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세트테이프를 만든 회사는 필립스입니다 — 워크맨을 만든 회사는 소니입니다 — Woody Magazine, 2026년 9월 3일
Woody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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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세트테이프를 만든 회사는 필립스입니다 — 워크맨을 만든 회사는 소니입니다
내일 베를린에서 IFA가 열립니다. 63년 전 그 전시장에서 시작된 이야기입니다.
세 줄 요약
- 카세트테이프는 1963년 베를린 전시회에서 필립스가 처음 선보였습니다. 소니는 이 규격을 만들지 않았습니다. 그 테이프를 넣고 걷는 기계를 만들었습니다.
- 필립스는 소니에 사용료를 받으려다 물러섰습니다. 25엔, 6엔, 그다음이 0엔이었습니다. 공짜가 된 규격은 4년 만에 세계 표준이 됐습니다.
- 필립스가 망했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규격 싸움에서 이긴 회사와 그 규격으로 돈을 번 회사가 달랐다는 이야기이고, 필립스는 다음 규격인 CD에서 그 둘을 한 회사로 만들었습니다.
내일 베를린에서 IFA가 문을 엽니다. 1924년부터 이어 온 유럽 최대 가전 전시회입니다. 삼성과 LG가 해마다 이 자리에서 신제품을 꺼내고, 지난해에는 140개 나라에서 22만 명이 다녀갔습니다.
63년 전 같은 전시장에 담뱃갑만 한 테이프와, 그걸 돌리는 주머니 크기 녹음기가 나왔습니다. 네덜란드 회사 필립스가 벨기에 하셀트 공장에서 만든 '포켓 레코더'였습니다. 개발 책임자 루 오텐스는 재킷 안주머니에 들어갈 크기로 나무토막을 깎아 놓고, 거기에 맞춰 기계를 설계하라고 했습니다. 부스 앞에 일본에서 온 방문객들이 몰려 사진을 찍고 수첩에 적어 갔습니다. 오텐스는 그 장면을 오래 기억했습니다. 1년이 안 돼 비슷한 물건이 일본에서 쏟아졌기 때문입니다. 크기는 제각각이라 서로 끼울 수도 없었습니다.
발명한 회사가 돈을 벌었겠지요
카세트테이프 하면 우리는 대개 소니를 떠올립니다. 워크맨 때문입니다. 그래서 카세트도 소니가 만들었다고 아는 분이 많습니다. 그럴 만합니다. 하지만 만든 회사는 필립스이고, 필립스는 이 규격으로 사용료를 한 푼도 받지 않았습니다.
처음부터 그럴 생각은 아니었습니다. 필립스도 우리처럼 계산했습니다. 특허가 있으니 만드는 회사마다 사용료를 받으면 된다는 계산입니다.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 계산이 도쿄에서 무너집니다. 그 전에 독일에서 먼저 일이 났습니다.
등 돌린 동업자
필립스는 원래 독일 가전회사 그룬디히와 새 테이프 규격을 함께 개발하고 있었습니다. 오스트리아 빈 공장에서는 릴 하나짜리 카세트를, 벨기에 하셀트에서는 릴 두 개짜리를 따로 만들었습니다. 필립스 경영진은 하셀트 쪽을 택했고, 그 사실을 그룬디히에 늦게 알렸습니다. 오텐스의 기억으로는, 창업자 막스 그룬디히가 그 자리에서 협력을 끊고 자기 규격을 서두르라고 지시했습니다.
1965년 IFA에서 그룬디히는 'DC-인터내셔널'을 내놓습니다. 필립스 것보다 조금 큰 카세트였습니다. 텔레풍켄이 기계를 만들고 BASF와 아그파가 테이프를 댔습니다. 규격 전쟁이 붙었습니다. 그런데 이 전쟁의 승부는 독일이 아니라 일본에서 갈립니다. 유럽 회사 둘이 싸우는 동안, 앞으로 기계를 가장 많이 만들 회사들은 거기 있었기 때문입니다.
도쿄, 25엔에서 0엔까지
그룬디히는 1963년 IFA 개막 때 이미 소니에 손을 내밀었습니다. 독일 회사 셋이 만드는 규격에 함께 들어오라는 제안이었습니다. 필립스도 뒤따라 사람을 보냈습니다. 필립스 극동 책임자 데커(Wisse Dekker)와 오텐스가 도쿄로 가서 소니의 오가 노리오를 만났습니다. 오가는 성악을 공부하다 소니 창업자들 눈에 띄어 들어온 사람으로, 뒤에 소니 사장이 됩니다. 오가는 필립스 것을 골랐습니다. 이유는 하나, 더 작았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계약서 단계에서 터졌습니다. 소니 사사(社史, 회사 역사)에 남은 숫자입니다. 필립스는 일본 회사들이 파는 기계 한 대당 25엔을 불렀습니다. 오가가 거절했습니다. 며칠 뒤 필립스가 6엔으로 낮췄습니다. 다른 회사들은 이미 동의한 액수라고 했습니다. 소니 사업부장은 받아들이자고 했지만 오가는 또 거절했습니다. 사용료를 아예 없애지 않으면 그룬디히와 가겠다고 했습니다. 필립스가 물러섰습니다. 대신 소니에 독점권은 주지 않았습니다. 1965년, 필립스는 규격만 지키면 누구나 쓸 수 있게 특허를 풀었습니다.
오텐스는 50년 뒤 이 장면을 조금 다르게 기억했습니다. 오가가 "그룬디히가 일주일 전에 전화해서 자기네 시스템을 공짜로 주겠다고 했다"고 말했다는 겁니다. 오텐스는 그게 오가의 허세였고, 그룬디히의 복수였다고 봤습니다. 허세였든 아니든 효과는 같았습니다. 필립스는 6엔을 지키려다 일본을 통째로 그룬디히에 넘길 수 없었습니다.
4년 만에 끝난 전쟁
공짜 규격은 빨리 퍼졌습니다. 1967년 9월 필립스 사보가 집계한 숫자로, 이 규격으로 녹음기를 만드는 회사가 세계에 70곳이었습니다. 음악을 미리 담아 파는 카세트는 70개 음반사에서 1,200종이 나와 있었습니다. 같은 해 그룬디히는 DC-인터내셔널을 접었습니다. 그리고 그해 IFA에 필립스 카세트가 돌아가는 자기 기계를 들고 나왔습니다. 동업자였다가 1965년에 맞붙은 두 회사가 1967년 같은 전시장에서 한 규격으로 돌아온 셈입니다.
필립스가 얻은 건 규격의 이름이었습니다. 그 뒤로 어느 나라 어느 회사 기계에 넣어도 돌아가는 카세트는, 크기도 테이프 폭도 속도도 필립스가 정한 대로였습니다. 골목에 길을 낸 집이 필립스였고, 길 이름도 필립스가 붙였습니다. 그런데 그 길에는 통행료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돈은
1979년 소니가 워크맨을 내놓습니다. 녹음 기능을 빼고 스피커 대신 헤드폰을 단 재생 전용 기계였습니다. 카세트를 주머니에 넣고 걸으면서 듣는 일이 여기서 시작됐습니다. 오텐스는 이 물건을 두고 말년까지 같은 말을 했습니다. 카세트에 딱 맞는 물건이었는데 우리한테는 없었다, 그게 아직도 아프다고요.
필립스가 카세트로 얼마를 벌었는지는 회사도 밝힌 적이 없습니다. 기계와 테이프를 팔았고 음반사 폴리그램의 대주주였으니 손해를 봤을 리는 없습니다. 확실한 건 둘입니다. 사용료는 0이었고, 이 규격으로 가장 많이 팔린 물건은 소니 것이었습니다. 길가에서 가장 큰 가게를 연 건 길을 낸 집이 아니었습니다.
필립스가 배운 것
그래서 다음 규격에서 필립스는 순서를 바꿨습니다. 1979년 3월, 필립스는 개발 중이던 디지털 음반 시제품을 소니에 보여줬습니다. 소니 쪽 창구는 이번에도 오가였습니다. 그해 8월 두 회사가 공동 작업반을 꾸렸고, 이듬해 규격서를 냈습니다. 규격서에는 어느 특허가 필립스 것이고 어느 게 소니 것인지 적혀 있었습니다. CD를 만드는 회사는 두 회사에 사용료를 냈습니다. 2007년 CD 25주년 때 필립스 임원은 그 사용료가 회사의 어려운 시절을 버티게 해 줬다고 말했습니다.
규격 전쟁에서 이기는 것과 그 규격으로 돈을 버는 것은 다른 일이었습니다. 필립스는 첫 번째를 얻으려고 두 번째를 내줬습니다. 열여섯 해 뒤 같은 회사가 같은 상대와 마주 앉아 이번에는 둘 다 챙겼습니다. 내일 IFA에서 나오는 신제품 중에도 규격을 공짜로 푸는 회사가 있을지 모릅니다. 그 회사가 길을 내는 건지 길가 자리를 내주는 건지는, 몇 해 지나야 압니다.
출처·참고
- 출처 ↗ 필립스 박물관·필립스 회사 기록보관소, "Providing the soundtrack to people's lives"(1963년 IFA 첫 공개, 무료 라이선스 조건, 1967년 9월 사보 집계)
- 출처 ↗ 필립스 미디어 라이브러리, "First Philips cassette recorder, 1963"
- 출처 ↗ 소니 사사 "Sony History" 카세트 장 전재 — vintagecassettes.com(25엔·6엔·0엔 협상 경위)
- 출처 ↗ The Register, 루 오텐스 인터뷰, 2013년 9월 2일
- 출처 ↗ heise online, "Zahlen, bitte! Die Compact Cassette", 2018년 8월 29일(오텐스의 2013년 Zeit 인터뷰 인용)
- 출처 ↗ Wikipedia, "DC-International"(그룬디히 규격 1965년 발표·1967년 단종)
- 출처 ↗ Rolling Stone, 루 오텐스 부고, 2021년 3월 10일(NRC Handelsblad 인용, 워크맨 발언)
- 출처 ↗ DutchAudioClassics, "The six Philips/Sony meetings 1979–1980"
- 출처 ↗ AP/The Hollywood Reporter, "Compact disc celebrates 25th anniversary"(레드북 특허 명시, 필립스 임원 발언)
- 출처 ↗ IFA Berlin 2026 공식, 개최 일정(9월 4~8일)
- 출처 ↗ visitBerlin, IFA 2026(2025년 관람객 22만 명·140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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