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의 대국 70년 — 열세 살 피셔는 그 대회 공동 8위였습니다
Woody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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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0월 16일 (금)
세기의 대국 70년 — 열세 살 피셔는 그 대회 공동 8위였습니다
퀸을 내주고 이긴 그 판은 대회가 끝나고 한 달여 뒤, 잡지 표지에서 이름을 얻었습니다
세 줄 요약
- 1956년 10월 17일, 열세 살 바비 피셔는 퀸을 내주는 수로 어른 고수를 이겼습니다.
- 그런데 그 대회에서 피셔는 12명 중 공동 8위였고, 첫 보도에서 이 판에는 이름조차 없었습니다.
- 판이 부풀려졌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세기의 대국'이라는 말에는 처음부터 '신동들의 판 가운데'라는 단서가 붙어 있었습니다.
내일(17일)이면 체스에서 '세기의 대국'이라 부르는 판이 둬진 지 꼭 70년이 됩니다. 체스 팬이라면 한 번쯤 들어 본 이름입니다. 1956년 미국 뉴욕에서 열세 살 바비 피셔(Bobby Fischer)가 둔 판입니다. 상대는 스물여섯 살 고수 도널드 번(Donald Byrne)이었고, 피셔는 퀸을 내주고 이겼습니다. 피셔는 훗날 세계 챔피언이 됐고, 그 출발점으로 흔히 이 판이 꼽힙니다. '세기의'라는 말만 들으면 한 세기에 한 번 나올 판이라는 뜻으로 읽힙니다. 그렇게 읽는 게 자연스럽습니다. 그런데 이 이름에는 처음부터 작은 글씨가 하나 붙어 있었습니다.
간판에 큼직하게 "최고의 국밥"이라고 써 붙인 식당이 있습니다. 들어가 보면 메뉴판 맨 아래에 작은 글씨로 "이 가격대에서"라고 적혀 있습니다. 손님은 대개 간판만 기억하고 나옵니다. 세기의 대국이라는 이름도 비슷한 길을 걸었습니다. 그 작은 글씨를 찾으려면 1956년 가을로 돌아가야 합니다.
열세 살이 처음 어른들 사이에 앉은 대회
무대는 로젠월드 트로피 대회였습니다. 사업가 레싱 로젠월드(Lessing J. Rosenwald)가 돈을 대 미국의 정상급 기사들을 불러 모은 대회입니다. 1956년 10월이 세 번째였고, 이 대회는 훗날 미국 선수권으로 이어집니다. 초청받은 기사는 12명, 서로 한 번씩 모두 맞붙는 방식이었습니다.
피셔가 그 자리에 낀 건 그해 7월 미국 주니어 선수권에서 우승했기 때문입니다. 상대가 전부 어른인 대회는 그에게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출발은 좋지 않았습니다. 1라운드에서는 당시 미국 챔피언 아서 비스기에(Arthur Bisguier)에게 졌습니다. 2라운드에서는 에이브 터너(Abe Turner)에게 또 졌습니다. 열세 살이 어른 고수들 틈에서 첫 두 판을 내리 졌다면 그럴 만한 일입니다. 우리가 아는 피셔는 아직 거기 없었습니다.
10월 17일, 퀸을 피하지 않은 17번째 수
상대 도널드 번은 1953년 미국 오픈 우승자로, 당시 미국 상위권 기사였습니다. 이 대회 1라운드에서는 미국 최고의 그랜드마스터로 꼽히던 새뮤얼 레셰프스키(Samuel Reshevsky)를 꺾기도 했습니다. 번이 백, 피셔가 흑을 잡았습니다.
11수째 피셔는 나이트를 상대 앞에 그냥 내밀었습니다. 번이 이 나이트를 잡지 않자 판은 더 복잡해졌고, 16수째 백의 비숍이 흑의 퀸을 겨눴습니다. 퀸은 체스에서 가장 힘센 말입니다. 보통은 퀸부터 피합니다. 그런데 17수째 피셔는 퀸을 그 자리에 둔 채 다른 비숍 하나를 옮겼습니다. 번이 퀸을 잡자 그때부터 흑의 나이트와 비숍이 번갈아 체크를 걸며 백의 킹을 구석에 몰아넣었습니다. 이어지는 몇 수 사이 피셔는 룩 하나와 비숍 둘, 폰 하나를 거둬들였습니다. 퀸 하나를 주고 그보다 많은 것을 돌려받은 셈입니다.
당시 대국장에서 이 판을 지켜본 사람 가운데 체스 저술가 한스 크모크(Hans Kmoch)가 있었습니다. 그는 피셔가 앞부분에서 시간을 많이 썼지만 결정적인 수들은 20분 남짓에 뒀다고 기록했습니다.
고수끼리는 질 판이 분명하면 손을 들고 일어서는 게 보통입니다. 그런데 판이 기운 뒤에도 번은 기권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제자가 전하는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번은 주변 기사들에게, 어린 상대의 수에 경의를 표하는 뜻으로 끝까지 둬도 되겠느냐고 물었습니다. 모두 좋다고 하자 번은 41수째 외통수를 받을 때까지 뒀습니다.
대회는 레셰프스키의 것이었습니다
대회가 끝나자 미국체스협회 기관지 『체스 라이프』는 11월 5일 자 1면에 우승자를 실었습니다. 레셰프스키가 11판에서 9점을 얻었고, 진 판은 번에게 진 1라운드 하나뿐이었습니다. 2위는 비스기에였습니다.
피셔와 번의 판은 2면에 실렸습니다. 다른 두 판의 기보 뒤에, 제목 대신 오프닝 이름인 '그륀펠트 방어'만 달고 있었습니다. 같은 호의 뉴욕 소식란은 피셔가 퀸을 내주는 기막힌 수로 번을 이겼다고 한 줄 적었습니다. 이 칼럼에는 대회를 크모크가 아주 잘 운영했다는 문장도 있습니다. 크모크는 관전자이기 전에 이 대회의 운영자였습니다.
그래도 이 판이 대단했던 건 사실 아니냐고 물을 수 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실제로 11월 20일 자 『체스 라이프』는 이 판이 대회에서 가장 빛난 판에 주는 상을 받았다고 알렸습니다. 다만 기사의 표현은 '이 대회에서 가장 뛰어난 판'이었습니다. '세기'라는 말은 그 뒤에, 다른 곳에서 붙었습니다.
한 달 뒤, 잡지 표지에 붙은 이름
이름을 붙인 사람은 다시 크모크였습니다. 그는 오스트리아 빈 출신의 국제 마스터였습니다. 뉴욕 맨해튼 체스클럽 운영을 맡아 대회를 진행했고, 당시 미국 최고의 체스 잡지 『체스 리뷰』에 글을 썼습니다. 그 잡지 1956년 12월호 표지에 피셔의 사진과 함께 '세기의 대국'이라는 글자가 실렸습니다. 대국 도중에 찍은 사진이라고 전해집니다.
그런데 해설에서 크모크는 이 판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열세 살 소년이 만만찮은 상대에게 보여 준 눈부신 조합의 걸작으로, 체스 신동들의 역사에 남은 최고의 기록들과 견줄 만하다. 이어서 크모크는 이 판을 다른 신동들의 판과 나란히 놓습니다. 19세기 미국의 체스 천재 폴 모피가 13세에, 레셰프스키가 11세에, 쿠바 출신 세계 챔피언 카파블랑카가 12세에 둔 판들입니다. 간판은 '세기의 대국'이었고, 메뉴판의 작은 글씨는 '신동들 가운데'였던 겁니다.
이 표지는 해설이 실린 쪽수까지 잘못 적었습니다. 그 바람에 호주의 한 평론가는 엉뚱한 판을 세기의 대국으로 알고 글을 쓰기도 했습니다. 그사이 이름은 퍼졌고, 단서는 떨어져 나갔습니다. 체스 사학자 에드워드 윈터는 이 말이 신동의 판이라는 맥락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빼고 옮긴 필자들이 있다고 지적합니다.
피셔는 이 판을 대표작 모음에 넣지 않았습니다
그 뒤의 피셔는 우리가 아는 피셔입니다. 1958년 1월에는 열네 살로 미국 선수권을 차지했습니다. 같은 해 열다섯 살로 당시 세계 최연소 그랜드마스터가 됐고, 1972년에는 세계 챔피언에 올랐습니다. 열세 살의 대회 성적표를 기억하는 사람은 드뭅니다.
정작 피셔 자신은 이 판을 어떻게 봤을까요. 1959년에 낸 얇은 기보집에는 이 판을 실었습니다. 그러나 1969년 직접 해설을 붙여 펴낸 『나의 기억할 만한 60판』에는 넣지 않았습니다. 당시 영국 체스 잡지의 서평자는 책이 세기의 대국으로 시작하지도 않고, 아예 실리지도 않았다고 놀라워했습니다. 피셔가 왜 뺐는지는 기록이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도 이 책 재출간판의 판매 소개문에는 "열다섯 살에 둔 세기의 대국"이 실려 있다고 적혀 있습니다. 책에 없는 판이 틀린 나이까지 달고 소개문에 들어가 있습니다.
이 판은 70년 동안 걸작으로 꼽혀 왔습니다. 그동안 달라진 건 이름의 크기입니다. 대회장에서는 그륀펠트 방어라는 기보 한 장이었습니다. 잡지에 실리면서 '신동들의 판 가운데 손꼽히는 판'이 됐고, 그 뒤로는 그냥 세기의 대국으로 불립니다. 메뉴판의 작은 글씨는 처음부터 거기 있었습니다. 우리가 간판만 들고 나왔을 뿐입니다.
한눈에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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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참고
- 출처 ↗ Chess Life, 1956년 11월 5일 자 (미국체스협회 기록보관소)
- 출처 ↗ US Chess, "Throwback Thursday: Game of the Century Goes Viral in November 1956" (2020)
- 출처 ↗ Edward Winter, "The Byrne v Fischer 'Game of the Century'", Chess Notes
- Hans Kmoch, "The Third Rosenwald Tournament: Game of the Century", Chess Review, 1956년 12월호
- 출처 ↗ ChessBase, "Remembering Donald Byrne"
- 출처 ↗ Dan Heisman, "A Talk to Remember Coach Donald Byrne", Chess.com
- 출처 ↗ Book Outlet, 『My 60 Memorable Games』 Batsford 2009년판 판매 페이지
- 출처 ↗ ChessBase, "The game that shook the world" (2020)
- 출처 ↗ ChessBase, "60 years ago: 14-year old Bobby Fischer wins US Championship" (2018)
- 출처 ↗ Chessgames.com, Hans Kmoch 인물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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