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돌이 푸』 100년 — '푸'는 코웃음 소리였습니다
Woody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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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0월 14일 (수)
『곰돌이 푸』 100년 — '푸'는 코웃음 소리였습니다
불러도 안 오면 코웃음 친 척하면 되는 이름. 아이가 백조에게 붙였고, 곰 인형이 물려받았습니다
세 줄 요약
- 오늘은 『곰돌이 푸』가 영국에서 처음 나온 지 꼭 100년 되는 날입니다.
- 영어로 "푸!"는 "흥, 됐어" 하고 코웃음 칠 때 내는 소리입니다. 작가의 아들은 이 소리로 백조를 불렀습니다.
- 똥을 뜻하는 'poo'와는 다른 말입니다. 그 뜻은 책이 나오고 한 세대쯤 지나서야 생겼습니다.
꼭 100년 전인 1926년 10월 14일, 런던 출판사 메수엔이 동화책 한 권을 냈습니다. 제목은 『위니 더 푸(Winnie-the-Pooh)』, 우리에게는 『곰돌이 푸』로 익숙한 책입니다. 영국 작가 앨런 알렉산더 밀른이 외아들 크리스토퍼 로빈과 아이의 곰 인형을 주인공 삼아 썼습니다. 그해가 가기 전, 두 달 반 동안 15만 부가 팔렸습니다.
'푸'라는 이름은 들으면 그냥 귀엽습니다. 입술을 동그랗게 모으고 바람을 내보내면 나는 소리입니다. 뜻을 따져 볼 생각이 안 드는 게 당연합니다. 우리말로 옮기면서 앞에 '곰돌이'까지 붙었으니 더 그렇습니다.
그런데 영어를 쓰는 사람들 귀에 "푸!"는 뜻이 있는 소리였습니다. 남의 말을 훅 불어 날려 버리듯 "흥, 됐어" 하고 코웃음 칠 때 내는 소리입니다. 우리말로 치면 "피, 그게 뭐라고" 할 때의 '피'쯤 됩니다. 손꼽히게 사랑받는 곰 이름의 절반이 코웃음인 셈입니다.
이 이름에는 누구나 한 번쯤 해 본 손짓이 들어 있습니다. 길 건너 아는 얼굴을 보고 손을 흔들었는데 상대가 못 보고 지나갈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들었던 손을 슬쩍 머리로 가져가 머리카락을 넘깁니다. 처음부터 손을 흔든 적이 없었던 것처럼요.
'위니'는 캐나다 도시 이름을 딴 암곰이었습니다
이름의 앞쪽 절반, '위니'에 얽힌 이야기는 꽤 알려져 있습니다. 1914년 8월 24일, 캐나다군 수의사 해리 콜번 중위는 기차를 타고 있었습니다. 1차 세계대전에 나가기 전 퀘벡의 훈련소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기차가 온타리오주 화이트리버 역에 잠시 섰을 때, 플랫폼에서 사냥꾼 하나가 어미 잃은 새끼 흑곰을 팔고 있었습니다. 콜번은 20달러를 내고 곰을 샀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살던 도시 위니펙의 이름을 붙였습니다. 줄여서 위니, 암컷이었습니다.
위니는 부대 마스코트가 되어 영국까지 따라갔습니다. 콜번은 프랑스 전선으로 떠나기 전인 1914년 12월 9일 위니를 런던동물원에 맡겼습니다. 전쟁이 끝나자 아예 동물원에 기증했습니다. 위니는 사람이 쓰다듬고 같이 놀 수 있을 만큼 순했습니다. 밀른의 아들 크리스토퍼 로빈은 사육장 안까지 들어가 위니와 어울렸습니다.
그 무렵 아이에게는 이미 곰 인형이 하나 있었습니다. 1921년 첫돌에 어머니가 런던 해러즈 백화점에서 사 준 인형으로, 원래 이름은 에드워드였습니다. 동물원의 위니를 좋아하게 되자 아이는 인형 이름을 위니로 바꿔 주었습니다. 그래서 이야기 속 곰은 수컷인데도 여자 이름을 달고 있습니다. 밀른은 독자가 "남자 아니었어?" 하고 물을 줄 알고, 책 첫 장에 그 질문을 미리 적어 넣었습니다.
이름 이야기는 여기서 끝난다고 보면 깔끔합니다. 100주년을 맞은 이번 달에도 미국 공영 라디오 NPR은 진짜 곰 위니의 사연을 다뤘습니다. 그런데 '위니'는 이름의 앞쪽 절반일 뿐입니다.
'푸'는 백조의 이름이었습니다
뒤쪽 절반 '푸'는 곰과 상관없는 데서 왔습니다. 밀른은 『곰돌이 푸』보다 2년 앞선 1924년, 아들을 위한 동시집 『우리가 아주 어렸을 때(When We Were Very Young)』를 냈습니다. 이 책 서문에 백조가 한 마리 나옵니다. 크리스토퍼 로빈은 아침마다 이 백조에게 먹이를 주었고, 백조를 '푸'라고 불렀습니다.
밀른은 이게 백조한테 딱 맞는 이름이라고 적었습니다. 이유도 달았습니다. 백조는 원래 불러도 잘 안 옵니다. 그럴 땐 시치미를 떼면 된다는 겁니다. 이름을 부른 게 아니라, 백조쯤 별로 아쉽지 않아서 "푸!" 하고 코웃음을 쳤을 뿐이라고요.
생각해 보면 꽤 영리한 이름입니다. 누구를 부를 때는 늘 조금 조마조마합니다. 불렀는데 안 오면 부른 사람만 머쓱해지니까요. 그런데 '푸'라고 부르면 그럴 일이 없습니다. 백조가 오면 이름을 부른 것이고, 안 오면 코웃음을 친 것입니다. 길 건너편으로 흔들던 손을 머리로 가져가는 것과 똑같습니다.
2년 뒤 『곰돌이 푸』 서문에서 밀른은 이 백조를 다시 꺼냈습니다. 헤어질 때 이름만은 챙겨 왔다고, 백조에게는 이제 그 이름이 필요 없을 것 같았다고 적었습니다. 그러다 곰 인형 에드워드가 자기만의 멋진 이름을 갖고 싶어 하자, 아이는 망설이지도 않고 '위니 더 푸'라고 지어 주었습니다. 동물원 곰과 백조가 이렇게 한 이름 안에 들어갔습니다. 가운데 '더(the)'는 이름에 별칭을 붙일 때도 쓰는 말입니다. '알렉산더 대왕'을 영어로 Alexander the Great라고 할 때의 그 the입니다.
이 코웃음은 『햄릿』에 처음 나옵니다
그렇다면 "푸!"는 언제부터 코웃음이었을까요. 옥스퍼드 영어사전은 영어 낱말이 처음 쓰인 때를 하나하나 기록하는 사전입니다. 이 사전은 '푸'를 무언가를 훅 불어 날려 버리는 소리라고 풀이합니다. 영어 기록에서 'pooh'라는 낱말이 처음 보이는 곳은 1600년 무렵 셰익스피어가 쓴 비극 『햄릿』입니다.
왕의 신하 폴로니어스가 딸 오필리아를 다그치는 장면입니다. 햄릿 왕자가 요즘 자꾸 마음을 표현한다고 딸이 털어놓자, 아버지는 "애정이라고? 푸!" 하고 받아칩니다. 철없는 소리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딸의 말을 입김 한 번에 날려 버렸습니다. 이 대목은 판본에 따라 'pooh'로도 'puh'로도 적혀 있지만, 소리는 같습니다.
200여 년 뒤인 1820년대에는 이 소리를 두 번 겹친 동사 'pooh-pooh(푸푸)'가 생겼습니다. 남의 말을 "푸, 푸" 하며 가볍게 무시한다는 뜻인데, 지금도 영어 신문에 자주 나오는 말입니다. 1860년대 초에는 옥스퍼드대 언어학자 막스 뮐러가 이 말로 학설 하나에 이름을 붙였습니다. 그는 사람의 첫 말이 "아야" 같은 감탄사에서 나왔다는 주장을 'pooh-pooh 이론'이라고 불렀습니다. 뮐러 자신은 이 학설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로부터 60여 년 뒤 크리스토퍼 로빈이 백조 앞에서 고른 "푸!"는, 영국 사람들이 300년 넘게 써 온 '됐어'였습니다.
'똥'이라는 뜻은 한 세대 뒤에 생겼습니다
영어권 독자라면 다른 것을 먼저 떠올릴 만합니다. 영어 아이들 말로 'poo'는 똥입니다. 미국 잡학 매체 멘탈 플로스는 "왜 하필 푸냐"는 질문을 따로 다룬 적이 있습니다. 아이도 어른도 '푸' 하면 다른 것부터 떠올리는데 어떻게 이 이름이 굳었느냐는 질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뜻은 밀른이 책을 낼 때 아직 없었습니다. 미국 사전 메리엄웹스터는 똥이라는 뜻의 'poo'가 1960년 무렵 처음 쓰였다고 봅니다. 온라인 어원사전 Etymonline은 1950년대로 잡습니다. 1926년의 영국 아이들은 '푸'에서 코웃음을 들었습니다. 똥을 떠올리며 킥킥거린 건 한 세대 뒤의 아이들입니다.
바다를 건넌 '푸'
이 코웃음은 바다를 건너면서 대부분 사라졌습니다. 러시아 언어학자 드미트리 시치나바는 『곰돌이 푸』 번역본을 모으는 수집가입니다. 그는 이 책이 적어도 60개 언어로 옮겨졌다고 봅니다. 번역가들은 이름부터 고민해야 했습니다. '푸'의 웃음은 영어를 아는 사람에게만 들리기 때문입니다.
러시아가 좋은 예입니다. 1939년 어린이 잡지 『무르질카』에 처음 실릴 때 이름은 '곰 위니-푸'였습니다. 소리만 옮긴 이름입니다. 그런데 1960년 번역가 보리스 자호데르가 단행본을 내면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새 이름은 '비니-푸흐'입니다. 지금 러시아 아이들도 이 이름으로 압니다. '푸흐(пух)'는 러시아어로 새의 보드라운 솜털입니다.
폴란드도 비슷했습니다. 1938년 번역가 이레나 투빔이 지은 이름 '쿠부시 푸하테크'에도 솜털이라는 뜻의 '푸흐(puch)'가 들어 있습니다. 영어의 코웃음이 슬라브 말로 건너가서는 결과적으로 솜털이 된 셈입니다.
동아시아는 '위니'와 '푸' 가운데 하나만 남겼습니다. 1940년 일본에서 처음 이 책을 옮긴 이시이 모모코는 '푸'를 남겼습니다. 중국어권은 '위니'를 남겼습니다. 널리 쓰는 이름 샤오슝 웨이니(小熊維尼)는 '아기곰 위니'라는 뜻입니다. 한국의 '곰돌이 푸'는 일본과 같은 쪽입니다. 우리는 그 코웃음을 뜻은 빼고 소리만 받아, 귀여운 이름으로 불러 왔습니다.
크리스토퍼 로빈은 오지 않을지도 모르는 백조에게, 안 와도 괜찮은 이름을 붙였습니다. 그 이름을 물려받은 곰은 100년 동안 세계 아이들이 부를 때마다 왔습니다. 머리를 넘기는 척할 일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손은 계속 흔들면 됐습니다.
출처·참고
- 출처 ↗ A. A. Milne, 『When We Were Very Young』(1924) 서문 — Project Gutenberg
- 출처 ↗ A. A. Milne, 『Winnie-the-Pooh』 서문·1장 — Wikisource
- 출처 ↗ Winnie-the-Pooh (book) — Wikipedia
- 출처 ↗ Winnie-the-Pooh — The Canadian Encyclopedia
- 출처 ↗ Winnie the Bear — ZSL(런던동물학회) 기록보관소
- 출처 ↗ Winnie-the-Pooh turns 100, but what happened to the real bear cub named Winnie? — NPR Here & Now(TPR), 2026.10.6
- 출처 ↗ Harrods Bears Through the Years — Harrods
- 출처 ↗ 『Hamlet』 1막 3장 — Folger Shakespeare Library
- 출처 ↗ pooh, pooh-pooh — Online Etymology Dictionary
- 출처 ↗ pooh-pooh — Merriam-Webster
- 출처 ↗ poo — Merriam-Webster
- 출처 ↗ poo — Online Etymology Dictionary
- 출처 ↗ Bow-wow theory — Wikipedia
- 출처 ↗ Why Is Winnie the Pooh Called a Pooh? — Mental Floss
- 출처 ↗ 드미트리 시치나바, 「Винни-Пух от Западного до Восточного полюса」 — Gorky, 2016
- 출처 ↗ Adaptation, not translation: a 1950s manifesto for translating for children — 아담 미츠키에비치 대학 저장소
- 출처 ↗ пух — 러시아어 위키낱말사전
- 출처 ↗ 「クマのプーさん」展 — 美術手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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