌습니다. 레이너는 뒷날, 자기가 괜찮다고 하면 그대로 책이 나오던 시절이었다고 말했습니다.
1937년 9월 21일, 1,500부
책은 곧바로 팔렸습니다. 이듬해에는 뉴욕 헤럴드 트리뷴이 주는 아동문학상을 받았습니다. 톨킨의 친구 C.S. 루이스는 그해 10월 2일 타임스 문예 부록에 호평을 실었습니다. 당시 이 지면의 관행대로 이름은 붙지 않았습니다.
언윈은 속편을 원했습니다. 톨킨은 그해 12월에 새 호빗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그 원고는 1954년에 『반지의 제왕』으로 나옵니다.
반지가 달라졌습니다
쓰는 동안 반지의 정체가 변했습니다. 처음에는 끼면 모습이 사라지는 편리한 물건이었습니다. 속편을 밀고 나가다 보니 사우론이 만든 절대반지가 됐습니다. 주인을 놓아주지 않고, 끝내 망가뜨리는 물건입니다.
그러자 1937년판 5장이 어긋났습니다. 그 장의 골룸은 수수께끼 놀이에 지면 선물을 주기로 하고, 그 선물을 찾지 못하자 빌보에게 거듭 사과합니다. 위로로 물고기를 잡아 주겠다고까지 합니다. 반지를 남에게 넘길 수 있는 물건으로 그려 둔 셈입니다.
절대반지를 가진 쪽이 그럴 리 없습니다.
보여만 주려던 원고가 책이 됐습니다
1947년 9월 21일, 초판이 나온 지 꼭 10년 되는 날에 톨킨은 스탠리 언윈에게 편지를 부쳤습니다. 7월 말에 써 두고도 제 작품 이야기로 출판사를 귀찮게 하는 것 같아 부치지 못하고 있던 편지였습니다. 여기에 5장을 다시 쓴 원고를 견본으로 붙였습니다.
작가가 마음먹고 손을 봤다고 보면 이야기가 깔끔합니다. 그런데 톨킨은 그럴 생각이 없었습니다. 실으라고 보낸 게 아니었습니다. 언윈과 레이너가 재미 삼아 읽어 보라는 뜻이었습니다. 톨킨은 이 개정이 앞으로 할 작업을 간단하게 만들어 주기는 해도 더 낫게 만드는 건 아닐 거라고 적었습니다.
답이 없었습니다. 세 해 가까이 지난 1950년 여름, 출판사가 새로 찍을 『호빗』의 교정쇄를 보내왔습니다. 그 견본이 본문 자리에 들어가 있었습니다. 톨킨은 그해 8월 1일 편지에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라고 적었습니다. 보낸 쪽은 보여 주려던 원고였고, 받은 쪽은 실으라는 원고로 읽었습니다.
그렇게 1951년에 2판이 나왔습니다. 초판에서 14년입니다. 그 뒤에 나온 『호빗』은 모두 이 5장을 바탕으로 합니다. 우리가 한국어로 읽는 판본도 마찬가지입니다.
골룸은 사과하는 쪽이었습니다
두 판본을 나란히 놓으면 차이가 분명합니다.
- 놀이에 지면 선물을 준다 → 놀이에 지면 나가는 길을 알려 준다
- 선물을 못 찾자 사과한다 → 반지를 가지러 간 이유가 빌보를 죽이려는 것이었다
- 길을 안내하고 조용히 헤어진다 → 도둑이라 외치며 영원히 미워하겠다고 한다
- 놀이에서는 절대 속이지 않는 존재다 → 약속을 지키리라 믿을 수 없는 존재다
1937년의 골룸은 규칙을 지키는 쪽이었고, 지고 나서 미안해하는 쪽이었습니다.
1937년판이 더 순한 이야기로 읽히는 것도 무리가 아닙니다. 빌보가 반지를 손에 넣는 방식도 달라집니다. 1937년판의 빌보는 그 반지가 골룸이 잃어버린 선물이라는 걸 알아차리고도 말하지 않습니다. 주운 사람이 임자라고 속으로 정하고, 선물 대신 길 안내를 받아 나옵니다. 1951년판의 빌보는 쫓기다 넘어지고, 골룸의 머리 위를 뛰어넘어 달아납니다.
소유권을 위한 거짓말
톨킨은 먼저 쓴 장을 없애지 않았습니다. 『반지의 제왕』을 쓰면서 그 장을 작품 안으로 집어넣었습니다. 1937년판 5장은 빌보가 지어낸 이야기가 됩니다.
정직한 호빗이 왜 굳이 거짓말을 했나 싶습니다. 빌보가 난쟁이들과 간달프에게 한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놀이에서 이기면 골룸이 선물을 주기로 했는데, 가지러 간 선물이 사라져 있었다. 그게 자기가 주운 반지였고, 이겼으니 이미 제 것이었다. 그래서 선물 대신 길 안내를 받았다.
거짓말이 놓인 자리는 취득 경위입니다. 더 정확히는 소유권입니다. 주워 온 것과 이겨서 받은 것은 다르니까요.
간달프는 믿지 않았습니다. 오래 캐물어 사실을 받아냈고, 그동안 둘 사이가 한참 서먹했습니다. 간달프를 불안하게 만든 것은 거짓말의 모양이었습니다. 반지를 생일 선물이라 우겨 온 골룸의 말과 너무 닮아 있었습니다. 평생 정직하던 호빗이 처음부터 사실대로 말하지 않았다는 점도 걸렸습니다.
빌보는 회고록을 끝내 고치지 않았습니다. 엘론드의 회의에서 사실이 드러난 뒤에도 그대로 뒀습니다. 사본에 함께 실린 진짜 이야기는 프로도와 샘의 메모에서 온 것으로 보입니다. 두 사람은 사실을 알고도 노인이 제 손으로 쓴 대목만은 지우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작품 밖의 판본 두 개가 작품 안의 사본 두 개와 그대로 겹칩니다. 1937년판은 빌보가 쓴 원본이고, 1951년판은 나중에 덧붙인 진짜 이야기입니다.
톨킨은 틀린 장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 장을 쓴 사람을 하나 세워 놓고, 그 사람 탓으로 돌렸습니다. 회의록을 다시 찍는 대신 기록자 이름을 적어 넣은 겁니다. 덕분에 우리는 두 이야기를 다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는 사실이고, 하나는 거짓말입니다.
출처·참고
- 출처 ↗ 톨킨 재단, 존 D. 래틀리프 「The Hobbit」
- 출처 ↗ 하퍼콜린스 200주년 아카이브 「The Hobbit」
- 험프리 카펜터 엮음, 『The Letters of J.R.R. Tolkien』, 편지 111번(1947년 9월 21일)·128번(1950년 8월 1일)
- J.R.R. 톨킨, 『반지의 제왕』 프롤로그 4절, 「지난 이야기의 그림자」
- 웨인 G. 해먼드·크리스티나 스컬, 『The Lord of the Rings: A Reader's Companion』(2005)
- 더글러스 A. 앤더슨 엮음, 『The Annotated Hobbit』 개정증보판(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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