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S 120년 — 협약문에는 'SOS'라는 글자가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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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1월 2일 (월)

잡학베를린 무선전신협약 120년

SOS 내일 120년 — 협약문에는 'SOS'라는 글자가 없었습니다

1906년 11월 3일, 베를린에서 각국 대표가 정한 건 신호 모양만이 아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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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약문에는 'SOS'라는 글자가 없었다 — 1906년 베를린 협약은 조난 신호를 점과 선으로만 그렸습니다. 협약이 더 공들인 건 '받을 의무'였습니다. (카드 1/6) "SOS는 무슨 말의 약자입니까" — 이 물음에 마르코니는 "그냥 세 글자"라고 답했습니다. 'Save our souls'는 외우기 쉽게 붙인 풀이입니다. — 점 셋, 선 셋, 점 셋 (카드 2/6) 거절당한 전보 한 통 — 마르코니 무선국은 경쟁사 장비를 단 배의 전보를 받지 않았습니다. 조난 때만 예외였는데, 그것도 회사 규칙이었습니다. (카드 3/6) 받을 의무를 협약에 적다 — 회사가 달라도 전보를 주고받고, 조난 호출에는 먼저 응답하라. 이 조항이 신호를 정한 조항보다 앞에 있습니다. — 27개국 서명 (카드 4/6) 옛 신호와 새 신호를 섞어 친 밤 — 무선사는 CQD부터 치다가 SOS를 섞었습니다. 그 신호를 받은 건 헤드폰을 쓴 채 잠자리에 들려던 카르파티아호 무선사였습니다. — 사진: 1912년 4월, 생존자를 태우고 뉴욕 54번 부두에 닿은 카르파티아호 · American Press Association · 퍼블릭 도메인 (카드 5/6) 듣는 사람이 없을 때 — 가까이 있던 캘리포니언호의 무선사는 잠들어 있었습니다. 그 뒤 무선사를 깨우는 자동 경보가 규정에 들어갔습니다. 번호는 정하기 쉽고, 받게 만들기는 어렵습니다. (카드 6/6)

1912년 6월 18일, 런던에서 타이타닉 침몰을 조사하던 영국 난파조사위원회에 굴리엘모 마르코니가 증인으로 섰습니다. 무선전신을 처음 사업으로 키운 사람이자, 타이타닉 무선실 장비를 댄 회사의 회장이었습니다.

조사위원장이 SOS는 무슨 말의 약자냐고 물었습니다. 마르코니는 그냥 세 글자라고 답했습니다. 그러자 영국 법무장관이 거들었습니다. 자기는 'Save our souls', 그러니까 '우리 영혼을 구하라'라고 들었다고 했습니다. 외우기 쉽게 붙인 말 아니냐고요. 마르코니는 그렇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SOS를 그 말의 머리글자로 아는 건 그럴 만합니다. 영국 법무장관의 귀에까지 그 풀이가 들어가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6년 전 베를린에서 각국 대표가 서명한 협약문을 펴 보면 S도 O도 없습니다. 조난 선박이 보낼 신호라며 점 세 개, 선 세 개, 점 세 개를 그려 놓았을 뿐입니다. 같은 자리에서 마르코니도 무선사 안내서에 실린 그 그림을 보고 "정확히 SOS는 아니지만 사실상 그렇다"고 말했습니다.

사실 그 그림은 협약에서 쉬운 쪽이었습니다. 통신사마다 긴급 번호가 따로 있다고 해 봅시다. 번호를 하나로 맞추는 건 회의 한 번이면 됩니다. 어려운 건 따로 있습니다. 다른 회사 가입자가 건 번호라도 모든 통신사가 받아서 이어 주게 만드는 일입니다. 1906년 베를린 협약이 공을 들인 것도 이쪽이었습니다.

1902년 3월, 대서양에서 거절당한 전보

일은 그보다 4년 앞서 대서양에서 시작됐습니다. 1902년 3월, 독일 황제의 동생 하인리히 왕자가 미국 방문을 마쳤습니다. 돌아가는 배는 독일 여객선 도이칠란트호였습니다. 왕자는 배에서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환대에 감사한다는 무선 전보를 보내려 했습니다.

미국 매사추세츠주 낸터킷 앞바다의 무선국은 이 전보를 받지 않았습니다. 도이칠란트호에는 독일 회사의 무선기가 실려 있었습니다. 낸터킷 무선국은 마르코니 장비를 썼습니다. 이 무선국에는 세울 때부터 조건이 붙어 있었습니다. 비상시가 아니면 다른 회사 장비를 단 배와는 교신하지 않는다는 조건이었습니다. 영국 콘월의 마르코니 무선국도 똑같이 거절했습니다.

마르코니 쪽에도 할 말은 있었습니다. 당시 한 전기 잡지에 마르코니를 편드는 편지를 보낸 사람은 회사가 정식 요청을 받은 적도 없다고 반박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요청이 왔다면 받았겠느냐는 물음에는 회사의 답이 망설임 없는 '아니요'였다고 적었습니다. 마르코니 쪽이 내세운 이유는 특허와 투자였습니다. 다른 무선 방식은 모두 마르코니의 기본 특허를 침해했고, 돈을 들여 세운 무선국에 경쟁사가 공짜로 올라타서는 안 된다는 논리였습니다. 내 돈으로 깐 망을 남의 회사 고객이 쓰겠다고 하면 거절할 만합니다. 그래도 조난만큼은 예외로 빼 두었습니다.

문제는 그 예외가 회사 규칙이었다는 점입니다. 회사가 정한 예외는 회사가 바꿀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바다에서 사고를 당한 배는 어느 회사 무선국이 가까이 있을지 고를 수 없습니다. 이 문제를 나라 사이의 규칙으로 풀자고 나선 건 독일 정부였습니다. 1903년 8월 베를린에서 예비 회의를 열었고, 9개국이 왔습니다. 마르코니 장비를 주로 쓰던 영국과 이탈리아는 서로 교신하자는 안에 단서를 달았습니다. 이 자리에서 이탈리아 대표는 조난 선박이 몇 분마다 'SSS DDD'를 보내자고 했습니다. 하지만 조난 신호는 정하지 못한 채 회의가 끝났습니다.

1906년 베를린, 신호 그림과 두 개의 조항

3년 뒤인 1906년 10월, 베를린에서 첫 국제무선전신회의가 열렸습니다. 이번에는 30개국 대표가 모였습니다. 왕자의 전보 한 통이 4년 만에 30개국 회의로 커진 셈입니다.

그사이 조난 신호는 오히려 더 갈라져 있었습니다. 마르코니 회사는 1904년 2월부터 자기 무선사들에게 CQD를 쓰게 했습니다. '모든 무선국'을 부르는 부호 CQ에 조난(distress)의 D를 붙인 것입니다. 독일은 1905년 4월부터 나라 규정으로 점 셋, 선 셋, 점 셋을 조난 신호로 정했습니다. 미국 해군은 깃발 신호에서 쓰던 NC를 무선에도 쓰자고 했습니다. 통신사마다 긴급 번호가 따로 있던 셈입니다.

내일로 꼭 120년 전인 1906년 11월 3일, 27개국 대표가 협약에 서명했습니다. 조난 신호로는 독일 것을 골랐습니다. 부속 업무규정 제16조에는 '조난 선박은 다음 신호를 쓴다'는 문장 뒤에 점과 선이 그려져 있습니다. 짧은 간격으로 되풀이하라는 말이 붙었을 뿐, 글자 이름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런데 협약 본문에서 더 무거운 조항은 앞쪽에 있습니다. 제3조는 해안 무선국과 배의 무선국이 어떤 무선 방식을 쓰든 구분 없이 전보를 주고받아야 한다고 정했습니다. 제9조는 무선국이 배의 조난 호출에 절대 우선권을 주고, 그 호출에 응답하고,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한다고 정했습니다. 번호를 정한 조항보다 그 번호를 받아야 한다는 조항이 먼저 나오는 겁니다.

무선국은 배의 조난 호출에 절대 우선권을 주고, 그 호출에도 같은 우선권으로 응답해야 한다. — 1906년 베를린 무선전신협약 제9조

합의가 매끄럽지는 않았습니다. 배와 배 사이에도 무선 방식과 상관없이 교신해야 한다는 부속 합의서가 따로 있었습니다. 여기에는 21개국만 서명했습니다. 빠진 나라 가운데 마르코니 장비를 쓰던 영국과 이탈리아가 있었습니다. 이탈리아는 최종의정서에 마르코니와 맺은 계약이 끝나기 전에는 협약을 비준할 수 없다는 단서까지 남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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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협약 서명국과, 배끼리도 방식 구분 없이 교신하기로 한 부속 합의서 서명국

바뀐 규칙이 손에 익기까지

협약은 1908년 7월 1일에야 효력이 생겼습니다. 서명하고 1년 8개월 뒤입니다. 그사이 신호에 이름부터 붙었습니다. 1907년 1월 미국 잡지 『일렉트리컬 월드』는 조난 선박이 'SOS'라는 특별 신호를 쓴다고 적었습니다. 국제 모스 부호에서 점 셋은 S, 선 셋은 O이니 그렇게 부르기 쉬웠습니다.

바다에서 실제로 쓰인 건 더 뒤입니다. 첫 SOS로 꼽히는 건 1909년의 두 배입니다. 6월에는 대서양 아소르스 제도에서 좌초한 영국 커나드 사의 슬라보니아호가 쳤습니다. 8월에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앞바다에서 고장 나 떠돌던 아라파호호가 쳤습니다. 노스캐롤라이나 주정부 기록을 보면 아라파호호 무선사는 잠깐 헷갈렸습니다. 옛 신호 CQD와 새 신호 SOS 가운데 어느 쪽을 보내야 할지 몰라 둘 다 보냈습니다.

미국은 더 늦었습니다. 미국 대표도 1906년 베를린에서 서명했습니다. 그런데 상원은 5년 넘게 비준하지 않았습니다. 정부 규제를 싫어한 무선 회사들의 반대가 거셌으니 망설일 만도 했습니다. 상원이 움직인 건 비준하지 않으면 그해 6월 런던 회의에 부르지 않겠다는 통보를 받고 나서였습니다. 1912년 4월 3일, 상원은 협약 비준에 동의했습니다.

12일
미국 상원이 베를린 협약 비준에 동의한 날부터 타이타닉이 가라앉은 날까지

그리고 4월 14일 밤, 타이타닉이 빙산에 부딪혔습니다. 3년 전 아라파호호의 망설임이 그대로 되풀이됐습니다. 선임 무선사 잭 필립스는 CQD부터 쳤습니다. 후배 무선사 해럴드 브라이드가 새 신호니까 SOS도 보내 보자고 권하자, 그제야 둘을 섞어 보냈습니다. 마르코니도 미국 상원 조사에서 국제 신호가 오히려 자기 회사 신호보다 덜 알려져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래도 신호는 닿았습니다. 카르파티아호의 무선사 해럴드 코텀이 그 CQD를 받았습니다. 코텀은 그때 헤드폰을 쓴 채 잠자리에 들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신호로 불렀느냐보다, 듣는 사람이 그 자리에 있었느냐가 먼저였습니다.

아무도 듣지 않을 때

여기서 반론이 나올 만합니다. 규칙이 다 있었는데, 가까이 있던 배는 왜 오지 않았을까요. 그날 밤 타이타닉 근처에는 캘리포니언호가 있었습니다. 이 배의 무선사는 시릴 에반스 한 명뿐이었습니다. 근무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아무도 그를 깨우지 않았습니다. 신호는 바다 위에 퍼지고 있었지만, 받아야 할 사람은 헤드폰을 벗고 있었습니다.

두 달 뒤 런던 조사에서 조사위원장이 바로 그걸 물었습니다. 누가 부르면 벨 같은 게 울리느냐고요. 마르코니는 "지금은 아니다"라고 답했습니다. 그날 휴정 뒤에는 무선사가 한 명뿐인 배를 두고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마르코니는 조난 신호에 15~30초짜리 긴 신호를 붙여 무선기가 화재경보처럼 벨을 울리게 하자고 했습니다. 그러려면 국제 협약부터 고쳐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뒤에 비슷한 방식이 국제 규정에 들어갔습니다. 4초짜리 긴 신호를 1초 간격으로 열두 번 보내면, 듣는 사람이 없는 배에서도 자동 장치가 벨을 울려 무선사를 부릅니다. 이 신호는 지금도 미국 연방규정에 남아 있습니다. 받을 의무를 정하고 나니, 다음 숙제는 받을 사람을 늘 그 자리에 두는 일이었습니다. 그 숙제도 회사 혼자 풀 수 없어서, 답은 다시 협약에서 나왔습니다.

1999년 2월 1일

1999년 2월 1일, 국제 항해를 하는 큰 배들은 새 조난 체계로 완전히 옮겨 갔습니다. 위성과 디지털 호출을 쓰는 체계입니다. 그날부터 모스 부호는 의무가 아니게 됐고, 자동 모스 경보기도 배에서 내려졌습니다. 베를린에서 서명한 지 93년 만이었습니다.

우리 기억에 남은 건 외우기 쉬운 세 글자입니다. 그 신호를 쓸모 있게 만든 건 글자가 아니라, 남의 회사 배가 보낸 신호도 받아야 한다는 약속이었습니다. 번호는 정하기 쉽습니다. 받게 만드는 게 어렵습니다.

출처·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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