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의 유령 40년 — 신문은 500kg, 기자의 소설은 20만 k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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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0월 9일 (금)

문화·엔터2026년 10월 9일

「오페라의 유령」 40년 — 신문은 500kg이라 썼고, 그 신문사 기자는 소설에 20만 kg이라 썼습니다

1896년 파리 오페라 극장에서 관객 한 명이 숨졌습니다. 다음 날 1면 제목에는 그녀의 이름 대신 쇳덩이의 무게가 실렸습니다

세 줄 요약

  1. 오늘 런던에서 「오페라의 유령」이 개막 40주년을 맞습니다. 1막의 샹들리에 추락은 1896년 파리 오페라 극장에서 관객 한 명이 숨진 사고에서 왔습니다.
  2. 다음 날 『르 마탱』 1면 제목은 "콘시에르주 머리 위에 500킬로"였습니다. 13년 뒤 그 신문사 기자였던 가스통 르루는 소설에 "20만 킬로!"라는 제목을 넣었습니다.
  3. 소설가가 숫자를 부풀렸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소설에서 숫자를 키운 것은 소설 속 신문이고, 르루의 문장은 그 신문을 향해 있습니다.

1896년 5월 20일 밤 9시를 몇 분 앞두고, 파리 오페라 극장 객석 꼭대기에서 굉음이 났습니다. 알퐁스 뒤베르누아의 새 오페라 「엘레」 1막이 끝나 가던 참이었습니다. 번개 같은 빛이 번쩍였습니다. 천장에서 먼지가 쏟아졌습니다. 관객들은 처음에 폭탄 테러로 알고 출구로 몰려갔습니다.

먼지가 가라앉자 4층 객석 바닥에 구멍이 나 있었습니다. 부서진 좌석 사이에서 여성 한 명이 쇳덩이에 깔린 채 발견됐습니다. 『르 피가로』에 따르면 쉰여섯 살의 건물 관리인이었습니다. 그날 밤 극장에서 숨진 사람은 그녀 한 명이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파리 일간지 『르 마탱』은 1면에 이 사고를 실었습니다. 제목줄은 이랬습니다. "콘시에르주 머리 위에 500킬로". 콘시에르주는 아파트 건물 입구에 살며 출입을 지키는 관리인입니다. 제목에 그녀의 이름은 없었습니다. 직업과 무게만 있었습니다. 그녀가 신문에서 받은 첫 추도사는 이 한 줄이었습니다.

130년 뒤인 오늘, 런던 히스 머제스티스 극장에서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이 개막 40주년 기념 공연을 엽니다. 1986년 10월 9일 이 극장에서 막을 올린 뒤 1만 5,000회 넘게 무대에 올랐습니다. 1막은 거대한 샹들리에가 무대 쪽으로 곤두박질치며 끝납니다.

이 장면이 실화에서 왔다는 이야기를 들어 본 분이 많을 겁니다. 반은 맞습니다. 그 밤 오페라 극장 천장에서 무언가 떨어져 사람이 죽은 것은 사실입니다. 흔히들 소설가가 그 사고를 가져다 부풀렸다고 생각합니다. 소설 속 샹들리에 장면에 20만 킬로라는 숫자가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숫자를 따라가 보면 먼저 신문이 나옵니다.

그날 밤 떨어진 것은 샹들리에가 아니었습니다

오페라 극장 객석 한가운데에는 지금도 높이 8미터, 무게가 흔히 7톤으로 알려진 샹들리에가 걸려 있습니다. 이만한 물건을 청소하고 고치려면 위아래로 움직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샹들리에를 매단 쇠줄은 천장 위로 올라가 도르래를 지났습니다. 줄의 반대편 끝에는 무거운 쇳덩이가 달려 있었습니다. 적은 힘으로 무거운 물건을 올리고 내리게 해 주는 평형추입니다.

평형추들은 천장 위에 있어서 객석에서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추를 매단 쇠줄은 샹들리에 위의 환기 통로를 지났고, 전등을 달면서 전선도 같은 통로로 들어갔습니다. 신문들은 전선이 닿아 불꽃이 일었고, 그 열에 쇠줄 하나가 끊어졌다고 봤습니다. 떨어진 추는 5층 객석의 천장과 바닥을 뚫고, 4층에 앉아 있던 모녀를 덮쳤습니다.

이틀 동안 신문은 무게를 네 가지로 적었습니다

무게는 하루 사이에 바뀌었습니다. 첫날 『르 마탱』은 500킬로라고 했고, 『르 피가로』는 700킬로쯤이라고 했습니다. 이튿날 『르 마탱』은 25킬로 원판 25장, 625킬로라고 고쳐 썼습니다. 같은 날 『르 피가로』는 조사위원회가 다녀간 뒤 "이 대목을 바로잡는다"며 정확히 360킬로라고 했습니다. 그 추가 받친 것도 샹들리에가 아니라 그 위에 매단 구리 반사판이었다고 정정했습니다.

360~700kg
사고 뒤 이틀 동안 『르 마탱』과 『르 피가로』가 적은 평형추 한 개의 무게

이름도 그랬습니다. 『르 마탱』은 그녀를 클로딘 리스팔이라고 적고, 남편 성을 따 쇼메 부인이라고 불렀습니다. 『르 피가로』는 첫날 쇼메트라고 썼다가, 이튿날 쇼메유가 맞는 철자라고 바로잡았습니다.

신문을 탓하고 싶어집니다. 그럴 만합니다. 그런데 기자들 처지도 쉽지 않았습니다. 추는 아무도 볼 수 없는 천장 위에 있었고, 무엇을 받치던 추인지는 예심판사가 지정한 감정인들이 가려야 했습니다. 『르 피가로』 기자는 자정에 극장을 나설 때까지도 조사가 끝나지 않았다고 적었습니다.

파리 신문들이 무게를 두고 오락가락하는 사이, 이야기는 먼저 바다를 건넜습니다. 사고 이틀 뒤 호주 멜버른의 『디 아거스』는 런던발 전보로 이 사고를 전하며 "샹들리에 추락"이라는 부제를 달았습니다. 아무도 본 적 없는 추는 건너가는 동안 모두가 아는 샹들리에가 됐습니다.

남편은 "우리 같은 처지에"라고 말했습니다

1896년 신문들이 적은 것은 대부분 숫자였습니다. 우리도 사고 기사를 읽으면 숫자부터 봅니다. 그래도 『르 피가로』 기자는 그녀의 집을 찾아갔습니다. 관리인 숙소는 가난했고 벽에는 아무것도 걸려 있지 않았습니다. 가족은 관리인 일로 받는 적은 돈으로 살았습니다. 딸 앙리에트가 값싼 대중식당 '부이용 뒤발'에서 일해 보탰습니다.

클로딘은 그날 극장에 갈 생각이 없었습니다. 남편의 설명은 이렇습니다. 아내는 극장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음악가가 표를 줘서 딸이 친구와 가기로 했습니다. 친구가 못 오게 되자 아내가 대신 갔습니다.

"어쩌자고 극장엔 가려 했나. 우리 같은 처지에 극장이 다 뭔가." 『르 마탱』이 전한 남편의 말

하루 만에 그 자리는 메워졌습니다. 사고 이튿날 밤 같은 극장에서 「햄릿」 갈라 공연이 열렸습니다. 『르 피가로』 공연란은 추가 떨어진 바로 그 자리에 열여섯 살 소녀가 태연히 앉아 있었다고 적었습니다. 같은 호 1면 칼럼은 파리의 이름난 점쟁이를 찾는 손님들을 늘어놓았습니다. 그 가운데 평형추가 머리에 떨어지지 않고 오페라에 갈 수 있겠느냐고 묻는 건물 관리인들이 있었습니다. 그녀의 직업은 이틀 만에 농담 소재가 됐습니다.

그 신문사 기자가 13년 뒤 소설을 썼습니다

사고가 난 1896년, 가스통 르루는 바로 그 『르 마탱』의 기자였습니다. 법원 출입기자로 이 신문에 들어갔고, 나중에는 러시아 혁명을 취재한 대기자가 됐습니다. 프랑스 국립도서관이 공개한 자료에는 1894년 2월에 발급된 그의 법원 출입기자 협회 회원증이 남아 있습니다. 그가 500킬로 기사를 직접 썼는지는 기록으로 확인되지 않습니다.

르루는 1909년부터 신문에 『오페라의 유령』을 연재했습니다. 소설 속 사고는 「파우스트」 공연 중에 일어납니다. 유령의 목소리가 들린 직후 샹들리에가 통째로 풀려 1층 객석으로 떨어집니다. 그 밑에 깔려 죽은 사람은 생전 처음 오페라 극장에 온 여자였습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소설가가 실화를 키운 것이 맞습니다. 천장 위의 추를 샹들리에로 바꿨고, 4층 객석을 1층 한가운데로 옮겼습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 문장에서 숫자를 키우는 쪽은 소설가가 아닙니다.

이튿날 한 신문이 이런 제목을 실었다. "콘시에르주 머리 위에 20만 킬로!" 그것이 그녀가 받은 추도사의 전부였다. 가스통 르루, 『오페라의 유령』

20만 킬로를 외치는 것은 소설 속 신문입니다. 13년 전 르루가 다니던 신문의 1면과 문장 구조가 똑같고, 숫자만 400배가 됐습니다. 이 대목이 과장보다 비꼼으로 읽히는 까닭은 더 있습니다.

먼저 르루는 사고 장면을 그리지 않겠다고 못 박습니다. "그 역사적인 시간을 여기서 되살릴 생각은 없다. 궁금한 사람은 당시 신문을 펼쳐 보면 된다." 소설에서 가장 극적인 순간에 붓을 내려놓고 독자를 당시 신문으로 보내는 셈입니다. 그러고는 그 신문이 무엇을 썼는지 한 줄만 보여 줍니다.

다음은 숫자입니다. 20만 킬로는 200톤이고, 샹들리에 무게로 흔히 알려진 7톤의 서른 배 가까이 됩니다. 소설 안에서도 말이 안 되는 숫자입니다. 독자에게 믿으라고 쓴 숫자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마지막은 '콘시에르주'라는 단어입니다. 르루는 실화에서 공연도, 떨어진 물건도, 자리도 바꿨습니다. 그런데 이 단어는 그대로 뒀습니다. 1896년 1면 제목이 그녀를 부른 바로 그 단어입니다. 그리고 그 제목 바로 뒤에, 그것이 그녀가 받은 추도사의 전부였다고 덧붙였습니다.

르루는 이런 제목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법원 출입기자로 범죄와 재판을 썼고, 그가 다니던 신문에는 사건·사고를 다룬 짧은 기사가 매일 실렸습니다. 프랑스 신문은 이런 기사를 '파 디베르(fait divers)', 잡보라고 불렀습니다. 다만 그가 겨눈 것은 신문 전체가 아니었습니다. 그를 소설가로 알린 『노란 방의 비밀』의 주인공 룰타비유는 경찰보다 먼저 사건을 푸는 젊은 기자입니다. 르루가 비웃은 것은 한 사람의 죽음을 제목 한 줄로 끝내는 버릇이었습니다.

그 제목을 같은 뜻으로 기억한 작가가 또 있습니다. 콜레트는 1924년 수필집 『매일의 모험』의 「신문」 장에서, 신문 잡보는 학살 한가운데서도 웃는다고 꼬집으며 이 사고를 예로 들었습니다. 그녀가 기억한 제목은 "쾅! 콘시에르주 머리 위에 3만 킬로!"였습니다. 숫자는 또 달랐습니다.

르루의 말대로 당시 신문을 펼쳐 봤습니다. 거기서 그녀는 이름보다 무게로 먼저 불렸습니다. 13년 뒤 르루는 그 추도사를 소설에 옮겨 적었습니다. 숫자만 바꿔서. 20만이었습니다.

한눈에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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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의 유령 40년 — 신문은 500kg, 그 신문사 기자의 소설은 20만 kg (카드 1/6) 1896년 5월 20일 밤 파리 오페라 극장, 천장 위에서 떨어진 쇳덩이가 4층 객석을 덮쳐 관객 한 명이 숨졌습니다 (카드 2/6) 다음 날 르 마탱 1면 제목 「콘시에르주 머리 위에 500킬로」, 제목에 그녀의 이름은 없었습니다 (카드 3/6) 떨어진 건 샹들리에가 아니라 천장 위 평형추였습니다, 이틀 동안 두 신문이 적은 무게는 500·700·625·360kg (카드 4/6) 13년 뒤 그 신문사 기자였던 가스통 르루의 소설 속 신문 제목 「20만 킬로!」 (카드 5/6) 숫자를 키운 것은 소설 속 신문입니다, 르루의 문장은 그 신문을 향해 있습니다 (카드 6/6)

출처·참고

  • 『르 마탱(Le Matin)』 1896년 5월 21일자 1면, 「Accident à l'Opéra」 출처 ↗
  • 『르 마탱』 1896년 5월 22일자 3면, 「L'accident de l'Opéra」 (프랑스 국립도서관 Gallica, ark:/12148/bpt6k556690t)
  • 『르 피가로(Le Figaro)』 1896년 5월 22일자 1·3·4면 (프랑스 국립도서관 Gallica, ark:/12148/bpt6k2836547)
  • 『르 피가로』 1896년 5월 21일자 사고 기사 (조르주 그리종), 팬 포럼 영어 번역본 참고 출처 ↗
  • 『디 아거스(The Argus)』 멜버른, 1896년 5월 22일자 5면, 「Accident at the Paris Opera-House」, 호주 국립도서관 Trove 출처 ↗
  • 리옹 시립도서관 Guichet du Savoir, 「Opéra Garnier」 (G. Fontaine, B. Tézenas du Montcel, C. Dupêchez 인용) 출처 ↗
  • 프랑스 국립도서관 BnF Passerelles, 『오페라의 유령』 원문 발췌 출처 ↗
  • 프랑스 국립도서관, 가스통 르루 전시 자료 출처 ↗
  • 콜레트, 『매일의 모험(Aventures quotidiennes)』(1924) 「신문」 장. 플레이아드판 주석과 curiosaetc 블로그(2013)의 인용으로 확인
  • Andrew Lloyd Webber 공식 사이트, 40주년 기념 공연 발표(2026.6.29) 출처 ↗
  • Ticketmaster UK, 40주년 출연진 발표 출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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