멘사 80년 — 정부에 조언할 600명을 뽑으려 했습니다
Woody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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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0월 1일 (목)
멘사 80년 — 정부에 조언할 600명을 뽑으려 했습니다
들어오는 문에 건 조건은 시험 점수 하나였습니다
세 줄 요약
- 80년 전 오늘 영국 옥스퍼드에서 시작한 멘사는 원래 각국 정부에 조언할 600명짜리 비밀 모임이 될 예정이었습니다.
- 그런데 공동 창립자 버릴은 입구에 지능검사 점수 하나만 걸었고, 점수는 그 사람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묻지 않았습니다.
- 회원들이 버릴을 배신했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버릴이 그렇게 낸 문으로 들어온 사람들이 지금의 멘사를 만들었습니다.
서점 퍼즐 코너에 가면 '멘사'라는 이름이 붙은 책이 몇 권씩 꽂혀 있습니다. 책 소개에는 대개 '지능지수 상위 2%'라는 말이 따라붙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멘사는 머리 좋은 사람들이 모여 어려운 문제를 푸는 곳으로 익숙합니다.
오늘은 멘사가 시작된 지 80년 되는 날입니다. 1946년 10월 1일 영국 옥스퍼드에서 공동 창립자 롤랜드 버릴이 첫 안내 책자를 찍었고, 멘사는 지금도 이날을 창립일로 칩니다. 그런데 이 모임은 처음부터 퍼즐을 풀려고 만든 곳이 아니었습니다.
1945년 기차 안에서 시작했습니다
시작은 1945년 8월, 잉글랜드 서리 지방을 달리던 기차였습니다. 버릴은 맞은편 사람이 영국 의회 회의록을 읽는 걸 보고 말을 걸었습니다. 호주에서 태어난 버릴은 변호사 자격은 있었지만 투자 수익으로 생활했습니다. 상대는 과학자로 일하다 옥스퍼드에서 법을 공부하던 서른 살의 랜슬롯 웨어였습니다.
두 사람은 주소를 주고받고 헤어졌다가, 이듬해인 1946년 3월 11일 다시 만났습니다. 이날 웨어가 카텔 지능검사를 권했고, 버릴은 상위 1% 안에 드는 점수를 받았습니다. 두 사람은 이 자리에서 지능이 높은 사람들의 모임을 만들 계획을 의논했습니다. 누가 먼저 그 생각을 했느냐를 두고 한때 다툼이 있었는데, 훗날 웨어가 그 생각을 낸 사람으로 인정받았습니다. 다만 돈을 대고 안내 책자를 쓰고 첫 총무를 맡은 사람은 버릴이었습니다.
회원은 600명까지만 받을 생각이었습니다
버릴이 그린 모임은 지금의 멘사와 달랐습니다. 멘사 국제본부의 공식 자료를 보면, 처음 구상한 멘사는 각국 정부에 조언해 세계정세를 움직이는 비밀 엘리트 자문단이었습니다. 지도부가 권한을 강하게 쥐는 귀족적인 모임이었고, 회원은 600명에서 더 받지 않을 계획이었습니다.
버릴은 이 모임을 '지성의 귀족'으로 여겼다고 전해집니다. 그럴 만한 꿈이었습니다. 기차에서 두 사람이 처음 나눈 이야기도 그쪽이었습니다. 얼마 전 심리학자 시릴 버트가 라디오에 나와, 지능이 아주 높은 사람들을 모아 전쟁 뒤의 문제를 풀게 하자고 했던 이야기입니다. 우리도 똑똑한 사람이 나랏일을 맡으면 낫겠다는 말을 종종 합니다.
입구에는 점수 하나만 걸었습니다
문제는 모임에 들어오는 문이었습니다. 버릴이 건 조건은 지능검사 점수 하나였습니다. 집안도 직업도 정치 성향도 묻지 않았습니다. 이름도 라틴어로 '탁자'라는 뜻이고, 멘사는 지금 스스로를 출신이나 배경을 따지지 않고 둘러앉는 원탁 모임이라고 소개합니다.
키만 재서 농구부를 꾸린다고 생각해 보면 이해가 쉽습니다. 키 큰 학생은 확실히 모입니다. 그런데 그 학생들이 농구를 하고 싶어서 왔는지는 키가 알려 주지 않습니다. 배구를 하자는 학생도, 그냥 모여 수다나 떨고 싶은 학생도 같이 들어옵니다.
점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점수는 그 사람이 정부에 조언하고 싶은지 묻지 않습니다. 게다가 버릴은 감독관 없이 혼자 풀어 보내는 시험으로 사람을 모았습니다. 그렇게 모인 회원이 400명쯤이었습니다.
4년 만에 버릴이 손을 뗐습니다
400명은 버릴의 계획대로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멘사를 되살리고 훗날 국제 회장이 된 빅터 세레브리아코프의 회고에 따르면, 버릴은 자기가 보낸 별난 편지에 회원들이 제대로 답하지 않는 데 크게 실망했습니다. 결국 1950년 총무 자리를 내놓았습니다. 웨어도 그 무렵 버릴의 운영 방식에 반대해 모임을 떠났습니다.
그 뒤로 모임은 시들었습니다. 세레브리아코프가 총무를 맡았을 때 남은 회원은 그의 기억으로 100명쯤, 모임 금고에 든 돈은 56파운드 정도였습니다. 1954년 연례 모임에는 세레브리아코프 부부를 포함해 네 명이 나왔다는 증언도 있습니다. 당시 회원 명부는 사라져서 실제 회원이 몇 명이었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여기서 버릴이 사람을 잘못 뽑은 것 아니냐고 물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보기는 어렵습니다. 버릴은 자기가 정한 기준대로 뽑았습니다. 다만 그 기준은 한 가지만 쟀습니다.
입구 조건은 지금도 하나입니다
세레브리아코프는 위원회를 꾸리고 시험 절차부터 다시 정비했습니다. 지금 멘사는 감독 아래 치른 공인 지능검사에서 상위 2% 안에 든 사람을 받습니다. 조건이 점수 하나뿐인 것은 80년 전과 같습니다.
바뀐 것은 모임이 하겠다는 일이었습니다. 지금 멘사가 내건 목적은 인간의 지능을 찾아내 키우는 일, 지능 연구를 장려하는 일, 회원끼리 지적이고 사교적인 자극을 주고받는 일입니다. 정부에 조언한다는 말은 없습니다. 오히려 멘사는 정치나 종교, 사회 문제에 어떤 입장도 내지 않는다고 밝힙니다.
이후 모임은 커졌습니다. 멘사 국제본부에 따르면 지금 회원은 90개 넘는 나라에 약 15만 명입니다. 600명에서 멈추려던 모임이 250배쯤 커졌습니다. 한국에 번역된 멘사 퍼즐 책 가운데에는 영국 멘사 핵심 회원들이 만든 시리즈도 있습니다. 서점에서 우리가 보는 멘사 퍼즐 책은 버릴의 계획에 없던 쪽에서 나온 셈입니다.
버릴은 머리 좋은 사람을 모으면 자기가 바란 모임이 될 거라고 봤습니다. 키만 재서 모은 농구부가 배구를 해도 막을 방법은 없습니다. 입구에서 물은 건 점수뿐이었습니다. 모임은 거기까지만 그의 것이었습니다.
출처·참고
- 출처 ↗ Mensa International, We are Mensa
- 출처 ↗ Mensa International, A Brief History of Mensa International
- 출처 ↗ Mensa International, Media Resources
- 출처 ↗ American Mensa, The history of Mensa
- 출처 ↗ American Mensa, It Began With a Train Ride
- 출처 ↗ Victor Serebriakoff, The Odd Way Mensa Began
- 출처 ↗ Mensa Singapore, About Mensa
- 출처 ↗ Mensa Czech Republic, Mensanthropist: Victor Serebriakoff
- 출처 ↗ M. David Frost, The Mensa Black-tie Sauna
- 출처 ↗ Wikipedia, Roland Berri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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