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날 — '한글'의 '한'은 '큰'이 아니라 '대한'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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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0월 7일 (수)
첫 한글날 100년 — '한글'의 '한'은 '큰'이 아니라 '대한'이었습니다
글자는 580년 전에 반포됐고, 이름은 1910년대에 생겼습니다.
세 줄 요약
- 우리가 부르는 '한글'이라는 이름은 세종 때가 아니라 1910년대에 생겼습니다.
- '한'은 처음에 '크다'가 아니라 '대한'의 한이었고, '한문'과 헷갈리지 않으려고 뒤에 '글'을 붙였습니다.
- 누가 처음 지었는지는 학자들이 지금도 다툽니다. 그래도 왜 이 이름이 필요했는지는 기록에 비교적 또렷이 남아 있습니다.
모레 금요일은 한글날입니다. 훈민정음을 반포한 지 580돌입니다. 올해는 한글날의 첫 이름인 가갸날 기념식이 처음 열린 지 100년이 되는 해이기도 합니다.
'한글'이 무슨 뜻이냐고 물으면 많은 분이 '큰 글', '하나뿐인 글'이라고 답합니다. 우리 대부분이 학교에서 그렇게 배웠으니 믿을 만도 합니다. 그런데 이 이름을 처음 쓴 사람들이 남긴 기록을 따라가면 '한'은 다른 곳에서 왔습니다. 나라 이름에서 왔습니다. 집으로 치면 대문에 걸린 문패에서 떼어 온 글자입니다.
세종이 붙인 이름은 '훈민정음'이었습니다
세종은 1446년 이 글자를 반포하면서 훈민정음(訓民正音)이라고 불렀습니다.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라는 뜻입니다. 줄여서 정음이라고도 했지만 오래가지 않았고, 조선 500년 동안 가장 널리 쓴 이름은 언문(諺文)이었습니다. 諺(언)은 일상의 입말을 뜻하는 글자라, 언문은 입말을 적는 글이라는 뜻입니다. 한문을 참된 글이라는 뜻의 진서(眞書)로 높여 부르던 시절이라 언문은 그 아래에 놓였습니다. 다만 세종 자신도 이 말을 썼으니 처음부터 낮춤말은 아니었다는 반론도 있습니다.
1894년 갑오개혁 뒤로 사정이 바뀝니다. 정부가 이 글자를 법령의 기본 문자로 삼았습니다. 이때부터 글자는 국문(國文), 우리말은 국어(國語)라고 불렀습니다. 나라의 글, 나라의 말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 이름으로 우리말과 우리글을 부른 세월은 20년도 가지 못했습니다.
1911년 8월, '국어'는 일본어가 됐습니다
일본은 1910년 8월 29일 대한제국을 병합했습니다. 그리고 나라 이름을 '대한'에서 '조선'으로 바꿨습니다.
'대한'은 13년 전 고종이 정한 국호였습니다. 고종은 1897년 10월 신하들 앞에서 우리나라는 본래 삼한(三韓)의 땅이고 그 땅이 하나로 합쳐졌으니 국호를 '대한'이라 해도 된다고 말했습니다. 삼한을 아우른 큰 한(韓)이라는 뜻이었습니다.
병합 이듬해인 1911년 8월 23일, 일본은 식민지 교육의 틀을 정한 조선교육령을 공포했습니다. 이 교육령 아래에서 학교의 '국어' 시간은 일본어를 배우는 시간이 됐고, 우리말은 '조선어'라는 이름으로 따로 가르쳤습니다. 우리말을 부르던 이름이 이제 남의 나라 말을 가리키게 된 겁니다.
국어학자 주시경(1876~1914)이 이끌던 국어연구학회는 1908년에 문을 연 우리말 연구 모임이었습니다. 교육령이 공포되고 열하루 뒤인 9월 3일, 이 학회는 이름에서 '국어'를 지웠습니다. 새 이름은 배달말글몯음이었고, 한자로는 조선언문회(朝鮮言文會)라고 적었습니다. '배달'은 우리 겨레를, '말글'은 말과 글을, '몯음'은 모임을 뜻합니다.
두 날짜를 이어 주는 기록은 남아 있지 않습니다. 열하루라는 간격만 남아 있습니다.
증서에서 '한'이 빠졌다 돌아왔습니다
주시경은 그 전부터 '국어'를 대신할 우리말 이름을 찾고 있었습니다. 병합 직전인 1910년 6월, 그는 한 회보에 글을 실으면서 '국어'를 '한나라말', '국문'을 '한나라글'로 바꿔 적었습니다. 여기서 '한'은 대한의 한(韓)입니다. '한나라'는 곧 대한이라는 나라였습니다.
병합으로 나라의 문패는 '조선'으로 바뀌었습니다. 그 뒤 몇 해 동안 주시경과 제자들은 떼어 낸 문패에서 '한' 한 글자를 어디에 새겨 둘지 고르고 있었던 셈입니다.
고영근 서울대 명예교수가 정리한 학회 증서 기록에 그 흐름이 남아 있습니다. 1911년 4월 강습소 졸업증서에 찍은 도장에는 '한말익힘곳'이라는 글귀가 있었습니다. '한나라말'을 줄인 '한말'을 익히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같은 증서에 적은 발행 기관 이름에서는 '한'을 빼고 '말익힘곳'이라고만 썼습니다. 고 교수는 이를 일제 당국의 눈을 피하려 한 흔적으로 봅니다.
1912년 3월 증서에서는 '한말'이 아예 사라지고 '조선말'이 들어갔습니다. 기관 이름도 '조선어강습원'이었습니다.
1913년 3월 23일, 학회는 보성학교에서 임시총회를 열었습니다. 회의록에 적힌 참석자는 14명이었습니다. 이 자리에서 학회 이름을 '한글모'로 바꾸자는 안이 나왔고, 참석자들은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1912년 증서에서 빠졌던 '한'이 이 열네 사람의 회의에서 돌아왔습니다. 학자들은 이날 회의록을 '한글'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른 기록 가운데 하나로 꼽습니다.
'한문'이라고 부를 수는 없었습니다
대한의 글이라면 그냥 한자로 한문(韓文)이라고 하면 되지 않았을까요. 그럴 만한 질문입니다. 그런데 그게 안 됐습니다.
주시경의 제자 권덕규는 1933년 경성방송국 조선어 강좌 교재에서 그 사정을 설명했습니다. '한글'은 韓文(한문)을 우리말로 읽은 이름이라는 것입니다. 韓文(한문)을 소리 나는 대로 '한문'이라고 쓰면 중국 글을 뜻하는 漢文(한문)과 헷갈리니 피했다고 했습니다.
글자 이름이 하필 중국 글을 부르는 이름과 똑같이 들리게 되니, 앞 글자 '한'은 그대로 두고 뒤 글자를 우리말 '글'로 바꾼 셈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배운 '큰 글', '하나뿐인 글'은 어디서 왔을까요. 옛말 '하다'는 '크다'라는 뜻이었고, 그 꾸미는 꼴이 '한'입니다. 소리가 같다 보니 뜻이 겹쳐 붙었습니다. 최현배는 1942년 『한글갈』에서 '한'을 하나, 큰, 바른의 뜻으로 풀었습니다. 박갑수 서울대 교수와 고영근 교수는 둘 다 이를 처음 뜻이 아니라 뒤에 덧붙은 풀이로 봅니다.
누가 지었는지는 아직 다툽니다
그렇다면 누가 지었는지 궁금해지는 게 당연합니다. 그런데 학자들 사이에서도 답이 하나가 아닙니다. 가장 널리 퍼진 답은 주시경입니다. 고영근 교수는 '한나라글'에서 '한글모'로 이어지는 기록과 권덕규의 증언을 근거로 이 설명을 지킵니다.
최남선이라는 답도 있습니다. 출판인 최남선이 세운 조선광문회에서 주시경과 함께 사전을 준비하던 무렵 최남선이 이 이름을 냈다는 증언이 1936년에 나왔습니다. 임홍빈 서울대 교수는 최남선이 1910년 말에 처음 말했다는 가설이 아직 유효하다고 봤습니다. 최남선 자신은 1946년에 '한'이 '크다'를 뜻하면서 한(韓)을 나타낸다고 썼습니다. 신문인 이종일이 1898년 비망록에 먼저 썼다는 주장도 있지만, 그 대목은 뒤에 덧쓴 것이라는 반론이 함께 나와 있습니다.
2021년 학술지 『한국어학』에 실린 논문은 '한글'을 지은 사람을 한 명으로 특정할 수 없고, 1927년 무렵까지는 여러 이름이 함께 쓰였다고 정리했습니다. 같은 논문은 1910년 병합을 이 이름이 생긴 가장 결정적인 계기로 꼽습니다. 여기 소개한 학자들은 지은 사람을 두고는 갈리지만, 이 이름이 왜 필요했는지는 대체로 같은 데서 찾습니다.
가갸날이 한글날이 되기까지
이름은 바로 퍼지지 않았습니다. 잡지에 '한글'이 찍혀 나온 가장 이른 예는 최남선이 펴낸 어린이 잡지 『아이들보이』의 1914년 3월 호(7호)입니다. 고영근 교수가 확인한 범위에서입니다. 주시경은 그해 7월 세상을 떠났습니다.
1926년 11월 4일, 주시경의 제자들이 다시 꾸린 조선어연구회가 신민사와 함께 훈민정음 반포 480돌 기념식을 열었습니다. 식은 서울의 식도원이라는 요릿집에서 열렸고, 수백 명이 모였다고 합니다. 이날의 이름은 한글날이 아니라 가갸날이었습니다. '가갸거겨' 하며 글자를 익히던 데서 온 이름입니다.
이듬해 2월 동인지 『한글』이 나왔고, 1928년 11월 11일 가갸날은 한글날이 됐습니다. 열네 사람이 학회 이름을 바꾼 날부터 그 이름이 기념일에 오르기까지 15년이 걸렸습니다. 날짜도 처음에는 음력 9월 29일이었습니다. 1940년 『훈민정음』 원본이 나온 뒤, 광복을 맞은 1945년에야 지금의 10월 9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광복 뒤 이 이름은 남과 북에서 길이 갈렸습니다. 북한은 1948년 철자법에서 '한글 자모' 대신 '조선어 자모'라고 썼습니다. 고영근 교수는 2003년 글에서 1954년 이후 북한이 '한글'을 공식적으로 쓴 예를 찾을 수 없다고 적었습니다. 그는 '한'이 대한민국의 한(韓)과 같아서 피한 것으로 봤습니다. 1913년 열네 사람이 이름에 새겨 둔 것은 떼어 낸 문패의 한 글자였습니다. 그 글자는 대한제국보다 오래 살아남았습니다. 모레 우리가 부를 이름 안에 그 글자가 있습니다.
출처·참고
- 출처 ↗ 고영근, 「'한글'의 작명부는 누구일까」, 『새국어생활』 13권 1호, 국립국어원, 2003
- 출처 ↗ 박갑수, 「한글의 유래와 의미」, 『국어생활』, 1985
- 출처 ↗ 국립국어원, 「'한글' 명칭의 유래」
- 출처 ↗ 국가기록원, 한글 정책 연표
- 출처 ↗ 국립국어원, 「알고 싶은 한글」
- 출처 ↗ 최태호, 「한글과 언문(諺文)」, 프레시안, 2024
- 출처 ↗ 국립한글박물관, Tracing Hangeul
- 출처 ↗ 조남호, 「한글날의 유래와 변천」, 국립국어원
-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글학회」
-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조선교육령」
-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아이들보이」
- 출처 ↗ 한글학회, The Foundation and History
- 출처 ↗ 김명섭, 「조선과 한국: 두 지정학적 관념의 연속과 분화」, 『한국정치연구』 25권 1호, 2016
- 출처 ↗ Kiaer Jieun·신지영, 「'한글' 명칭의 언어학적 역사적 맥락」, 『한국어학』 90, 2021
- 출처 ↗ 임홍빈, 「'한글' 명명자와 사료 검증의 문제」, 한국어문교육연구회
- 출처 ↗ 아주경제, 『고종실록』 1897년 10월 11일 기사 인용, 2019
- 권덕규, 『조선어강좌』, 경성방송국, 1933 (고영근 2003 재인용)
- 최현배, 『한글갈』, 정음사,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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