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트 66 100년 — 처음 받은 번호는 60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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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1월 5일 (목)
루트 66 100년 — 처음 받은 번호는 60이었습니다
번호를 나눠 주던 위원회가 먼저 규칙을 비켜 갔고, 그 일을 정리하다 대타 번호 66이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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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년 여름, 미국 도로 번호를 정하던 투표용지에 펜 자국이 남았습니다. '60'의 0 위에 한 획을 그어 '66'으로 고친 자국입니다. 우리가 아는 루트 66은 서류 위에서 이렇게 자리를 잡았습니다.
다음 주 수요일 11월 11일, 이 길이 100번째 생일을 맞습니다. 오클라호마 털사에서는 거리 축제가 재향군인의 날 퍼레이드와 함께 열리고, 일리노이 스프링필드에서는 주 단위 기념식이 잡혀 있습니다. 루트 66은 시카고에서 로스앤젤레스까지 8개 주, 2,448마일(약 3,940km)을 번호 하나로 이었습니다. 여행자는 출발부터 도착까지 같은 숫자가 적힌 표지판만 따라가면 됐습니다.
왜 하필 66인지를 두고는 널리 퍼진 이야기가 있습니다. 원래 이 길은 60번이었는데, 켄터키 주지사가 자기 주에도 60번을 달라고 밀어붙여 가져갔다는 겁니다. 정치인 한 사람이 끼어들어 번호가 바뀌었다는 이야기라 기억하기도 쉽습니다. 그런데 미국 연방도로청(FHWA)이 정리한 도로 역사 기록을 따라가 보면 순서가 거꾸로입니다. 켄터키는 번호를 매기는 규칙을 근거로 항의했습니다. 그 규칙을 먼저 비켜 간 쪽은 번호를 나눠 주던 위원회였습니다.
0으로 끝나는 번호
1925년까지 미국에서 주와 주를 잇는 장거리 도로에는 전국 공통 번호가 없었습니다. 대신 민간 협회가 '링컨 하이웨이' 같은 이름을 붙이고, 길가 전봇대에 색 띠를 칠해 길을 표시했습니다. 그런 협회가 250개를 넘었습니다. 연방 정부와 주 정부는 1925년 합동위원회를 꾸려 이름 대신 번호를 붙이기로 했습니다.
번호 체계는 연방 도로국 설계 책임자 에드윈 제임스가 짰습니다. 원리는 단순했습니다. 남북으로 달리는 길은 홀수, 동서로 달리는 길은 짝수입니다. 동서 도로는 캐나다 국경 쪽에서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숫자가 커집니다. 대륙을 가로지르는 동서 간선에는 끝자리 0을, 남북 간선에는 끝자리 1을 줬습니다. 번호만 보고도 길이 어디쯤 있는지 짐작할 수 있게 하려는 설계였습니다.
번호가 길의 위치만 알려 주는 표시였다면 서로 다툴 이유가 없었습니다. 다툰 이유를 돈에서 찾기 쉽습니다. 좋은 번호를 받으면 연방 예산이 더 내려왔으리라는 짐작입니다. 당시 펜실베이니아 도로국 간부도 그렇게 이해하고 항의했습니다. 실제로는 아니었습니다. 연방 정부는 번호 노선이 많은 주라고 예산을 더 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번호에서 곧바로 등급을 읽었습니다. 끝자리가 0이나 1이면 일등 도로로 통했습니다. 다른 두 자리 번호는 이류로 보였습니다. 세 자리 번호를 받은 마을은 FHWA 기록의 표현대로 '관광객 연옥'에 떨어졌다고 여겼습니다. 왜 그렇게 여겼는지는 애리조나 스프링어빌의 한 상인이 1925년 12월 농무장관에게 보낸 편지에서 엿볼 수 있습니다. 도로국이 농무부 소속이던 시절입니다. 그는 낯선 여행자가 무엇보다 정부 표지판을 따라간다고 썼습니다. 차가 번호 붙은 길로 몰리면 그 길에서 비켜난 마을의 정비소와 호텔과 상점이 손님을 잃는다는 걱정이었습니다.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 장면입니다. 새 지하철역이 생길 때마다 역 이름에 자기 동네 이름을 넣으려고 이웃 동네끼리 다툽니다. 이름이 붙는다고 동네 예산이 느는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사람들은 역 이름을 보고 내립니다. 1926년 미국의 도로 번호가 그런 역 이름이었습니다.
모두가 더 좋은 번호를 원했습니다. 요청은 각 주 도로 책임자들의 협의체인 AASHO(미국주도로관리협회)로 갔고, 이곳 집행위원회가 1926년 내내 하나씩 처리했습니다.
시카고에서 LA로 휘어진 60번
그런데 0번 규칙에는 처음부터 예외가 하나 있었습니다. 1925년 9월 세인트루이스에서 번호를 확정한 사람들은 합동위원회 안의 5인 위원회였습니다. 이들은 60번을 시카고에서 남서쪽으로 휘어 내려가 로스앤젤레스에 닿는 길에 붙였습니다. 규칙대로라면 60번은 US 50과 US 70 사이에서 대륙을 동서로 곧게 가로지르는 길에 가야 했습니다. FHWA는 이 배정을 번호 계획에서 규칙과 가장 크게 어긋난 대목으로 꼽습니다.
위원회 쪽에도 이유는 있었습니다. 이 길은 동서 횡단 도로 대부분과 만나기 때문에 어차피 가장 붐비는 간선 가운데 하나가 될 터였습니다. 다만 FHWA는 한 가지를 덧붙입니다. 위원 다섯 명 가운데 세 명이 이 길이 지나는 일리노이, 미주리, 오클라호마의 도로 책임자였습니다. FHWA는 그래서 이 예외가 의심을 살 만했다고 적었습니다.
켄터키가 문제 삼은 곳이 바로 여기였습니다. 윌리엄 필즈 켄터키 주지사는 미시시피강 유역 주들 가운데 켄터키만 끝자리 0 도로를 하나도 받지 못했다고 항의했습니다. 1926년 1월 25일에는 자기 주 연방 의원들을 데리고 워싱턴의 연방 도로국장 토머스 맥도널드를 찾아갔습니다. FHWA는 필즈의 다른 불만은 몰라도 60번만큼은 근거가 있었다고 봅니다. 위원회가 스스로 정한 계획 밖에 둔 번호를 문제 삼았기 때문입니다.
의원단까지 앞세운 항의에 맥도널드와 제임스는 번호를 바꿨습니다. 60번은 버지니아 뉴포트뉴스에서 켄터키를 지나 미주리 스프링필드까지 가는 길로 옮기고, 시카고–LA 길에는 62번을 붙였습니다. 이번에는 오클라호마와 미주리가 들고일어났습니다. 미주리는 60번을 넣은 지도를, 오클라호마는 60번 표지판을 이미 만들어 둔 상태였습니다. 오클라호마 도로위원회 위원장 사이러스 에이버리는 항의 전보를 보냈습니다. 미주리 도로국 수석 기술자 B. H. 피프마이어는 62번을 거부했고, 시카고 쪽 구간만 '60 북부'로 부르자는 뒤이은 절충안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1926년 4월 30일 오후 4시
석 달 넘게 이어진 다툼은 미주리 스프링필드에서 실마리를 찾았습니다. 4월 30일 에이버리와 피프마이어, 오클라호마 도로국 수석 기술자 존 페이지가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장소는 시내의 콜로니얼 호텔이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에이버리는 아직 아무도 쓰지 않은 번호를 찾아보자고 했고, 페이지가 AASHO 사무국 보고서에 실린 미배정 번호 목록을 뒤졌습니다.
페이지가 내놓은 번호가 66이었습니다. 그날 오후 4시, 에이버리와 피프마이어는 연방 도로국장에게 전보를 보냈습니다. 길이 지나는 다른 주들이 받아들인다면 60 대신 66을 쓰겠다는 내용이었고, 끝에 '62보다 66을 원한다'는 한 줄을 붙였습니다.
66을 고른 이유로는 발음이 좋아서라는 설명이 자주 붙습니다. 에이버리의 전기를 쓴 수전 크로스 켈리도 그랬을 수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이건 전기 작가의 짐작입니다. 기록에 남은 사실은 66이 비어 있던 번호였다는 데까지입니다.
켄터키는 그해 7월 이 안에 동의했습니다. 소식을 들은 에이버리는 제임스에게 감사 편지를 보내면서, 이미 길가에 세운 60번 표지판은 폐기해야겠다고 적었습니다. AASHO 집행위원회는 8월 첫 주에 이 안을 승인했습니다. 글 첫머리의 펜 한 획은 이 결정을 서류에 옮긴 흔적입니다.
1926년 11월 11일
AASHO는 1926년 11월 11일 노스캐롤라이나 파인허스트 연례 총회에서 번호 체계를 채택했습니다. 그날은 1차 세계대전 휴전기념일이었습니다. 1년 동안 각 주의 요청을 받아 준 끝에, 번호 도로는 처음 안보다 2만 마일 넘게 늘어난 9만 6,626마일이 돼 있었습니다. 채택 직전 제임스는 지역의 셈법에 휘둘린 대목이 있다고 총회에서 인정했습니다.
이 체계는 완벽하지 않습니다. 잘못된 곳이 있다면, 가장 나쁜 것은 좁은 지역의 시각을 맞춰 주려다 생긴 것입니다.
그래도 그는 더 고치지 말자고 했습니다. 이미 32개 주가 표지판 작업을 거의 마쳤거나 한창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번호를 또 바꾸면 세워 둔 표지판을 다시 뽑아야 했습니다. 66이라는 번호도 그렇게 굳었습니다.
그 뒤 이 길에 이야기를 입힌 것은 길을 달린 사람들이었습니다. 1930년대 대공황과 모래폭풍에 쫓긴 농민들이 이 길로 서쪽으로 떠났습니다. 존 스타인벡은 1939년 소설 『분노의 포도』에서 이 길을 '어머니 길'이라고 불렀습니다. 1946년에는 냇 킹 콜이 부른 노래 「(Get Your Kicks on) Route 66」이 인기를 끌었습니다. 우리가 기억하는 66에는 소설과 노래가 붙어 있습니다.
두 번호의 운명은 반대로 갔습니다. 켄터키 쪽으로 간 60번은 1931년 결국 로스앤젤레스까지 늘어났고, 지금도 버지니아에서 애리조나까지 이어집니다. 66번은 새로 깐 주간 고속도로에 자리를 내줬고, AASHO의 후신인 AASHTO가 1985년 6월 27일 이 번호를 체계에서 지웠습니다. 59년 만이었습니다.
1926년 미국 사람들은 번호가 길의 등급을 정한다고 믿었습니다. 그 믿음은 번호를 나눠 주던 위원회 안에도 있었고, 규칙은 거기서 먼저 비켜 갔습니다. 그 예외를 정리하다가 남은 번호 하나가 나왔습니다. 0으로 끝나는 번호를 받은 길은 지금도 지도에 있습니다. 사람들이 이름을 기억하는 역은 대타 쪽입니다.
출처·참고
- 출처 ↗ FHWA, "From Named Trails to U.S. Numbered Highways", Part E
- 출처 ↗ FHWA, "From Named Trails to U.S. Numbered Highways", Part F
- 출처 ↗ Richard F. Weingroff, "U.S. 666: Beast of a Highway?", FHWA
- 출처 ↗ FHWA, National History Day Competition — Route 66 Exhibit
- 출처 ↗ Springfield, Missouri CVB, "The History of Route 66"
- 출처 ↗ Missouri State University Libraries, "Birthday of Route 66 Celebration"
- 출처 ↗ Encyclopaedia Britannica, "Route 66"
- 출처 ↗ HISTORY, "Route 66 decertified"
- 출처 ↗ Encyclopedia of the Great Plains (University of Nebraska–Lincoln), "Route 66"
- 출처 ↗ Gribblenation, "Former US Route 60 and US Route 70 in Quartzsite"
- 출처 ↗ Oklahoma Historical Society, Route 66 Centennial Events Calendar
- 출처 ↗ Visit Springfield (Illinois), Route 66 Centennial Celebration
- Susan Croce Kelly, 『Father of Route 66: The Story of Cy Avery』, University of Oklahoma Press,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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