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에서 사라진 하드디스크 — 올해는 공장 물량이 다 팔렸습니다 — Woody Magazine, 2026년 9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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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9월 15일 (화)
기업 이야기

노트북에서 사라진 하드디스크 — 올해는 공장 물량이 다 팔렸습니다

하드디스크는 70년 전 처음 나왔을 때도 가장 빠른 저장장치가 아니었습니다. 늘 가운데 칸을 맡았고, 올해 그 칸이 동났습니다.

편집장 Woody
세 줄 요약
  1. 노트북에서 하드디스크는 거의 사라졌습니다. 그런데 웨스턴디지털은 올해 1월, 2026년에 만들 하드디스크가 사실상 다 팔렸다고 밝혔습니다.
  2. 사 간 쪽은 AI 데이터센터를 짓는 대형 클라우드 기업입니다. 빠른 SSD를 두고 굳이 하드디스크를 사는 이유는 70년 전 첫 하드디스크의 설계에 이미 들어 있습니다.
  3. 하드디스크가 SSD보다 낫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하드디스크는 처음부터 가장 빠른 저장장치였던 적이 없습니다.

요즘 우리가 노트북을 고르면서 하드디스크를 따지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사양표의 저장장치 칸에는 SSD라고 적혀 있고, 하드디스크는 옛 컴퓨터를 정리할 때나 떠올리는 부품이 됐습니다. 금속 원판이 빙글빙글 돌고, 그 위를 읽고 쓰는 헤드가 오가는 기계입니다. 반도체 시대에 밀려날 만합니다.

그런데 올해 1월 29일 실적 발표에서 하드디스크 제조사 웨스턴디지털의 어빙 탄 최고경영자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2026년 물량은 사실상 다 팔렸다. 상위 고객 일곱 곳에서 올해 치 확정 주문을 받았고, 그중 두 곳과는 2027년까지, 한 곳과는 2028년까지 장기 계약을 맺었다고 했습니다.

한 해가 시작한 지 한 달도 안 돼 그해 공장 물량의 주인이 정해졌습니다.

사 간 곳은 데이터센터입니다

같은 자리에서 웨스턴디지털은 지난 분기 매출을 30억 달러로 발표했습니다. 그중 89%가 클라우드 고객에게서 나왔고, 개인 소비자용 소매 제품은 5%였습니다. 100달러를 벌면 개인이 사 가는 제품에서 나오는 돈은 5달러입니다.

경쟁사 씨게이트도 사정이 같습니다. 7월 28일 실적 발표에서는 출하한 저장 용량의 약 90%가 데이터센터로 갔다고 밝혔습니다. 데이터센터용 대용량 하드디스크는 대부분 2028년까지 이어지는 계약에 묶여 있다고 했습니다. 지금 하드디스크를 만드는 회사는 씨게이트와 웨스턴디지털, 도시바 세 곳뿐입니다.

하드디스크는 노트북에서 빠졌을 뿐입니다. 우리 눈에 안 보이는 데이터센터에서는 오히려 더 바빠졌습니다.

이쯤에서 고개를 갸웃할 만합니다. AI는 빠른 반도체를 먹고 사는 기술인데, 왜 굳이 느린 하드디스크를 쓸어 가느냐. 맞는 질문입니다. 답은 집에서 책을 정리하는 방식에 들어 있습니다.

책이 늘면 우리는 대개 셋으로 나눕니다. 지금 읽는 책은 책상 위에, 가끔 펴는 책은 책장에, 거의 안 보는 책은 상자에 담아 창고에 둡니다. 책상은 손만 뻗으면 닿지만 좁습니다. 창고는 넓지만, 한 권 꺼내려면 상자를 열고 위에 쌓인 책부터 들어내야 합니다. 책장은 그 사이입니다. 한 걸음이면 닿고, 꽤 많이 꽂힙니다.

70년 전 이맘때 나온 첫 하드디스크가 바로 이 책장이었습니다.

1956년 9월, 원판 50장짜리 기계

1956년 9월 중순, IBM이 305 RAMAC이라는 회계용 컴퓨터를 발표했습니다. 캘리포니아 새너제이 연구소에서 레이놀드 존슨이 이끈 팀이 만든 기계입니다. 여기 딸린 모델 350 저장장치가 세계 첫 상업용 하드디스크입니다.

지름 약 61센티미터짜리 금속 원판 50장을 한 축에 꽂아 1분에 1,200번 돌렸습니다. 원판 한 장에 기록 트랙이 100개씩 있었고, 모두 합쳐 문자 500만 개가 들어갔습니다. IBM 설명서는 이 양을 천공카드 6만 2,500장 분량이라고 적습니다. 요즘 단위로는 4메가바이트 안팎, 휴대전화 사진 한두 장 크기입니다.

저장장치 한 대의 무게가 1톤을 넘었습니다. IBM은 이 컴퓨터를 월 3,200달러에 빌려줬습니다. 지금 돈으로 치면 매달 3만 5천 달러가 넘습니다. 시험 기계는 그해 이미 몇몇 고객사에 들어갔고, 정식 인도는 이듬해 중반부터였습니다.

이 기계가 어디에 쓰려고 만든 것인지는 이름에 적혀 있습니다. RAMAC은 '회계와 관리를 위한 임의 접근 방식'의 머리글자입니다. 임의 접근은 앞에서부터 차례로 읽지 않고, 원하는 기록으로 곧장 간다는 뜻입니다.

IBM은 장부 담당 직원을 떠올렸습니다

IBM이 1958년에 낸 설명서는 이 기계가 왜 필요한지를 사무실 풍경으로 풀어 씁니다. 기계가 없던 시절 장부 담당 직원은 거래가 들어올 때마다 해당 장부를 펼쳐 바로 적었습니다. 원자재를 사면 현금 장부와 원자재 장부를 펴고, 제품을 내보내면 재고 장부와 외상 장부를 폈습니다. 느리고 실수도 났지만, 장부는 늘 최신이었습니다.

그런데 회계를 기계로 돌리면서 이 장점이 사라졌습니다. 기록이 잔뜩 쌓인 파일에서 한 건만 찾아 고치기가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천공카드는 사람이 손으로 찾아 끼워야 했습니다. 설명서에 나오는 재고·청구 업무에서는 카드를 서로 다른 기계 일곱 대에 돌려야 했습니다. 자기 테이프는 기록이 한 줄로 감겨 있어서, 원하는 자리까지 차례로 읽어 가야 했습니다. 창고 상자의 처지입니다.

RAMAC은 100자짜리 기록 5만 건을 품고도, 그 사이를 훑지 않고 원하는 한 건으로 곧장 갔습니다. 설명서는 이런 식이면 여덟 시간에 거래 1만 건쯤을 처리한다고 적었습니다. 3초에 한 건꼴입니다. 기계가 장부 담당 직원의 방식을 되찾은 셈입니다.

같은 기계 안에 더 빠른 칸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RAMAC 안에는 원판보다 빠른 저장장치가 따로 있었습니다. 1분에 6,000번 도는 자기 드럼입니다. 드럼은 100분의 1초에 한 바퀴를 돌았고, 프로그램과 지금 처리 중인 기록이 여기에 올라갔습니다. 데이터를 옮길 때마다 중간에서 받아 넘기는 자기 코어 장치도 있었는데, 문자 100개만 담았습니다.

드럼에는 문자 3,200개 안팎이 들어갔습니다. 원판은 드럼보다 1,500배 넘게 담았습니다. 대신 원판에서 기록 하나를 찾아가는 데는 평균 0.6초쯤 걸렸습니다. 드럼이 60바퀴를 도는 시간입니다.

1,500배 305 RAMAC 안에서 원판이 드럼보다 더 담은 배수. 그 대신 기록 하나를 찾는 데는 드럼이 60바퀴 도는 만큼 걸렸습니다.

책 정리로 옮기면 이렇습니다. 코어와 드럼은 책상 위, 원판은 책장, 천공카드와 테이프는 창고 상자였습니다. 첫 하드디스크의 자리는 태어난 날부터 책장이었습니다.

책상보다 느리고, 상자보다 빨리 찾는 칸. 하드디스크는 처음부터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칸은 지금도 셋입니다

70년이 지나 책상 자리에는 반도체가 앉았습니다. SSD는 하드디스크보다 훨씬 빨리 읽고 씁니다. 노트북은 책상만으로 충분한 기계가 됐습니다.

데이터센터는 사정이 다릅니다. 탄 최고경영자는 1월 실적 발표에서 대형 클라우드 기업들을 두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들은 데이터를 SSD와 하드디스크, 테이프 사이로 옮겨 가며 비용을 관리하는 데 능하다. 그는 AI가 모델을 학습시키는 단계를 지나 실제로 답을 내는 단계로 넘어가면서 새 데이터가 더 빨리 불어난다고 봤습니다. 그 상당 부분은 하드디스크에 담길 거라고 했습니다.

씨게이트의 데이브 모슬리 최고경영자도 7월에 비슷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클라우드 기업들은 메모리와 SSD, 대용량 하드디스크를 층층이 엮어 성능과 비용을 맞춰 왔고, 이 방식이 이제 일반 기업으로 넓어지고 있다고 했습니다. 신생 AI 클라우드와 모델 개발사들도 도입을 시작했다고 덧붙였습니다.

공장을 더 지으면 될 일 아니냐는 생각이 먼저 듭니다. 모슬리가 내놓은 답은 달랐습니다. 하드디스크를 더 많이 찍어 내기보다 원판 한 장에 더 많이 담는 쪽이, 저장 용량을 키우는 가장 빠르고 돈이 덜 드는 길이라고 했습니다. 생산 대수는 거의 그대로 두겠다는 계획입니다.

SSD 값이 내려가면 책장마저 반도체로 바뀌지 않겠느냐고 되물을 만도 합니다. 언젠가는 그럴지도 모릅니다. 다만 올해는 거꾸로 갔습니다. SSD에는 낸드 플래시라는 반도체가 들어갑니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3월 말, 2분기 낸드 계약 가격이 직전 분기보다 70~75% 오를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8월 집계에서는 공급사들이 계약 협상에서 값을 크게 올린 결과, 상위 5개사의 낸드 매출이 2분기에 직전 분기보다 77% 늘었다고 적었습니다. 책상이 넓어지기는커녕 더 비싸졌습니다.

책상을 넓히는 값이 뛰면, 매일 새로 들어오는 책은 더 많이 책장으로 갑니다.

책장을 못 구한 도서관

이 칸이 모자라면 누가 먼저 곤란해질까요. 인터넷 아카이브를 보면 압니다. 옛 웹페이지를 모아 두는 미국의 비영리 디지털 도서관입니다. 이곳은 약 210페타바이트를 보관하고, 매일 100테라바이트씩 새 자료를 들입니다. 30테라바이트짜리 하드디스크로 치면 날마다 서너 개씩 채우는 셈입니다.

창립자 브루스터 케일은 5월 초 인터넷 매체 404 미디어에 사정을 털어놨습니다. 쓰고 싶은 28~30테라바이트 하드디스크는 구할 수가 없거나, 있어도 아주 비싸다는 겁니다. 그 탓에 시간과 돈이 실제로 새어 나간다고 했습니다. 위키백과를 운영하는 위키미디어 재단도 같은 매체에, 메모리와 하드디스크 구매는 물론 서버 납기까지 영향을 받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인터넷의 옛 기록을 모아 두는 도서관이, 책장을 사러 갔다가 빈손으로 돌아오고 있습니다.

70년 전 IBM이 내놓은 것은 가장 빠른 기계가 아니었습니다. 테이프보다 빨리 찾고 드럼보다 많이 담는 기계였습니다. 올해 1월 클라우드 기업들이 한 해 치를 통째로 잡아 둔 것도 바로 그 칸입니다. 책을 전부 책상 위에 올려 둘 수 있는 회사는 없습니다. 책장을 버린 건 노트북뿐이었습니다.

출처 · 참고
  • 출처 ↗ IBM, 『Reference Manual: 305 RAMAC』(A26-3502-0), 1958 — 장부 담당 직원 비유, 기록 5만 건, 카드 6만 2,500장, 드럼 분당 6,000회전, 코어 100자, 8시간 1만 건
  • 출처 ↗ Computer History Museum, "1956: First commercial hard disk drive shipped" — 첫 출하, 무게, 레이놀드 존슨 팀
  • 출처 ↗ Computer History Museum, "Memory & Storage" 연표
  • 출처 ↗ ASME, "IBM 350 RAMAC Disk File" 기계공학 유산 지정문
  • 출처 ↗ StorageNewsletter, "History: First HDD 55 Years Ago From IBM at 100" (2011) — 1956년 9월 IBM 보도자료 인용(월 3,200달러, 인도 시기)
  • 출처 ↗ Computerworld, "Computer History Museum to highlight storage" (2010) — 드럼, 평균 탐색 0.6초, 임대료
  • 출처 ↗ "IBM 305 RAMAC", Wikipedia — 1957년 운용 설명서 기준 드럼 용량, 임대료의 2025년 환산가
  • 출처 ↗ Western Digital, "Western Digital Reports Fiscal Second Quarter 2026 Financial Results" (2026.1.29)
  • 출처 ↗ Western Digital, 2026 회계연도 2분기 10-Q 「Organization and Basis of Presentation」 — 소비자 부문 정의, 미국 증권거래위원회
  • 출처 ↗ Western Digital 2026 회계연도 2분기 실적 발표 녹취 — The Motley Fool
  • 출처 ↗ Seagate, "Seagate Technology Reports Fiscal Fourth Quarter and Fiscal Year 2026 Financial Results" (2026.7.28)
  • 출처 ↗ Seagate 2026 회계연도 4분기 실적 발표 녹취 전문 — Investing.com (2026.7.28)
  • 출처 ↗ Zacks, "Seagate Technology Q4 Earnings Call Highlights AI Storage Demand" (2026.7.29)
  • 출처 ↗ heise online, "WD and Seagate confirm: Hard drives for 2026 sold out" (2026.2.16)
  • 출처 ↗ Gillware, "The 2026 Hard Drive Supply Chain, Mapped" (2026.7)
  • 출처 ↗ TrendForce, "AI Server Demand to Drive Memory Contract Price Increases in 2Q26 as CSPs Secure Supply via Long-Term Agreements" (2026.3.31)
  • 출처 ↗ TrendForce, "Combined Revenue of Top Five NAND Flash Brands Rises 77% QoQ in 2Q26" (2026.8.18)
  • 출처 ↗ Tom's Hardware, 인터넷 아카이브·위키미디어 하드디스크 수급 기사 (2026.5.8)
  • 출처 ↗ Network World, "Hard drive shortages are putting the squeeze on enterprise storage buyers" (2026.5.13)
  • 404 Media, 브루스터 케일·위키미디어 재단 인터뷰 기사, 2026년 5월
Woody Magazine은 편집장 Woody가 기획·편집·발행합니다. 기사 제작 과정에 Claude AI를 도구로 활용하며, 편집 판단과 최종 책임은 편집부에 있습니다. 독자의 교차 검증을 권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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