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년 전 오늘 아이들이 라스코 동굴을 찾았습니다 — 지금은 아무도 못 들어갑니다 — Woody Magazine, 2026년 9월 12일
86년 전 오늘 아이들이 라스코 동굴을 찾았습니다 — 지금은 아무도 못 들어갑니다
관광객이 보는 라스코는 언덕 아래 건물 안의 복제품입니다. 그 건물이 올해로 문을 연 지 10년, 원본 동굴은 63년째 닫혀 있습니다.
- 1940년 9월 12일 프랑스 몽티냐크의 소년 넷이 찾아낸 동굴은 1948년 문을 열고 15년 만에 다시 닫혔습니다.
- 동굴을 망친 것은 도둑도 낙서도 아니었습니다. 그림을 보러 온 100만 명의 숨과 신발, 그리고 그들을 위해 벌인 공사였습니다.
- 지금 사람들이 줄 서서 보는 라스코 IV는 가짜가 아니라, 사람을 그림에서 떼어놓기로 한 결정이 만든 유리창입니다.
오늘 아침에도 프랑스 도르도뉴 지방 몽티냐크 언덕 아래 매표소 앞에 줄이 섭니다. 이 사람들은 라스코 동굴을 보러 왔습니다. 그리고 오늘 그 동굴에 들어가는 사람은 한 명도 없습니다. 86년 전 오늘 소년 넷이 찾아낸 동굴은 1963년부터 닫혀 있고, 관광객이 보는 것은 언덕 발치에 새로 지은 건물 안의 복제품입니다. 그 건물, 라스코 IV가 올해로 문을 연 지 10년이 됐습니다.
복제품이라니 김이 샐 만합니다. 프랑스 시골까지 가서 모형을 보고 온다는 말이니까요. 그런데 이 복제품은 관광객을 달래려고 만든 물건이 아닙니다. 프랑스가 60년 넘게 지키고 있는 결정 하나에서 나온 물건입니다. 사람을 그림에서 떼어놓는 결정입니다. 그 결정이 왜 나왔는지를 따라가면, 복제품 앞에 선 줄이 조금 다르게 보입니다.
1940년 9월 12일, 언덕 위의 구멍
1940년 9월 12일, 몽티냐크 마을의 소년 넷이 마을 뒤 언덕에서 구멍 하나를 찾았습니다. 열일곱 살 견습 정비공 마르셀 라비다, 열여섯 살 조르주 아니엘, 열다섯 살 자크 마르살, 그리고 파리 근교에서 피난 와 있던 열세 살 시몽 코엔카스입니다. 라비다가 먼저 내려갔습니다. 벽에 그림이 있었습니다. 말과 들소와 사슴 같은 동물과 기호가 600점 넘게 그려져 있었고, 새긴 그림은 1,500점 가까이 됐습니다. 2만 년 가까이 된 그림이었습니다.
동굴은 그해 안에 역사기념물이 됐고, 전쟁이 끝난 뒤인 1948년 일반에 문을 열었습니다. 라비다와 마르살은 안내원이 됐습니다. 자기가 찾은 동굴을 남에게 보여주는 일이 두 사람의 직업이 됐습니다.
하루 1,800명이 들어간 15년
동굴은 15년 동안 열려 있었습니다. 그 사이 100만 명 안팎이 들어갔고, 1960년대 초에는 하루 1,800명까지 들어갔습니다. 열두 개 방이 이어진 동굴 안에 하루 종일 사람이 서 있었다는 뜻입니다.
사람은 서 있기만 해도 동굴을 바꿉니다. 숨을 내쉬면 이산화탄소와 습기가 나오고, 몸에서는 열이 나옵니다. 신발에는 밖에서 묻은 꽃가루와 곰팡이 포자가 붙어 있습니다. 관람객이 볼 수 있게 벽에 단 전등은 빛과 열을 냈습니다. 관람객을 들이려고 벌인 공사도 있었습니다. 1947년과 1948년에 길을 내고 계단을 놓고 바닥을 낮췄고, 1957년과 1958년에는 공조 설비를 넣었습니다. 이 공사가 바닥을 파헤치면서 바깥의 미생물을 안으로 들였다는 것은 뒤에 밝혀졌습니다. 2만 년 동안 어둡고 서늘했던 방이 갑자기 밝고 붐비는 방이 됐습니다.
1958년과 1959년, 안내원이던 라비다와 마르살이 벽에 초록색 얼룩이 번지는 것을 알아챘습니다. 전등 주변에서 조류가 자라고 있었습니다. 관리 쪽에서는 이것을 '녹색병'이라고 불렀습니다. 그 뒤로 방해석 결정이 벽 위에 하얗게 앉는 '흰색병'이 따라왔습니다. 사람 숨에 든 이산화탄소가 동굴 물에 녹아 석회를 녹였다가 다시 굳힌 것입니다. 녹색병은 나중에 없앨 수 있었습니다. 흰색병은 더 번지지 않게 막았을 뿐 지우지는 못했습니다.
1963년 4월, 문화부 장관 앙드레 말로가 동굴을 닫았습니다. 장관이 꾸린 위원회는 원인을 단체 관람의 규모, 사람이 안에 머문 시간, 신발에 묻어 들어온 포자로 짚었습니다. 누가 벽을 긁은 것이 아닙니다. 그림을 보러 온 사람들이 그림 앞에 서 있었을 뿐입니다.
중환자실 면회를 떠올리면 이 결정이 이해가 됩니다. 가장 보고 싶은 사람이 안에 누워 있는데, 내 숨과 내 손에 묻은 것이 그 사람에게는 위험합니다. 그래서 가족은 유리 너머에서 봅니다. 프랑스는 1963년에 동굴 앞에 그 유리를 세웠습니다.
약을 뿌린 뒤에 생긴 일
닫았다고 끝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1969년에 과학위원회는 사람 출입을 하루 5명, 35분, 주 5일로 묶었습니다(Bastian 외, 2015). 1972년에는 동굴을 갖고 있던 로슈푸코 가문이 국가에 동굴을 팔았습니다. 복제권은 30년 동안 가문이 갖는 조건이었습니다. 1979년에는 베제르 계곡의 다른 유적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됐습니다. 1973년 복제품 공사 때 동굴 공기 속 미생물이 잠깐 늘었지만, 그 뒤 40년 가까이 큰 병 없이 지났습니다.
2001년에 다시 문제가 생겼습니다. 천장과 벽과 바닥에 흰 곰팡이가 퍼졌습니다. 푸사리움이라는 곰팡이였습니다. 관리진은 곰팡이를 잡는 염화벤잘코늄을 뿌리고 항생제를 썼습니다. 급한 불은 잡았습니다. 그런데 그해 말부터 검은 얼룩이 나타났고, 2006년부터는 걷잡을 수 없이 번졌습니다. 약을 견딘 미생물만 남아 자리를 차지한 것입니다. 이 검은 얼룩에서 나온 곰팡이 하나는 학계에 처음 보고된 종이었고, 이름을 동굴에서 따왔습니다. 오크로코니스 라스코엔시스(Ochroconis lascauxensis)입니다.
약을 뿌린 선택을 탓하기는 쉽습니다. 그럴 만합니다. 항생제를 오래 쓰면 내성균이 남는다는 것을 우리는 병원에서 배웠습니다. 그런데 2001년의 관리진 앞에는 벽 전체에 번지는 흰 곰팡이가 있었고, 손 놓고 볼 수는 없었습니다. 그 뒤로 프랑스는 약을 아예 끊지는 못했습니다. 대신 동굴 안 미생물이 서로 어떻게 사는지를 통째로 들여다보는 쪽으로 연구를 돌렸습니다. 국가가 이 동굴 하나에 해마다 60만 유로를 씁니다. 우리 돈으로 10억 원 안팎, 사람이 들어가지 않는 방을 지키는 데 드는 돈입니다.
원본에서 200미터, 그다음은 언덕 아래
보고 싶은 마음은 남아 있었습니다. 1983년, 원본에서 200미터 떨어진 같은 언덕 위에 라스코 II가 문을 열었습니다. 원본의 앞쪽 두 방, 황소의 방과 축 회랑을 이중 콘크리트 껍질 안에 다시 만들고 그림을 손으로 옮겨 그린 복제품입니다. 1973년에 가문 회사가 짓기 시작했다가 돈이 떨어져 멈췄고, 도르도뉴 도가 넘겨받아 마무리했습니다. 사람들이 왔습니다. 한창때 한 해 25만 명이 언덕에 올라왔습니다.
그런데 복제품을 원본 옆에 두자 새 문제가 생겼습니다. 복제품에 온 사람과 차가 원본이 들어 있는 언덕 위에 올라온다는 문제입니다. 동굴은 언덕 안에 있고, 언덕 위에 떨어진 것은 물과 함께 아래로 스밉니다. 프랑스 정부는 언덕 자체를 지키기로 했습니다. 주차장을 언덕 밖으로 옮기고, 2014년부터는 동굴로 가는 길에 차를 못 들이게 했습니다. 새 복제품은 처음부터 언덕 아래에 짓기로 했습니다.
라스코 IV는 그렇게 해서 2016년 12월 15일에 문을 열었습니다. 언덕 발치에 반쯤 땅에 묻은 건물이고, 이번에는 동굴의 거의 전부를 옮겨 그렸습니다. 벽면을 레이저로 수만 번 훑어 본을 뜨고, 서른 명 넘는 사람이 그 위에 손으로 그렸습니다. 유럽연합 집계로 5,700만 유로가 들었고, 집계에 따라 6,600만 유로까지도 잡힙니다. 10년 동안 350만 명 넘게 다녀갔고, 요즘은 한 해 36만~37만 명이 옵니다. 외국인이 다섯 명 중 한 명입니다.
여기까지 오면 진짜냐 가짜냐는 별 상관이 없어집니다. 라스코 IV를 만든 사람들이 스스로 정한 순서가 있습니다. 원본은 아무도 못 들어가게 두고, 원본이 든 언덕에는 차를 못 올리고, 사람은 언덕 아래 유리 앞에 세운다는 순서입니다. 우리가 보는 복제품은 그 순서의 맨 끝에 놓인 물건입니다.
복제품은 해마다 문을 닫습니다
라스코 IV는 해마다 1월이면 문을 닫습니다. 2025년에는 1월 5일부터 다섯 주였습니다. 기술자 열 명쯤이 8,000제곱미터가 넘는 건물을 손봅니다. 전등과 화재 감지기와 와이파이를 갈고, 천장 유리창을 닦고, 그림을 손보고, 복제 벽면에 붙은 껌을 뗍니다. 기술 총괄은 복제 동굴이 오히려 제일 손이 덜 가고 나머지 전부가 복잡하다고 했습니다. 복제 그림도 약합니다. 그래서 해마다 손을 봅니다. 해마다 37만 명이 지나가는 방은 2만 년 된 방이 아니어도 닳습니다.
이 다섯 주가 이 이야기의 결말입니다. 껌이 붙는 쪽은 복제품입니다. 복제품은 원본을 보여주는 물건이기 전에, 원본 대신 닳아 주는 물건입니다. 중환자실 유리는 가족이 손을 대도 되는 유일한 면입니다. 지문이 묻으면 닦고, 금이 가면 갈아 끼웁니다. 안에 누운 사람은 그 사이 그대로 있습니다.
라스코를 망친 사람은 없었습니다. 보러 온 사람들이 있었을 뿐입니다. 프랑스는 그 사람들을 탓하는 대신 동굴에서 떼어냈습니다. 보고 싶은 마음은 그대로 두고, 몸만 밖에 세웠습니다.
- 출처 ↗ 프랑스 문화부 고고학 사이트 — The four discoverers
- 출처 ↗ 프랑스 문화부 고고학 사이트 — Simon Coencas (1927-2020)
- 출처 ↗ 프랑스 문화부 고고학 사이트 — A firm commitment from the state
- 출처 ↗ 프랑스 문화부 고고학 사이트 — The preservation of Lascaux hill
- 출처 ↗ Lascaux (Semitour) — History of the Lascaux cave
- 출처 ↗ Sarlat Tourisme — Lascaux II, premier fac-similé de grotte au monde
- 출처 ↗ Hominidés — Les premiers chercheurs dans la Grotte de Lascaux (B. et G. Delluc)
- 출처 ↗ European Commission — Lascaux 4 case study
- 출처 ↗ Le Journal des Entreprises — Inauguré il y a 10 ans, le site Lascaux IV refuse le surtourisme (2026.3.6)
- 출처 ↗ ICI Périgord — Lascaux IV rouvre ses portes après cinq semaines de fermeture (2025.2.7)
- 출처 ↗ Microbiome Analysis of New, Insidious Cave Wall Alterations in the Apse of Lascaux Cave (PMC, 2022)
- 출처 ↗ Rock substrate rather than black stain alterations drives microbial community structure in the passage of Lascaux Cave (Microbiome, 2018)
- 출처 ↗ Current World Archaeology — Lascaux
- Martin-Sanchez P. M. 외, "Two new species of the genus Ochroconis, O. lascauxensis and O. anomala isolated from black stains in Lascaux Cave, France", Fungal Biology 116 (2012); Bastian F., Alabouvette C., Saiz-Jimenez C., "The microbiology of Lascaux Cave", Microbiology 156 (2010); Saiz-Jimenez C. 외, "Lascaux Cave: An Example of Fragile Ecological Balance in Subterranean Environments"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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