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위의 '가위'는 한 달을 반으로 가른 날이었습니다
Woody Magazine
뉴스가 아닌 것들을 씁니다
2026년 9월 23일 (수)
내일부터 추석 연휴 — 한가위의 '가위'는 한 달을 반으로 가른 날이었습니다
국어학자들은 신라 잔치의 이름 '가배'를, 그 잔치가 열린 날짜를 부르던 말로 풉니다.
세 줄 요약
- 한가위의 '가위'는 『삼국사기』가 전하는 신라 이야기에 '가배(嘉俳)'로 처음 나옵니다. 한자는 뜻이 아니라 소리를 빌린 것입니다.
- 국어학자들은 이 말을 '둘로 나누다'라는 옛말에서 풉니다. 한 달을 반으로 가른 날, 곧 보름입니다.
- 길쌈 이야기가 틀렸다는 뜻은 아닙니다. 잔치가 이름을 만든 게 아니라, 그 날짜에 잔치가 열렸습니다.
내일부터 추석 연휴입니다. 오늘 하루 "풍성한 한가위 보내세요"라는 인사를 몇 번은 주고받으실 겁니다.
그런데 '한가위'의 '가위'가 무슨 뜻이냐고 물으면 답이 잘 나오지 않습니다. '한'이 '크다'는 뜻이라는 데까지는 들어 보셨을 수 있습니다. 대개 나머지 두 글자에서 말이 막힙니다.
그러면 많은 분이 신라의 길쌈 이야기를 떠올리십니다. 여자들이 편을 갈라 베를 짰고, 진 편이 잔치를 차렸고, 그 잔치를 '가배'라 불렀다는 이야기입니다. 백과사전에도 실려 있고 명절 기사에는 해마다 나오니 그렇게 알고 계실 만합니다.
오늘 이야기는 그 잔치보다 달력에서 시작합니다. 음력 한 달짜리 달력을 반으로 접어 보겠습니다. 접히는 선 위에 15일, 보름이 옵니다. 국어학자들은 '가위'를 바로 그 접는 선에 붙은 이름으로 풉니다.
신라 여자들은 한 달 동안 삼을 삼았습니다
『삼국사기(三國史記)』는 고려 때 김부식이 펴낸 역사책입니다. 여기에 신라 제3대 왕 유리이사금 9년, 서기 32년의 일이 적혀 있습니다. 지금부터 2천 년 가까이 전입니다. 왕은 도읍의 여섯 부를 두 편으로 나누고, 두 딸에게 한 편씩 맡겼습니다.
두 편의 여자들은 음력 7월 16일부터 날마다 아침 일찍 모여, 밤 10시 무렵까지 삼을 삼았습니다. 원문은 첫날을 '기망(旣望)'이라 적습니다. 보름 다음 날이라는 뜻입니다. 삼 껍질에서 실을 뽑아 베를 짜는 일, 곧 길쌈입니다.
한 달 뒤인 8월 15일, 두 편이 해낸 양을 견줬습니다. 진 편이 술과 음식을 차려 이긴 편에 사례했고, 노래와 춤과 온갖 놀이가 이어졌습니다. 『삼국사기』는 이것을 '가배(嘉俳)'라 불렀다고 적습니다.
기록에는 장면이 하나 더 남아 있습니다. 진 편의 한 여자가 일어나 춤을 추며 "회소, 회소" 하고 탄식했는데, 그 소리가 슬프고도 고왔습니다. 뒷사람들이 그 소리를 따라 노래를 짓고 「회소곡(會蘇曲)」이라 이름 붙였습니다.
여기까지 읽으면 '가배'는 잔치 이름으로 읽힙니다. 이름도 잔치에서 나왔다고 보면 이야기가 깔끔합니다. 그런데 날짜가 하나 걸립니다. 한 달짜리 경기는 보름 다음 날 시작해, 다음 보름에 끝났습니다.
'가배(嘉俳)'는 뜻이 아니라 소리를 적은 글자입니다
가(嘉)는 '아름다울 가', 배(俳)는 '광대 배'입니다. 노래와 춤이 벌어진 날에 붙은 이름이니, 글자만 보면 그럴듯하게 들어맞습니다.
어원 연구서를 여러 권 낸 국어학자 조항범 교수는 이 두 글자를 한자어로 보지 않습니다. 당시 신라 사람들이 쓰던 우리말을 소리가 비슷한 한자로 받아 적은 차자(借字) 표기라는 설명입니다. 그러니 글자의 뜻을 풀어서는 원래 말에 닿지 못합니다. 붙잡아야 할 것은 소리입니다.
'갑-'은 둘로 나눈다는 말이었습니다
신라 사람들이 소리 내어 말한 그 단어는 무슨 뜻이었을까요. 이 물음에 답한 대표적인 사람이 국어학자 양주동입니다.
양주동은 이 말을 옛 동사 '갑-'에 명사를 만드는 꼬리 '-이'가 붙은 꼴로 봤습니다. 그리고 '갑-'을 '절반하다', '둘로 가르다'라는 뜻으로 풀었습니다. '높-'에 '-이'가 붙어 '높이'가 되듯, '갑-'에 '-이'가 붙어 '반으로 가른 것'이 됐다는 이야기입니다.
'갑-'이라는 동사는 지금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래도 흔적은 우리 곁에 있습니다. 조항범 교수는 첫 흔적으로 '가운데'를 꼽습니다. 절반 정도의 양을 가리키는 '가웃'에도, '갑곶' 같은 땅이름에도 같은 뿌리가 남아 있다는 설명입니다.
무엇을 둘로 나눈 자리, 그 자리를 우리는 지금도 '가운데'라고 부릅니다.
조 교수는 이 뜻을 달력에 그대로 가져갑니다. '가위'는 '한 달을 절반한 날', 곧 음력 15일 보름이라는 것입니다. 국사편찬위원회가 운영하는 우리역사넷도 '가위'를 '가운데'나 '절반'을 뜻하는 '갑'에서 온 말로 봅니다. 국립민속박물관 웹진은 '가운뎃날'이라고 풉니다. 다만 우리역사넷은 추석을 가을의 중간, 가을의 반이라는 뜻으로까지 넓혀 읽습니다.
달력을 반으로 접었을 때 생기는 그 선입니다. 신라의 길쌈 경기는 보름 다음 날 시작해 달이 한 바퀴를 돈 뒤, 다시 그 선 위에서 승부를 봤습니다.
헷갈리기 쉬운 말이 하나 있습니다. 종이를 자르는 '가위'입니다. 국립국어원 우리말샘에 따르면 이 도구 이름은 15세기에 다른 소리였고, 여러 번 모양을 바꾼 끝에 19세기에야 '가위'가 됐습니다. 두 말은 따로 변해 오다가 소리만 같아졌습니다.
고려 노래는 보름과 가배를 한 줄에 불렀습니다
이 풀이를 거드는 노래가 있습니다. 고려 사람들이 부르던 「동동(動動)」입니다. 정월부터 섣달까지 달마다 그달의 풍속에 기대어 떠난 임을 그리는 노래로, 가사는 조선 성종 때 펴낸 『악학궤범(樂學軌範)』에 한글로 실려 전합니다.
그 가운데 8월 대목은 팔월 보름을 곧바로 '가배'라 부릅니다. 뜻을 풀면 "팔월 보름은 가배날이지만, 임을 모시고 지내야 오늘이 가배답구나" 정도입니다. 고려 사람에게 8월 보름과 가배는 같은 날을 부르는 두 이름이었습니다.
'가배'가 지금의 소리를 얻기까지는 시간이 더 걸렸습니다. 국사편찬위원회의 『삼국사기』 주석은 서재극의 1965년 연구를 따라, 이 말이 '가배'에서 '가뵈'와 '가외'를 거쳐 '가위'가 됐다고 봅니다.
한글로 적힌 모습은 1690년에 나온 중국어 어휘집 『역어유해(譯語類解)』의 '가외'가 처음입니다. 『삼국사기』가 전하는 서기 32년에서 1,600년 넘게 지난 뒤입니다.
'한'은 가장 늦게 붙었습니다
'가위'만으로도 8월 보름을 부르기엔 충분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에 '한'을 붙여 부릅니다. '한'은 '크다'는 뜻입니다.
조항범 교수에 따르면 '한가위'라는 말은 1897년 캐나다 선교사 제임스 게일이 펴낸 『한영자전(韓英字典)』에 처음 보입니다. 가장 많이 쓰는 이름이 문헌에는 가장 늦게 나타나는 셈입니다. 1938년에 나온 『조선어사전(朝鮮語辭典)』은 거꾸로 '가위'를 '한가위'의 준말로 풀었습니다. 조 교수는 이것을 선후가 뒤바뀐 설명으로 봅니다.
'한'은 왜 붙었을까요. 보름은 한 해에 보통 열두 번 옵니다. 조 교수는 8월 보름이 다른 달의 보름보다 특별히 중요한 날로 여겨지면서 '한'이 붙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열두 개의 접는 선 가운데 하나에만 굵게 줄을 그은 셈입니다.
다른 풀이도 있습니다. 우리역사넷의 다른 글은 '가위'가 은혜를 '갚는다'는 말에서 왔다는 주장을 함께 소개합니다. 진 편이 이긴 편에 사례했다는 기록과 잘 맞는 풀이입니다. 그래도 우리가 '가운데' 쪽에 무게를 두는 이유가 있습니다. '가운데'와 '가웃'에 남은 흔적, 그리고 팔월 보름을 곧바로 가배라 부른 「동동」의 노랫말이 그쪽과 더 잘 맞습니다.
그럼 길쌈 이야기는 틀린 걸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신라 사람들이 한 달 동안 삼을 삼고 8월 보름에 잔치를 연 기록은 그대로입니다. 달라지는 것은 순서입니다. 잔치가 날짜에 이름을 준 게 아니라, 이미 '가위'라 불리던 날에 잔치가 열렸다고 보는 편이 말의 흔적과 더 잘 맞습니다.
'가위'는 말이 뜻을 잃고 소리만 남으면 어떻게 되는지를 보여 줍니다. 뜻이 잊히자 우리는 기록에 남은 가장 화려한 장면에서 이름의 유래를 찾았습니다. 정작 이름은 달력 위에 그은 선 하나에 붙어 있었습니다. 올해 그 선은 9월 25일 금요일을 지납니다.
출처·참고
- 출처 ↗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삼국사기』 신라본기 유리이사금 9년조 역주
- 출처 ↗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수확을 의미하는 추석」
- 출처 ↗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가장 오래된 대명절 추석」
- 출처 ↗ 조항범, 「추석맞이 우리말 나들이 — 한가위, 송편, 저냐의 어원」, 국립한글박물관 한박웃음 제62호(2018.9)
- 출처 ↗ 서울신문, [똑똑 우리말] 한가위(2021.9.16)
- 출처 ↗ 국립민속박물관 웹진, 「추석(秋夕)의 의미와 유래」(2023.9)
- 출처 ↗ 국립국악원 국악사전, 「동동」
- 출처 ↗ 국립국어원 우리말샘, 「가위」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