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 울린 한 방 75년 — '가만히 있기'가 직구 신호였습니다
Woody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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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0월 3일 (토)
「세계에 울린 한 방」 75년 — 그날 불펜에선 '가만히 있기'가 직구 신호였습니다
망원경과 버저로 포수의 손가락을 읽던 1951년, 그리고 75년 뒤 포수 손목에 채워진 버튼 아홉 개
세 줄 요약
- 75년 전 오늘 바비 톰슨이 친 끝내기 홈런은 미국 야구에서 가장 유명한 한 방으로 꼽힙니다.
- 그 무렵 뉴욕 자이언츠는 홈구장 중앙 외야에서 망원경으로 상대 포수의 사인을 읽었고, 불펜의 후보 선수가 가만히 앉아 있으면 다음 공은 직구였습니다.
- 그 홈런이 훔친 사인 덕이었는지는 지금도 가려지지 않았습니다. 분명한 건 1951년의 장치는 50년 뒤에야 증거로 확인됐고, 2017년의 장치로 징계받은 선수는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1951년 10월 3일 오후 3시 58분, 뉴욕 폴로그라운드입니다. 9회말 1사 주자 2·3루, 브루클린 다저스가 4대 2로 앞서 있습니다. 마운드에 막 오른 다저스 투수 랠프 브랑카가 두 번째 공을 던집니다. 뉴욕 자이언츠의 바비 톰슨이 받아쳤고, 공은 좌측 관중석으로 넘어갔습니다. 5대 4, 역전이었습니다. 라디오 중계를 맡은 러스 호지스는 "자이언츠가 우승했다"를 네 번 연달아 외쳤습니다.
미국 사람들은 이 홈런을 '세계에 울린 한 방'이라고 부릅니다. 그날 경기는 3전 2선승으로 내셔널리그 우승을 가리는 플레이오프의 마지막 판이었습니다. 상대는 같은 뉴욕의 앙숙이었습니다. 『스포팅 뉴스』는 1999년 이 장면을 야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순간 1위에 올렸습니다.
그 시각 중앙 외야 클럽하우스 창문 뒤에는 망원경이 있었습니다. 우중간 깊숙한 불펜 벤치 끝에는 후보 선수 하나가 앉아 있었습니다. 그 선수가 앉아 있는 모습이 곧 신호였습니다. 자이언츠가 그해 여름 짜 둔 방식으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앉아 있으면 다음 공은 직구였습니다.
75년이 지난 오늘, 메이저리그는 가을야구 2라운드인 디비전시리즈 네 개를 같은 날 시작합니다. 오늘 포수들은 다리 사이로 손가락을 펴는 대신 손목에 찬 버튼을 누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중계 화면에서 종종 보는 그 손목 밴드입니다.
7월 20일, 중앙 외야에 망원경이 들어섰습니다
사인은 포수가 투수에게 보내는 신호입니다. 포수는 쪼그려 앉아 다리 사이로 손가락을 펴 보여 투수에게 다음 공을 알립니다. 손가락 하나는 직구, 둘은 커브 같은 식입니다. 타자가 이걸 미리 알면 크게 유리합니다. 빠른 공이 휘어질지 곧게 올지를 알고 기다리는 셈입니다.
그런데 이 신호에는 처음부터 약점이 있었습니다. 모두가 보는 앞에서 낸다는 점입니다. 우리가 현관 도어록 비밀번호를 손으로 가리지 않고 누르는 셈입니다. 투수만 보라고 내는 신호지만, 보려고 마음먹은 사람은 누구든 볼 수 있습니다. 야구는 오래전부터 선을 하나 그어 두었습니다. 2루에 나간 주자가 맨눈으로 사인을 훔쳐보는 건 기술로 쳐줍니다. 건너편 건물에서 쌍안경으로 들여다보는 건 반칙입니다.
1951년 자이언츠는 그 선을 넘었습니다. 6월 말 피츠버그에서 건너온 후보 내야수 행크 셴즈가 감독 리오 듀로셔에게 이야기를 하나 꺼냈습니다. 시카고 컵스 시절 리글리필드 전광판 안에 숨어 포수 사인을 훔쳐본 적이 있다는 얘기였습니다. 그때 쓰던 망원경도 아직 갖고 있었습니다. 듀로셔는 7월 중순 선수들을 모아 사인을 미리 받고 싶은 사람이 있느냐고 하나하나 물었습니다. 절반쯤이 원했습니다. 강타자 몬테 어빈은 거절했습니다.
장치는 7월 20일부터 돌아갔습니다. 포수 출신 코치 허먼 프랭크스가 중앙 외야 클럽하우스의 감독실 창가에서 망원경으로 상대 포수의 손가락을 읽었습니다. 다저스 팬이던 구장 전기 기사가 감독실에서 불펜까지 전선을 깔고 버저를 달았습니다. 프랭크스가 버튼을 누르면 불펜의 후보 선수가 소리를 듣고 몸으로 신호를 보냈습니다. 변화구면 공을 위로 던지거나 일어섰고, 직구면 그대로 앉아 있었습니다. 타석의 타자는 2루수 너머로 불펜을 한 번 흘끗 보면 됐습니다.
자이언츠는 8월 11일 한때 다저스에 13.5경기 차로 뒤져 있었습니다. 시즌이 7주쯤 남은 때였습니다. 이 정도 차이면 대개 끝난 승부로 봅니다. 그런데 자이언츠는 곧바로 16연승을 달렸습니다. 그중 13승이 망원경이 있는 홈에서 나왔습니다. 정규 시즌이 끝났을 때 두 팀의 승수는 같았습니다.
7월 20일 이후, 톰슨의 홈런 13개는 원정에서 나왔습니다
여기까지 들으면 그 홈런도 망원경이 친 셈이라고 생각할 만합니다. 50년 동안 다저스 팬들이 해 온 말이 그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숫자를 나눠 보면 이야기가 깔끔하지 않습니다.
미국야구연구협회(SABR)가 2012년 경기별 기록으로 따져 본 결과가 있습니다. 장치를 켠 7월 20일부터 자이언츠는 홈에서 23승 5패를 했습니다. 망원경이 없었을 원정에서도 26승 12패를 했습니다. 남은 경기는 원정이 10경기 더 많았습니다. 원정에서 버티지 못했다면 망원경이 있어도 못 따라잡았습니다.
톰슨 개인의 기록은 더 뜻밖입니다. 같은 기간 원정 39경기에서 그는 타율 0.357에 홈런 13개를 쳤습니다. 사인을 받을 수 있었던 홈에서는 3개뿐이었습니다. 의심을 가장 많이 받은 타자가 정작 망원경 없는 곳에서 더 많이 넘겼습니다.
그렇다고 장치가 헛돌았다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SABR 연구는 자이언츠가 홈에서 1점 차로 이긴 10경기 가운데 7경기가 역전승이었다고 짚었습니다. 남은 66경기에서 한 경기만 덜 이겼어도 플레이오프는 없었습니다. 그 정도 승부에서는 작은 이득도 판을 가릅니다. SABR의 판단입니다.
그날 그 공을 두고는 말이 엇갈립니다. 당시 불펜에 있던 후보 포수 살 이바스는 훗날 그 공에 앞서 직구 신호를 보냈다고 말했습니다. 톰슨은 2001년 사인 훔치기가 보도됐을 때 처음엔 망설이다가 결국 "제 대답은 '아니요'입니다"라고 답했습니다. 공을 던진 브랑카는 그래도 그 공을 친 건 톰슨이라고 했습니다.
심판은 다저스의 쌍안경을 압수했습니다
다저스도 그해 가을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꼈습니다. 9월 초 다저스는 폴로그라운드에서 이틀 연속 크게 졌습니다. 다저스 코치 쿠키 라바제토가 쌍안경을 벤치에 들고 나갔습니다. 중앙 외야를 살펴볼 생각이었습니다. 라바제토의 회고로는 심판이 그걸 보고 달려와 쌍안경을 빼앗아 갔습니다. 다저스는 더 캐지 않았습니다. 자이언츠는 계속 이겼습니다.
엿보는 사람을 잡으려던 쪽이 쌍안경을 압수당했습니다. 도어록으로 치면 이렇습니다. 누가 내 비밀번호를 훔쳐보는지 확인하려고 쌍안경을 든 집주인을 경비원이 막아섰습니다. 건너편 건물의 망원경은 그대로였습니다.
규칙은 그 뒤로도 한참 늦었습니다. 1961년 말 내셔널리그가 기계 장치로 사인을 훔치는 것을 금지했습니다. 이듬해 익명의 전직 자이언츠 선수가 AP통신에 1951년의 스파이 장치를 털어놓았습니다. 당시 메이저리그 최고 책임자인 커미셔너 포드 프릭은 증거만 있으면 그 경기를 몰수하겠다고 했습니다. 증거는 2001년에야 나왔습니다. 프릭이 세상을 떠나고 23년 뒤였습니다. 월스트리트저널 기자 조슈아 프레이거가 살아 있던 선수들의 증언을 모아 보도했습니다. 같은 해 MLB 사무국은 전자 장비로 사인을 훔치지 말라는 메모를 양대 리그 전 구단에 보냈습니다. 그 메모도 공식 경기 규칙집의 조항은 아니었습니다.
벌금은 최고액이었고, 징계받은 선수는 없었습니다
요즘은 다르지 않느냐고 물으실 만합니다. 우리는 2017년 휴스턴 애스트로스 사건을 크게 처벌받은 사례로 기억합니다. 애스트로스는 중앙 외야 카메라의 화면을 더그아웃 뒤 통로의 모니터로 끌어왔습니다. 거기서 사인을 읽었습니다. 변화구가 올 차례면 쓰레기통을 두드려 타자에게 알렸습니다. 망원경과 버저가 카메라와 쓰레기통으로 바뀌었습니다. 구조는 1951년 그대로였습니다.
2020년 1월 MLB는 단장과 감독에게 1년 자격정지를 내렸습니다. 구단은 두 사람을 곧바로 해고했습니다. 벌금은 MLB 규약상 최고액인 500만 달러였고, 구단은 2년 동안 1·2라운드 신인 지명권을 잃었습니다. 그런데 조사 보고서는 이 일을 선수들이 주도했다고 적었습니다. 징계받은 선수는 없었습니다. 우승 기록도 그대로 남았습니다.
그사이 경기장 곳곳에 카메라가 늘었습니다. 포수들은 타자마다, 때로는 공 하나마다 사인 체계를 바꿨습니다. 비밀번호를 아무리 자주 바꿔도 누르는 손은 다 보였습니다.
손가락 대신 버튼 아홉 개를 누릅니다
2022년 4월 MLB는 피치컴이라는 장치를 정규 시즌에 쓸 수 있게 했습니다. 포수가 손목에 찬 송신기에는 구종과 코스를 고르는 버튼 아홉 개가 있습니다. 버튼을 누르면 투수와 야수 최대 세 명이 모자 속 수신기로 목소리를 듣습니다. AP통신은 이 결정을 150년 넘게 이어진 전통을 끝내는 조치라고 썼습니다. MLB는 도입 이유로 사인 훔치기 방지와 경기 시간 단축을 함께 들었습니다.
이웃 리그들도 뒤를 따랐습니다. KBO는 2024년 7월 16일부터 1군과 2군 퓨처스리그에서 피치컴을 쓸 수 있게 했습니다. 쓸지 말지는 구단이 정합니다. 계기는 그해 시험 삼아 들인 피치클록이었습니다. 투수가 정해진 시간 안에 공을 던져야 하니, 사인을 빨리 주고받아야 했습니다. 일본은 내년입니다. 교도통신은 지난 8월 말 관계자를 인용해, 일본야구기구(NPB)가 내년부터 1군에 피치컴을 들이기로 하고 12개 구단에 알렸다고 보도했습니다. 올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이 장치를 써 본 대표 선수들이 도입을 요구했고, NPB가 그 뒤 준비에 들어갔습니다.
도입한 이유는 리그마다 조금씩 다릅니다. 시간을 줄이려고 들인 곳도 있고, 호흡을 맞추려고 들인 곳도 있습니다. 결과는 같습니다. 포수가 남들 앞에서 손가락을 펴지 않아도 되게 됐습니다.
야구는 75년 동안 비밀번호를 훔쳐보는 사람을 잡으려 했습니다. 1951년의 범인은 50년 뒤에야 증거로 확인됐고, 2017년의 범인들은 대부분 그라운드에 남았습니다. 그러다 다른 이유가 겹치자 포수에게 번호판 없는 자물쇠를 건넸습니다. 오늘 불펜 벤치 끝에 가만히 앉아 있는 선수는, 그냥 앉아 있는 겁니다.
출처·참고
- 출처 ↗ SABR, Durocher the Spymaster: How much did the Giants prosper from cheating in 1951? (Baseball Research Journal, 2012)
- 출처 ↗ SABR, Focus on the Giants' Cheating Scandal of 1951
- 출처 ↗ Thomas Boswell, The Miracle of Coogan's Bluff Tarnished (Washington Post, 2001.2.1)
- 출처 ↗ Baseball-Reference Bullpen, 1951 NL Playoff
- 출처 ↗ Joshua Prager, Snoop Dogs (Sports Illustrated, 2006.12.11)
- 출처 ↗ PBS Frontline, A Brief History of Sign Stealing
- 출처 ↗ MLB.com, Hinch, Luhnow are suspended for '20, then let go (2020.1.14)
- 출처 ↗ AP, Sign of times: MLB gives OK to electronic pitch calling (2022.4.5)
- 출처 ↗ 노컷뉴스, KBO 피치컴 지급 및 설명회 완료 (2024.7.15)
- 출처 ↗ 닛케이(교도통신), 프로야구 내년 피치컴 1군 도입 (2026.8.31)
- 출처 ↗ MLB.com, MLB announces 2026 Postseason schedu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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