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 오클리 100주기 — 받아 실은 신문도 '저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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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1월 3일 (화)
애니 오클리 100주기 — 그때는 받아 실은 신문도 '저자'였습니다
1903년, 엉뚱한 이름이 적힌 전보 한 통 때문에 애니 오클리는 신문 55곳을 고소했습니다. 30년 뒤 미국 법원은 비슷한 오보를 두고 신문에 책임을 묻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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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3년 8월 10일 월요일, 시카고 해리슨가 경찰 법정. 담당 경찰관이 판사 앞에서 체포된 여성을 소개했습니다. 바지를 훔친 혐의로 잡혀 온 여성이었습니다. 경찰관은 이 여성이 버펄로 빌 쇼에 섰던 그 유명한 애니 오클리라고 했습니다. 판사는 여성을 교정시설로 보냈습니다.
경찰관이 댄 이름의 주인은 그 쇼의 간판 명사수였습니다. 오클리는 열다섯 살에 사격 시합에서 직업 명사수를 이겼습니다. 그 뒤 16년 동안 '버펄로 빌의 와일드 웨스트'에서 무대에 섰습니다. 카우보이 묘기와 사격을 보여 주던 순회 공연입니다. 대표 묘기는 공중에 던진 카드를 쏘아 구멍 내기였습니다. 오클리가 세상을 떠난 건 그로부터 23년 뒤입니다. 100년 전 오늘인 1926년 11월 3일, 고향인 오하이오주 다크 카운티의 그린빌에서 눈을 감았습니다. 그린빌에서는 올해 100주기 행사가 이어졌습니다. 애니 오클리 센터 재단이 여름에 기념 카드를 냈고, 지역 역사박물관인 가스트 박물관은 10월에 강연을 열었습니다.
법정이 열린 이튿날, 이 이야기는 전국 신문에 실렸습니다. 신문 재벌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의 시카고 신문 두 곳이 먼저 썼습니다. 이어 회원사에 기사를 대 주던 통신사 퍼블리셔스 프레스가 전보로 각지에 돌렸습니다. 기사는 오클리가 코카인 살 돈 때문에 바지를 훔쳤다고 썼습니다. 스물여덟 살인데 마흔 가까이 돼 보인다는 묘사도 붙었습니다. 진짜 오클리는 그때 뉴저지 집에 있었습니다. 마흔세 번째 생일을 이틀 앞둔 날이었습니다.
그다음 이야기는 우리에게 대개 이렇게 전해집니다. 신문 재벌이 가짜뉴스를 지어냈고, 오클리가 소송으로 혼내 줬다. 이렇게 보면 이야기가 깔끔합니다. 그런데 오클리가 법정에서 상대한 신문은 대부분 시카고에서 온 전보를 받아 실은 곳이었습니다. 정정과 사과를 한 곳도 많았습니다.
전보 한 통, 신문 55곳
정정은 빨랐습니다. 기사가 나간 다음 날, 체포된 여성이 이름을 거짓으로 댔다고 인정했습니다. 같은 통신이 정정 기사를 내보냈습니다. 그 여성은 모드 리였습니다. 무대 이름은 릴리언 코디. 와일드 웨스트 쇼를 돌며 평생 오클리를 흉내 내 온 명사수였습니다.
그런데도 오클리는 신문 55곳을 상대로 명예훼손 소송을 냈습니다. 1904년 첫 재판부터 1910년 마지막 항소까지 걸린 일이었습니다. 세인트루이스에서 스크랜턴까지, 시카고에서 찰스턴까지 법정을 돌았습니다. 55건 가운데 54건을 이기거나 합의로 끝냈습니다.
됭커크 법정의 변론
정정까지 한 신문을 고소한 건 지나쳤다고 볼 만합니다. 1906년 9월, 뉴욕주 메이빌 법정에서 실제로 그 말이 나왔습니다. 피고는 됭커크의 지역지 됭커크 헤럴드였습니다. 변호인은 기사가 명예훼손이라는 건 인정했습니다. 다만 정정을 실어 피해를 메웠고, 오클리 집에서 먼 신문이라 피해도 크지 않다고 맞섰습니다.
오클리는 1903년 8월에 뉴저지 집에 있었다고 증언했습니다. 21년 공연 인생에서 무대를 빠진 건 다섯 번뿐이라고 했습니다. 정정 기사를 알았더라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거라고도 말했습니다. 지역 신문은 법정에 나온 그를 "친절한 학교 선생님 같은 인상"이라고 적었습니다. 배심원은 500달러 배상을 정했습니다.
정정을 실은 먼 곳의 지역지까지 책임을 진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당시 미국 법은 남의 명예를 깎는 말을 옮긴 사람도 그 말을 자기 말로 삼은 것으로 봤습니다. 전보를 그대로 실은 신문도 기사를 쓴 쪽과 같은 자리에 섰습니다. 1905년 뉴저지주 법원은 여기에 선을 하나 더 그었습니다. 같은 기사가 시카고에서 나가 여러 신문에 실렸어도, 각 신문은 자기 지면 몫의 피해만 책임진다고 봤습니다. 피해를 다 따지려면 신문마다 따로 법정에 세워야 했습니다.
우리 동네 극장에 빗대면 이렇습니다. 영화 한 편이 55개 극장에 걸렸는데, 그 영화가 엉뚱한 사람을 도둑으로 그렸다고 해 봅시다. 1903년의 법은 극장마다 그 영화를 직접 만든 것처럼 책임을 물었습니다.
신문마다 따로 법정에 세운 오클리의 방식은 법학 기록에도 남았습니다. 1940년대 후반 시카고대 로리뷰는 오클리를 이 방식의 원조로 꼽는 시각을 소개했습니다. 통신 기사 한 건을 두고 여러 지역에서 따로 소송을 내는 방식입니다.
1933년 2월, 플로리다 대법원
30년 뒤, 비슷한 사건이 플로리다 법정에 올랐습니다. 1930년 여름, 탬파 모닝 트리뷴이 워싱턴발 통신 전보 두 건을 실었습니다. AP 통신과 유니버설 통신이 보낸 기사였습니다. 술의 제조와 판매를 막던 금주법 시대에, 술을 갖고 있다가 기소된 하원의원 이야기였습니다. 기사에는 의원의 비서도 함께 기소됐다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그중 한 전보는 그 비서를 존 레인이라고 적었습니다. 레인은 신문사를 상대로 1만 5,000달러를 청구했습니다. 법원은 레인에 관한 그 대목이 사실이 아니라는 전제에서 판단했습니다.
확인도 안 하고 실었으니 신문 잘못이라고 우리는 먼저 생각합니다. 그럴 만한 생각입니다. 그런데 1933년 2월 3일 플로리다 대법원은 신문의 손을 들어 줬습니다. 판결문은 이렇게 적었습니다. 어떤 신문도 통신사가 보내는 기사를 일일이 확인하면서 제때 신문을 낼 수는 없다. 옛 규칙을 기계화된 시대에 맞게 고쳐 쓰는 것도 법원의 일이라고 했습니다.
통신사 기사를 실은 신문은 자기가 쓴 것 없이, 남이 써 보낸 기사를 비추는 동네의 '스크린'이다. — 레인 대 트리뷴 판결(1933)
그럼 레인은 억울하게 끝난 걸까요. 판결은 문을 하나 열어 두었습니다. 신문이 무모했거나 부주의했다는 걸 보이면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런 기사의 진짜 저자는 처음 써서 보낸 쪽이라고도 봤습니다. 이후 여러 주 법원이 이 논리를 따랐습니다. 미국 법조계는 이를 '통신 기사 항변'이라고 부릅니다.
저자에서 스크린으로
두 사건은 닮았습니다. 둘 다 체포나 기소 기사에 엉뚱한 이름이 들어갔습니다. 둘 다 통신 전보를 타고 지방 신문까지 갔습니다. 1903년의 법은 그 신문을 저자로 봤고, 1933년의 법원은 스크린으로 봤습니다. 30년 동안 오보의 모양은 그대로였습니다. 바뀐 건 신문을 보는 법의 눈이었습니다.
1933년 판결문은 오클리의 소송을 언급하지 않습니다. 다만 두 시대의 법원이 붙든 질문은 같았습니다. 남의 기사를 받아 실은 신문은 그 말을 한 사람인가, 그 말을 비춘 화면인가.
1903년의 법은 영화를 튼 극장마다 영화를 만든 책임을 물었습니다. 1933년의 법원은 극장을 스크린으로 돌려놓았습니다. 법이 극장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틀린 이름의 주인이 찾아갈 곳도 달라졌습니다. 1933년의 기준이라면 먼저 필름을 만든 곳이었을 겁니다. 1903년의 오클리는 극장 55곳을 찾아가야 했습니다.
출처·참고
- 출처 ↗ Butler v. Hoboken Printing & Publishing Co. (N.J. 1905) 판결문
- 출처 ↗ Layne v. Tribune Co. (플로리다 대법원, 1933) 판결문
- 출처 ↗ Michelle Henry, "Annie Oakley in Court", New York Archives (2008 가을호)
- 출처 ↗ Smithsonian Magazine, How Annie Oakley, "Princess of the West," Preserved Her Ladylike Reputation
- 출처 ↗ HistoryNet, Annie Oakley vs. Hearst's Worst
- 출처 ↗ PBS American Experience, Annie Oakley 방송 대본
- 출처 ↗ The University of Chicago Law Review, Recent Cases: Libel and Slander (Spanel v. Pegler 평석)
- 출처 ↗ Jennifer L. Del Medico, "Are Talebearers Really as Bad as Talemakers?", Fordham Urban Law Journal 31 (2004)
- 출처 ↗ Jerry Kuntz, A Pair of Shootists (오클라호마대 출판부, 2010)
- 출처 ↗ Garst Museum, 애니 오클리 100주기 행사 안내 (2026)
- Louis Stotesbury, "The Famous 'Annie Oakley' Libel Suits", The American Lawyer 13 (1905)
- Kyu Ho Youm, "The Wire Service Libel Defense", Journalism Quarterly 70(3)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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